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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22 18:33 수정 : 2014.09.23 15:25

백인 정복자가 고개를 빼고 두리번거리는 동안 그의 원주민 조력자는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발자국을 살피는 한편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유럽인의 식민지 획득 역사를 다룬 영화들에 흔히 나오는 장면이다. 연출자가 의식했든 아니든, 이런 장면은 후각의 민감도가 이른바 ‘문명인’과 ‘야만인’을 구별하는 장치라는 전제하에 삽입된 것이다. 지난 한두 세기 사이에 인류의 지각 능력에서 일어난 두드러진 변화를 꼽으라면, 먼저 시각과 후각의 퇴화를 꼽아야 할 것이다. 시각의 퇴화는 볼 것이 너무 많아진 때문이고, 후각의 퇴화는 거꾸로 수많은 냄새가 사라진 때문이다.

냄새는 주로 생명활동의 소산이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모여 있으면 악취를 풍기게 마련이다. 가장 많은 종류의 유기물을 소비하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많은 악취를 발생시키는 주범이다. 인류는 자기 역사의 대부분을 퇴비, 분뇨, 쓰레기 냄새 곁에서 보냈다. 이런 냄새를 정벌할 기술이 없던 시대의 특별한 사람들은, 향유나 향수를 만들어 자기 냄새를 숨기고 자기 코를 속였다. 인류가 생활공간 주변에서 악취를 없앨 수 있게 된 것은 주로 하수도와 수세식 변기 덕분이었다. 혹자는 중세 말 유럽에서 향기와 악취, 무취는 각각 귀족, 평민, 부르주아의 표식이었는데 이런 기술적 진보가 부르주아의 ‘무취 전략’을 성공시켰다고 보기도 한다.

유럽에서 실내에 설치하는 수세식 변기가 발명된 것은 16세기 말, 냄새의 역류를 방지하는 기술이 발명된 것은 18세기 말이었다. 하지만 다른 신기술들과는 달리, 이 기술이 한국에 도입되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수세식 양변기는 대도시 일부 구간에 하수관거가 만들어진 1920년대 중반 이후에야 몇몇 특수 시설들에 설치되었는데, 이것이 일반 도시 가정에 보편적으로 확산되는 데에는 그로부터 다시 반세기 넘는 시일이 걸렸다.

생활공간 주변에서 냄새가 사라지자 오랜 세월 향기로 분류되었던 담배 냄새도 악취로 전락했다. 담배의 유력한 ‘효능’이 무의미하게 됨으로써, 담배에 붙이는 세금도 가차 없는 ‘죄악세’가 되었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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