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1.26 20:45
수정 : 2014.11.27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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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단독주택 동네를 형성하고 있는 곳은 이제 많지 않다. 부암동 언덕에서 내려다본 자하문 터널 서쪽 주택가 모습.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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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단독주택 전세 살기
연희동에서 상수동, 사직동에서 평창동까지 서울의 뜨는 동네에서 단독주택 전세 구하기
서울 토박이 머릿속에 서울에서 살고 싶은 단독주택지로 떠오르는 곳은 2곳이었다. 연희동에서 서교동까지 이르는 서울 서쪽 주택가와 서촌·북촌 같은 오래된 ‘양반 동네’였다. 기왕 단독주택 전세를 찾을 거면 이런 동네에서 살아볼까 하는 꿈은, 그러나 터무니없이 순진한 생각이었다.
서울 연희동~상수동 “그런 집은 없어요. 이제.” 단독주택을 구하러 다니면서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시장경제가 그런 거지 뭐. 찾는 사람은 많고 내놓은 집은 적고.” 연희동 주택가에서 특히 많이 들은 말은 ‘시장경제’였다. 한 부동산 중개인의 말에 따르면 1995년쯤 연희동에서는 집짓기 붐이 일었다고 했다. 경제위기 직전 부동산 개발이 마지막 불꽃을 태울 때였다. 그리고 요즘 다시 연희동 주택가는 새로 짓기 붐이 한창이라고 했다. 연희동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다가구나 다세대로 개조하는 집이 많아진 탓이었다. 꼬박 이틀 걸려 돌아다닌 끝에 전셋집 세곳을 만났다. 임대료 1억4천만원에 나온 50㎡(15평) 넓이의 집은 반지하라는 점이 내키지 않았다. 80㎡(24평) 정도로 3인 가족이 살 만한 집도 있었지만 이 집의 임대료는 2억5천만원. 4억원 넘게 쓸 각오가 됐다면 높은 언덕에 있는 ‘올수리’ 단독주택에서 살 수도 있다. 전셋값을 좀더 써야 하나 고민하며 연희교차로를 지나 연남동으로 향했다. 상권이 부풀어 오르는 연남동에서는 아예 전셋집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을 서교동이나 동교동으로 돌리게 하고 있었다. 다가구주택을 기준으로 동교동에는 43㎡(13평) 넓이의 집이 1억3천만원, 50㎡(15평) 넓이라면 1억6천만원 정도가 시세라고 했다. 상권이 너무 번잡해진 홍대 앞에선 의외로 살림집이 몇곳 있었다. 동교동 1층짜리 단독주택 전셋집을 보러 갔다. 1억6천만원으로 임대료도 높지 않았고 오래된 나무가 지키고 선 마당도 좋았다. 그러나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훅 끼치는 곰팡이 냄새에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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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공방, 책방 등이 붐비며 살림집이 줄고 있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 일대 골목.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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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서쪽으로 가보자. 망원동 근처 부동산 중개업소에 들어가서 물어보니 여전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마당이 있다면 최소한 4억원은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사정을 들은 김남균 그문화 갤러리 대표는 상수동으로 오라고 했다. 김남균 대표는 턱없이 비싸진 홍대 앞 임대료를 피해 예술가들과 상수동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커뮤니티 아트와 지역 공동체 운동을 해온 사람이다. 마침 갤러리 바로 옆 마당 있는 집이 전세 5천만원에 나왔다고 했다. 믿어지지 않는 금액이었다. 물론 도착하기도 전에 집은 후딱 나가버렸다. “원주민율이 높은 곳은 단독주택이 많이 남아 있을뿐더러 상식 안에서 양보하는 법을 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원래 동네엔 안 보이는 질서가 있었다. 되레 주민들이 값을 부추기는 부동산을 피했다. 그래서 어디서든 동네에 터 잡은 지 오래된 부동산을 찾아야 한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당인리 발전소 앞에서 오랫동안 부동산을 하셨던 한 할아버지는 터무니없는 값을 부르는 집주인을 ‘젊은 사람들 피 빨아먹을 사람’이라며 야단치기도 했다”고 회고한다. 한마디로 공동체가 살아 있는 곳에선 전세 구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같은 동네에 있는 천지인 공인중개사 임규상 대표는 1억5천만원에 나온 작은 마당을 낀 전세주택을 보여주었다. 요즘 상수동에도 집값을 띄우려는 기획 부동산이 늘어나면서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지만 “새로 문을 연 중개업소보다는 오래된 곳을, 그리고 공동체가 있다면 그 중심지를 먼저 찾으라”는 것이 김남균 대표와 근처 공인중개사들의 충고다.
원주민 많을수록
무리한 임대료 요구 적어
가파른 언덕, 병원 학교 불편 감수하면
부암동·평창동에서도 찾아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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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공방, 책방 등이 붐비며 살림집이 줄고 있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 일대 골목.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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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직동~평창동 서촌 한옥마을엔 한옥이 없었다. 수성동 계곡에서 사직동을 지나 경복궁역까지 다녀봤지만 임대로 나온 곳은 없었다. 부동산 중개업소 11곳 중에서 한옥이나 단독주택 살림집을 찾는다는 내 전화번호를 물어본 곳은 단 한곳밖에 없었다. 말이라도 받아준 한 중개인은 “얼마 전 99㎡ 정도 넓이의 한옥이 3억2천만원에 전세로 나왔다. 주택 전세는 불쑥불쑥 나왔다간 들어가니깐 그저 부지런히 다녀보는 것이 답”이라고 했다. 다른 중개업소에선 아직 세들 사람을 찾지 못한 효자동 단독주택 이야기를 들었다. 아파트로 치자면 110㎡ 정도 넓이는 될 이 집은 마당도 있고 수리도 했는데 전세로 치자면 5억5천만원이고 그나마 월세로 나와 있다고 했다. 월세 액수를 들은 순간 뒤늦게 깨달았다. 지금까지 상업지역에서 살림집을 찾고 있었구나.
