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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8.04 18:46 수정 : 2014.08.04 18:46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1년에 두어 차례, 명절 때에만 목욕한다고 농담처럼 고백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잘 씻지 않는 것이 한국의 전통문화라는 생각은 지금까지도 넓게 퍼져 있다. 하지만 옛사람들은 꽤 자주 씻었다. 집안에 우환이 있을 때나 간절한 염원이 있을 때면 늘 목욕재계를 했고, 관료들이 쉬는 날의 이름도 휴목일(休沐日), 즉 쉬면서 목욕하는 날이었다. 그렇다고 옛사람들의 신체가 청결했다고 할 수는 없다. 자주 씻는 것과 깨끗이 씻는 것은 다른 문제다.

옛날에는 창포나 잿물, 녹두가루, 팥가루, 콩가루 등을 세안제나 목욕세제로 사용했는데, 더러운 것을 날려버린다는 뜻에서 통칭 비루(飛陋)라 했다. 비누는 이 말이 변한 것이다. 세탁용 세제로는 명아주 잿물에 밀가루 등을 섞어 만든 석감(石鹼)을 썼다.

그런데 이런 세제는 만드는 데에 품과 재료가 들고 사용하기도 번거로워 극소수 특수계층 사람들만 일상적으로 사용했을 뿐, 보통 사람들은 특별한 날에나 사용했다. 그러니 자주 씻어도 피부병이나 기타 감염성 질환을 예방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한의학에는 외과 수술이 없었기 때문에 작은 종기가 덧나 목숨을 잃는 사람도 드물지 않았다.

오늘날 사용되는 화학 비누의 제법은 18세기 말에 발명되었고, 이 새로운 비누는 개항과 더불어 조선 땅에도 상륙했다. 새 비누는 전통 비누와는 전혀 다른 물건이었으나 이윽고 모든 종류의 고형 세정제를 통칭하는 이름이 되었다. 새 비누가 수입된 당초에는 한개 값이 쌀 한말 값을 상회할 정도로 비쌌으나, 그 탁월한 세정력과 편리함은 가격에 대한 저항을 분쇄했고, 시장이 넓어지면서 점차 가격도 싸졌다. 1905년께부터는 일본인들이 한반도 안에 비누공장을 만들기 시작하여, 1913년에는 서울에만 4곳의 비누공장이 성업 중일 정도가 되었다.

새 비누의 마력에 감복한 사람들은 주저 없이 비누 사용을 습관화했다. 오늘날 대다수 사람들은 눈뜨자마자, 그리고 잠들기 전에 비누를 대면하고 만진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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