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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1.26 20:49 수정 : 2014.11.27 10:52

서창호·홍세정씨가 사는 연남동 한옥집. 그들이 직접 만들고 고친 신발장과 툇마루가 보인다.

[매거진 esc]

폐가 같던 연남동 한옥집 고치며 단독주택 살기의 자신감 얻은 서창호·홍세정 부부와
봄마다 야생화 피는 앞마당과 텃밭 가꾸는 재미에 빠진 부암동 이승윤·박소현씨의 전세살이 이야기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다. 아마도 30년 뒤쯤엔. 지난 4월 국토연구원 조사에서 41%의 사람들이 그렇게 답했다.(1590명 대상) 당장 단독주택에 살려면 망설여지는 점이 한둘이 아니다. 추위, 부족한 편의시설, 자잘한 수리를 감당해본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고개를 가로젓고 누구는 추천한다. ‘일단 살아보고 결정하라’는 충고가 대세를 이루는 이유다.

단독주택에 임대로 거주하면서 내 몸에 맞게 고쳐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내 집은 아니지만 단독주택을 내 손으로 고쳐 살며 마당 있는 집의 좋은 점을 누리고 집을 수리하는 능력, ‘수리력’을 키웠다고 말하는 두 집을 찾아가 봤다.

마당 있는 집의 좋은 점은 포용력이 크다는 것이다. 이 집에서 열린 결혼식 모습.

폐가 같던 한옥집 고쳐 살기 지난해 12월 서창호(36)씨와 홍세정(33)씨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 동진시장 뒤편에 있는 오래된 한옥을 그들의 첫번째 집으로 정하고 거기 깃들였다. 적은 돈으로 살 곳을 구하러 다녔는데 집은 구경도 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오기를 여러번 거듭하던 때였다. 어느 중개업자가 ‘재미있는 집이 있는데 한번 볼 테냐’고 물었다. 자기들끼리는 ‘명성황후의 집’이라고 부른다는 이 집은 요즘 도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넓이 70㎡ 남짓한 작은 한옥이었다. 임대로만 돌면서 아무도 고치지 않아 폐가 같았지만 어쩐지 귀해 보여서 그런 별명이 붙은 듯했다. 춥고 웃풍이 세고 벌레도 나오고 화장실이 밖에 있는 등 단독주택의 온갖 불편한 점은 다 가진 집이었지만 ‘조금만 손보면 그걸 감수할 정도로 멋진 집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했다. 고칠 것이 많은 만큼 임대료는 쌌고 이런 낡은 집에 젊은 사람들이 들어온다는 게 신기했던 집주인은 보일러를 바꾸고 도배와 장판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나머지는 부부의 몫이었다.

12월부터 2월까지 내 손으로 전셋집 고치기에 나선 부부는 주인이 오래된 보일러실을 부수고 새로 보일러를 놓을 동안 욕실 공사에 들어갔다. 욕실 타일을 새로 입힌 것은 물론 세탁기를 둘 공간을 생각해 변기와 세면대 자리까지 바꿨다. 돌아보니 욕실 개조에 200만원을 썼으니 집수리 중에서도 욕실에 가장 많은 돈을 들인 셈이지만 도배·장판에 들어갈 돈을 여기에 썼다고 생각하기로 했단다. 부서진 툇마루와 아예 없었던 신발장은 직접 만들었고 조명소은 을지로 상가를 다니며 마음에 드는 것을 보아두었다가 온라인에서 가장 저렴하고 비슷한 디자인을 찾아 주문했다. 처마에 달려 있던 녹슨 빗물받이를 바꾸고 마당에 인조잔디를 깔자 집은 완전히 새로 태어났다.

맞춤한 탁자에서는 부부가 주도하는 여러 아이디어 회의가 열린다.
툇마루를 올라서면 바로 주방을 만난다. 오른편 안방은 부부 침실로, 왼편 방은 미닫이문을 떼어내고 큰 식탁을 두어 거실 겸 회의실로 꾸몄다. 따로 떨어진 마당의 방은 작업실로 개조해 바닥에 전기 패널을 깔았다. 좁은 주방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길종상가에서 제작한 왜건을 들여놓은 것 말고는 되도록 동네 목수와 동네 집수리하는 곳을 이용했다. 그들이 집을 고친 것은 동네와 친해지기 위한 이유가 컸기 때문이다. 광고기획자인 남편과 디자이너인 부인은 뜻이 맞았다. “불편을 감수하고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공들여 수리한 집에서 또 옮겨야 한다면 서운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집을 통해서 다른 어떤 집도 고치고 살 수 있을 만큼 경험치가 커졌으니 그 또한 우리의 자산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남편 서창호씨의 말이다. 부인 홍세정씨는 “마치 디자인 작업을 하듯 주말마다 방 하나하나를 두고 디자인 회의를 하곤 했다. 이 집은 우리 디자인 포트폴리오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부부가 동네와 친해지며 집을 고치는 과정은 유튜브에서 ‘소행성 생활자’로 검색하면 동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
(▷ 동영상1, 동영상2 보러가기)

