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김창금의 축구광
축구 캐스터 송재익
MBC 입사해 40년간 스포츠 현장에
국가대표 A매치 전문 캐스터로
명성 날리다 은퇴…10년 만에 복귀
프로축구연맹이 중장년 겨냥 영입
2일 전남-아산 K리그2 경기 첫 중계
“복귀할 때 다짐한 것 세가지,
말 줄이고, 톤 낮추고, 즐겁게 하자
…추억의 맛 찾아 중계여행 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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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한국프로축구연맹 회의실에서 송재익 캐스터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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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 종 치듯 한 헤딩골” “꽁치 그물에 고래가 걸렸네요” “슈~웃”….
1990~2000년대 한국 스포츠 중계 역사에 남을 여러 코멘트를 남겨 ‘어록 제조기’로 불리는 송재익(77) 캐스터. 그가 10여년 만의 공백을 깨고 현장에 돌아왔다. 단짝 강신우(60) 해설위원과의 첫 호흡도 무난하게 마쳤다. 그야말로 ‘노병’의 귀환이다.
과거 국가대표 에이(A)매치 전문 해설진이었던 두 사람의 복귀 무대는 2일 광양에서 열린 전남 드래곤즈와 아산 무궁화의 케이(K)리그2 경기였다. “포도주도 17도씨에서 잘 숙성하는데 선수들 기량도 잘 익으면 좋겠네요.” “교통사고도 추돌과 정면에서 부딪히는 충돌이 있죠.” “물수제비 헤딩을 했네요.” 휴지기가 무색하게 송 캐스터의 구성진 코멘트가 경기 상황과 맞물리며 샘물 솟듯이 터져나왔다. 방송을 지켜본 한 축구팬은 “2000년 초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해설이다. 요즘 해설가와 캐스터들이 쓰는 단어, 혹은 영어식 표현보다 국어 사용이 많아서 표현들이 신선했다”고 했다.
지난 6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5층에서 만난 송재익 캐스터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작지만 단아한 체구에서 나오는 소리는 우렁차면서도 차분했고, 강약이 바뀌면서도 명료했다. 여든을 앞둔 나이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평생 입만 갖고 살았지만 행복했다. 절대 거래를 하지 않았고,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런 자유스러운 삶이 목소리와 건강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인생 뭐 있나요…마이크 잡으면 만족”
캐스터, 코멘테이터 등으로 불리는 스포츠 아나운서는 수명을 칼끝에 달고 산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의 상황을 정리해 전달하는 순발력은 기본이다. 말 한마디에 따라 나라가 들썩이고, 실언을 하면 주워 담을 수도 없다. 방송사 간 시청률 등락이 실시간 그래프로 제시되면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1970년 <문화방송>(MBC) 입사 뒤 거의 40년 가까이 스포츠 현장을 지킨 그는 “방송 끝나고 나면 늘 ‘오래 못 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탈진했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왜 돌아온 것일까? 그는 “집사람이 말렸다. 괜히 몸 상하고 마음도 불편해질 것 같아서다. 하지만 나는 축구의 덕을 많이 본 사람이다. 내가 과거처럼 죽기 살기로 하는 것도 아니다. 흘러간 노래 듣듯이 내 목소리에 향수를 달래려는 팬들이 있다면 한번 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일단 2부 리그 경기여서 1부 리그보다 부담이 적고, 일주일에 한번만 맡으면 된다. 거마비 정도로 받는 보수는 과거 잘나가던 시절과 비교할 수 없다. 그는 “첫 중계 뒤 팬한테 2002 월드컵 중계 보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말 한마디면 대만족”이라고 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송재익 캐스터를 영입한 것은 팬 서비스뿐만 아니라 프로축구의 가치 향상을 위한 전략에서 비롯됐다. 프로축구연맹은 그동안 방송사와의 관계에서 ‘을’이었다. 콘텐츠의 주인이었지만 제작·편성·유통망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중계권 값은 제자리걸음을 했고, 중계 횟수도 방송사 사정에 따라 들쭉날쭉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역발상이 직접제작이다. 연맹은 올해 처음으로 2부 리그 경기를 제작해 네이버 등 포털과 스포츠전문채널 <스카이스포츠> <생활체육티브이> 등을 통해 중계하고 있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면서 해설진 세 팀(각각 청소년, 20~30대, 중장년층을 겨냥한 팀)을 구성했는데, 송재익 캐스터는 중장년 팬을 위한 해설진에 배치해 ‘대표 상품’으로 띄우고 있다. 그는 “프로축구연맹이 방송을 직접 제작하는 일은 다른 종목에서는 보지 못한 혁명적인 발상”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또 “연맹 쪽에서는 내가 중계하기 쉬운 쪽으로 일정을 골라도 된다고 했지만 그것은 안 된다. 방송 스케줄은 제작 주체인 연맹이 정하는 것이고 종사자인 우리는 따라야 한다”며 프로정신을 강조했다.
지난번 광양 출장은 5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소형 캠핑카를 끌고 사흘 전에 서울을 출발해 대천, 지리산을 거쳐 광양에 도착했다. 올라올 때도 여수를 거쳐 이틀에 걸쳐 차를 몰았다. 좀 피곤하긴 하더라.” 아무래도 나이는 속일 수 없나 보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앞으로는 부산이나 광양 등 먼 곳 경기는 고속철을 타고 당일치기로 갔다 오는 것을 고민 중이다.
아나운서는 보통 경기가 열리기 3시간 전에 스타디움에 도착해야 한다. 그는 “숨을 헐떡거리면서는 아무것도 못 한다. 이번 방송을 위해서 일찌감치 집을 나선 이유”라고 설명했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 먼저 도착해 비둘기가 날아다니는 평화로운 풍경에 빠질 때 그는 충만한 행복감을 느꼈다. “인생 뭐 있나요? 스타도 영웅도 아닌데, 범사에 감사하고 마이크 잡으면 만족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복귀 첫 관문을 무난히 넘긴 노캐스터의 안도감이 묻어난다.
