역사학자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이끈 산타마리아호는 바다 끝을 지나 또 다른 바다 끝으로 항해했다. 1543년,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하늘이 아니라 땅이 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하늘과 땅의 형상에 관한 인류의 오랜 믿음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는 관념은 인류에게 보편적이었다. 별자리의 원운동은 눈에 보이지만, 땅은 네모로 보이지 않는다. 네모는 인류가 밭갈이를 시작하면서 발명한 도형이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물 중에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은 없다. 그래서 네모는 땅의 도형인 동시에 인간의 도형이었다. 네모의 발명은 인간의 설계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다. 인간은 네모를 일차적으로 자기가 살 집의 평면에 적용했다. 집의 형상은 집 짓는 이의 머릿속에 있었고, 평면도는 땅에 직접 그렸다. 설계도를 미리 그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860년대에 중건한 경복궁조차 설계도가 없다. 한 장의 설계도만으로는 공사를 나누어 진행할 수 없었고, 똑같은 설계도를 여러 장 그리기도 어려웠으며, 설계도의 수명이 대체로 공사 기간보다 짧았기 때문이다. 1842년, 영국의 존 허셜이 청사진 제작법을 발명했다. 시약을 바른 흰 종이 위에 설계도가 그려진 반투명한 종이를 덮은 뒤 빛에 노출시켰다가 적혈염 수용액으로 씻으면 검은 선이 그려진 부위는 흰색이 되고 나머지 부위는 청색이 되는 도면 복사법이다. 이 기술 덕에 한 장의 설계도를 여러 장으로 만들 수 있었고, 설계도의 수명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우리나라에서 청사진이 제작된 것은 1906년 탁지부 건축소에 청사진실이 만들어진 이후였으며, 현존 건축물의 청사진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1907년 착공된 대한의원 설계도이다. 이후 대형 건물을 지을 때에는 거의 빠짐없이 청사진을 제작했으며, 그 때문에 청사진이라는 말은 설계도와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청사진은 1980년대 중반 이후 건축 설계용 컴퓨터 프로그램과 대형 출력기가 보급됨에 따라 급속히 소멸했지만, 아직도 신문과 방송 등에서는 이 말을 자주 쓴다. 개혁의 청사진, 장밋빛 청사진, 도시 개발 청사진 등. 실체는 소멸했는데 말만 남았기 때문일까? 청사진이라는 말의 뜻이 ‘실현 불가능한 꿈’으로 바뀐 듯하다.
칼럼 |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청사진 |
역사학자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이끈 산타마리아호는 바다 끝을 지나 또 다른 바다 끝으로 항해했다. 1543년,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하늘이 아니라 땅이 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하늘과 땅의 형상에 관한 인류의 오랜 믿음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는 관념은 인류에게 보편적이었다. 별자리의 원운동은 눈에 보이지만, 땅은 네모로 보이지 않는다. 네모는 인류가 밭갈이를 시작하면서 발명한 도형이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물 중에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은 없다. 그래서 네모는 땅의 도형인 동시에 인간의 도형이었다. 네모의 발명은 인간의 설계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다. 인간은 네모를 일차적으로 자기가 살 집의 평면에 적용했다. 집의 형상은 집 짓는 이의 머릿속에 있었고, 평면도는 땅에 직접 그렸다. 설계도를 미리 그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860년대에 중건한 경복궁조차 설계도가 없다. 한 장의 설계도만으로는 공사를 나누어 진행할 수 없었고, 똑같은 설계도를 여러 장 그리기도 어려웠으며, 설계도의 수명이 대체로 공사 기간보다 짧았기 때문이다. 1842년, 영국의 존 허셜이 청사진 제작법을 발명했다. 시약을 바른 흰 종이 위에 설계도가 그려진 반투명한 종이를 덮은 뒤 빛에 노출시켰다가 적혈염 수용액으로 씻으면 검은 선이 그려진 부위는 흰색이 되고 나머지 부위는 청색이 되는 도면 복사법이다. 이 기술 덕에 한 장의 설계도를 여러 장으로 만들 수 있었고, 설계도의 수명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우리나라에서 청사진이 제작된 것은 1906년 탁지부 건축소에 청사진실이 만들어진 이후였으며, 현존 건축물의 청사진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1907년 착공된 대한의원 설계도이다. 이후 대형 건물을 지을 때에는 거의 빠짐없이 청사진을 제작했으며, 그 때문에 청사진이라는 말은 설계도와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청사진은 1980년대 중반 이후 건축 설계용 컴퓨터 프로그램과 대형 출력기가 보급됨에 따라 급속히 소멸했지만, 아직도 신문과 방송 등에서는 이 말을 자주 쓴다. 개혁의 청사진, 장밋빛 청사진, 도시 개발 청사진 등. 실체는 소멸했는데 말만 남았기 때문일까? 청사진이라는 말의 뜻이 ‘실현 불가능한 꿈’으로 바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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