벽 단열 공사에 가장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인 부암동 오래된 주택.
동네와 친해지기 위해
동네 목수, 수리집 적극 활용
오래된 집 난방에 공들이니
4년 살며 공사비 뽑아내

50년 된 박공집의 변신 2010년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도 신혼집을 구하러 다니던 부부가 있었다. 의상 디자이너인 부인 박소현(36)씨는 마당을 끼고 있는 오래된 1층짜리 흰색 집을 단박에 마음에 들어했고, 건축가로 일하면서 낡은 집이 가진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남편 이승윤(41)씨는 반대했다. 결국 도심 한복판이면서 조용한 동네 분위기가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우선 집주인과 협상했다. “집을 대대적으로 고쳐야 할 것 같은데 2년 계약으론 곤란하다. 적어도 4년은 살 수 있도록 보장하라”는 말에 주인은 선선히 응했다.

이승윤·박소현씨 집 가구들은 목수가 마름질하고 철공소에서 다리를 만들며 일일이 부부의 생활에 맞췄다.
1961년 지은데다가 시멘트 블록에 엉성한 박공지붕을 얹고 있는 그들의 집은 화사하고 따뜻했다. 이승윤·박소현씨가 들어오면서 단열까지 새로 한 덕분이었다. 60㎡ 정도 되는 건물 전체를 50㎜ 두께의 단열재로 두르고 석고보드로 마감했다. 건축사무소 유니트유에이 소장이기도 한 이승윤씨는 “단독주택에 살 때 가장 문제는 춥다는 것이고, 사는 동안 거주 만족도와 난방비를 좌우하는 단열에 돈을 아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4년 동안 난방비를 따져보니 이미 단열 공사비는 거둬들인 셈”이라고도 했다. 단열을 해결하니 다른 문제는 소소해졌다. 원래 안방이던 곳엔 책장과 오디오를 두고 커다란 미닫이문을 달았다. 평상시엔 열어서 거실의 일부처럼 쓰다가 손님이 오면 손님방으로 변한다.

이승윤·박소현씨 집 가구들은 목수가 마름질하고 철공소에서 다리를 만들며 일일이 부부의 생활에 맞췄다.
안은 별다른 꾸밈 없이 단순하고 소박했지만 온기가 가득한 느낌이었다. 문은 원래 있던 문에 자작나무 합판을 덧댔다고 했다. 새로 짜 넣은 식탁, 침대는 물론 싱크대 문에 몰딩까지 같은 나무로 통일했다. 벽은 모두 흰색이다. “사람들은 소음에는 민감한데 시각적인 자극에 대해서는 둔감하다. 집을 지을 때 화려한 디자인에 끌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은 늘 사는 공간에는 좋은 재료를 쓰면서도 시각적인 자극을 줄이는 것이 가장 좋다”는 이 소장의 지론 때문이다. 건축가인 남편이 색과 재료를 지극히 절제하면서 꼭 필요한 기본 공사를 했고, 의상 디자이너인 부인이 흰색 광목천으로 커튼을 두른 이 집은 그들의 집은 아니지만 그들의 몸에 꼭 맞는 집이다.

이승윤·박소현씨 집 가구들은 목수가 마름질하고 철공소에서 다리를 만들며 일일이 부부의 생활에 맞췄다.
40㎡ 넓이의 부암동 마당엔 봄이 오면 금낭화·제비꽃·매발톱꽃 등 27가지 야생화가 피어난다. 자루에 흙을 담아 키우는 주머니 텃밭엔 두 식구가 못 먹을 만큼 많은 채소들이 자란다. “얼마 전 소현씨가 ‘오빠, 우리 집에서 제일 큰 방은 마당이네’ 그러더라고요. 마당의 맛을 알아버려서 이젠 이사 갈 때 힘들 것 같아요.” 이 소장의 말이다.

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서창호·홍세정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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