광화문에 있는 직장에 출퇴근하는 박정호(가명·41)씨는 2000년부터 북촌에서 임대로 살아왔다. 시작은 종로구 가회동이었다. 관광거리가 되면서 동네가 시끄러워지자 2009년 지금 사는 삼청동 단독주택으로 옮겼다. 1, 2층 복층에다 옥상을 정원처럼 쓸 수 있는 이곳의 임대료는 그동안 2억2천만원에서 3억원, 다시 3억3천만원으로 가파르게 올랐다. 집주인은 내년엔 꼭 4억원대로 올려달라고 했다. “전세라는 게 한가한 지역을 새롭게 발굴하면 로망이 될 수 있는데 뜨는 지역, 좋은 상권, 알려진 곳에 사는 것은 애환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로망과 애환이 롤러코스터를 탄다”는 박정호씨는 내년에 북촌을 뜰 생각이다. “북촌에 산다는 것은 도심 한복판을 지나 전통적인 거리 뒤편에 있는 편안한 내 집으로 온다는 장점이 있었다. 출퇴근이 드라마틱했다. 그런데 북촌이 뜨면서 터미널 근처에 사는 것처럼 일상이 번잡해졌다”는 것이 이들 가족의 말이다.
가게들을 위한 동네를 떠나 자하문 터널을 지나 부암동으로 향했다. 상명대 쪽으로 향하면 종로구 부암동, 신영동, 홍지동을 차례로 거쳐 평창동까지 이르는 단독주택가가 있다. 부암동에서 ‘마음은 콩밭’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박열음(29)씨는 두달 전에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했다. 작은 마당을 지나면 방 세개가 있는 집으로 들어와 넓은 옥상까지 볼 수 있는 이곳을 1억이 조금 못 되는 돈으로 빌렸다. 5년 전부터 부암동에서 살았던 덕분에 싸게 나온 집을 빠르게 계약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박열음씨는 “터널 하나 차이로 집값이 달라지니까 이곳으로 많이들 이사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부암동은 서촌의 문화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면서도 한적한 단독주택가의 느낌을 누리기 좋은 곳이다. 단 가파른 언덕길과 부족한 주차공간은 감수해야 한다. 병원이나 학교도 가깝지 않다. 들고 나는 게 잦지 않아 전세 구할 시간이 넉넉해야 한다고도 했다.
세검정 가까운 곳에서 전세로 나온 살고 싶은 집을 만났다. 가파른 언덕 꼭대기에 있지만 주인이 정성들여 고친 집은 원목 냄새 가득했다. 70㎡ 넓이의 집 안에는 다락방도 따로 있고 세들어 사는 3가구가 함께 쓰는 마당에는 고운 자갈이 깔려 있었다. 이 집의 임대료는 1억8천만원. 평창동으로 가면 1억원대에 다른 집과 함께 마당을 쓰는 주택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뜨는 동네에서 몇 걸음 물러서야 마당 있는 집들이 보였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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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경씨가 60만원으로 고친 17년 된 빌라주택의 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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콕 집어 고치면 화장실부터
전셋집 인테리어라고 하면 흔히 도배와 장판 정도만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직접 집을 고치는 디아이와이(DIY) 인테리어 블로그(http://blog.naver.com/yangpa0215)를 운영하는 양재경(33·회사원)씨 생각은 좀 다르다. “아이들이 살았던 집이 아니라면 이전 세입자의 가구가 가렸던 면들은 의외로 깨끗할 수도 있다. 가구나 액자, 시계로 가릴 수 있는 부분을 정하고 정 안 되는 부분만 도배를 하라”는 것이다. 요즘은 풀 바른 벽지를 파는 온라인 업체도 많이 생겨서 직접 도배를 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도배 대신 무독성 벽지 페인트를 직접 칠하기도 한다. 양재경씨는 “페인트는 색이 들어갈수록 값이 비싸진다”며 “전셋집의 벽은 흰색 페인트로 통일하고 가구나 패브릭으로 꾸미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도배·장판에서 아낀 돈을 욕실 개조에 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주거 만족도를 좌우하는 큰 요인 중 하나가 욕실인데 대부분 그냥 산다. 실제 시장조사를 해보면 욕실 개조 비용은 절대 비싸지 않다”는 그가 뽑은 욕실 개조 최소비용은 70만원을 넘지 않는다. 욕실 타일을 뜯지 않고 욕실용 페인트만 칠한다면 변기, 수전, 세면대, 욕실장에 천장까지 바꿔도 재료비는 50만원 정도다. 여기에 전문가의 하루 시공 비용을 더한 값이다. 물론 욕실 공사 땐 가급적 집을 지켜서 공사가 제대로 진행됐는지 확인하는 것은 필수라고 했다.
전셋집 조명을 바꾸는 사람도 많다. 이사 갈 땐 가구처럼 조명을 떼어가는 새로운 풍속도 생겨났다. 김미영 ‘인테리어 다’ 대표는 “요즘 신혼부부들 중엔 전셋집이라고 해도 홈스타일링을 의뢰하는 사람도 많다”며 “체리색 몰딩 같은 오래된 색감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데 집 전체 색감을 바꾸고 통일된 느낌으로 가구를 마련하기만 해도 집이 훨씬 넓어 보인다. 당분간 집을 살 계획이 없다면 큼직하고 좋은 가구보다는 용도가 다양하고 어디서나 잘 어울릴 수 있는 다목적 가구들을 찾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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