물론 K리그2 경기 중계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입심으로 전 국민을 울리고 웃겼던 관록의 그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애초 프로축구연맹이 중계진으로 합류해줄 것을 요청했을 때부터 세가지를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첫째 말을 줄이고, 둘째 톤을 낮추고, 셋째 즐겁게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골이 터지거나 극적인 상황이 벌어지면 송재익 특유의 촌철살인 어법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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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익 캐스터가 지난 2일 전남 광양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2019 프로축구 K리그2(2부 리그) 전남 드래곤즈와 아산 무궁화의 경기에 앞서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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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짚으면서도 톡톡 튀는 어록
타고난 ‘끼’는 과거 주옥같은 어록이 웅변한다. 1997년 9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프랑스월드컵 아시아 예선 한일전에서 이민성의 극적인 역전골(2 대 1)이 터지자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관중석 너머 후지산을 보고 퍼뜩 떠올린 광고 카피 같은 문구는 다음날 주요 신문들의 기사 제목으로 그대로 실렸다.
“보신각 종 치듯 한 헤딩골” “꽁치 그물에 고래가 걸렸다”(2004 아테네 올림픽 조별리그 한국-말리전 조재진의 추격골, 상대 자책골 묘사) “6만3천송이의 장미꽃이 활짝 핀 대구월드컵경기장입니다”(2002년 대구에서 열린 월드컵 한국-미국전의 붉은색 관중 묘사) “요즘이 모내기 철인데 논 주인이 논에 모 다발 던지듯 한다”(대통령금배 고교 축구 중계 시 제기 차는 듯한 패스 묘사) 등 그의 톡톡 튀는 조어는 운율과 의미까지 딱 들어맞는다. 진짜로 시인이 그를 찾아와 “한줄 쓰기 위해 수없이 많이 쓰고 찢고 하는데, 어떻게 짧은 시간에 시상이 떠오르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단다. 그야말로 ‘그라운드의 재담꾼’ ‘언어의 마술사’가 따로 없다.
상황을 예측할 수 없는 스포츠에서 캐스터가 코멘트를 위해 자료를 준비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핵심을 짚는 어구는 늘 즉흥적으로 나온다. 때로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기도 한다. “국민 여러분, (한 호흡 쉬고) 두 손을 치켜들고 맞잡으십시오. 종교가 있으신 분은 신에게 빕시다. 없으신 분들은 조상에게 빕시다. (고개를 드니 무등산이 보여) 무등산 산신령님도 도와주십시오.” 2002년 월드컵 8강 한국과 스페인의 승부차기에서 홍명보가 공의 먼지를 털고 킥 지점에 놓고 돌아선 순간의 코멘트다. 천지가 고요하고 팬들의 시선이 집중된 그 순간에 민감한 종교·샤머니즘적 요소를 넣어 말했지만 그를 비난하는 팬들은 없었다.
거침없는 말투에 주변에서는 “너무 용감하다” “위험하다”고 지적할 때도 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젊은 시절부터 술과 담배를 일절 하지 않는 그는 “나는 내 가치관을 믿는다. 내 삶에 자신이 있다”고 했다. 방송 윤리와 품격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건강한 생활태도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한동안 마이크를 놓았던 그가 바라보는 방송사의 최근 축구 해설 문화는 어떨까? 그는 “전달자인 캐스터와 경기를 분석하는 해설자의 역할은 구분돼 있다. 둘의 목표는 경기장에 가지 못한 텔레비전 시청자들이 축구의 순수성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경기장에 가면 해설이 어디 있나? 관중은 그냥 몰두하고 빠져든다. 캐스터나 해설자의 말이 많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가령 골을 넣은 순간은 “꼬~올~”이라는 한마디면 된다. 불이 나면 “불이야!” 한마디가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것과 같다. 그 뒤에 119소방대원들이 감식을 해서 누전이냐 기름 누출이냐 식으로 원인을 진단하듯이 해설을 하면 된다. 해설자의 수준이 감식반이 아니라 행인 수준이라면 그것은 낙제점이다.
또 하나는 팬들의 반응이다. 그는 “축구팬들은 한일전 하면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경기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경기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스포츠를 너무 심각하게 바라볼 필요도 없다. 그는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다’는 표현 때문에 일본 언론이나 팬들한테 공격을 당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1997년 11월 서울 잠실에서 열린 월드컵 아시아예선 한일전 패배(0-2) 뒤 방송국에서는 난리가 났다. 도쿄전 승리 뒤 두달 만에 열린 이날 경기에서 한국은 홍명보를 빼는 등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다. 송 캐스터는 경기 뒤 “일본이 후지산에 다시 축대를 쌓기 시작했습니다. 아무쪼록 일본도 아시아를 대표해서 월드컵에서 잘 싸워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마무리했다. 한국은 이미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상태에서 일본팀의 선전을 바라는 덕담을 한 것이다. 하지만 방송국 전화기에 불이 날 정도로 일부 팬들은 엄청난 비난을 쏟아부었다.
‘그래, 이 맛이야!’를 찾아
스포츠 캐스터는 어휘를 잘 선택하고 또박또박 정확하게 발성해야 한다. 송 캐스터는 여기에 재미와 균형감각이 가미돼야 한다고 말한다. 또 가장 평범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외국에 나가 중계를 할 때는 꼭 그 나라의 문화나 도시의 특징을 먼저 공부하고, 국내에서는 캠핑카 여행을 하며 자연과 사람들 속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느끼고자 하는 이유다. 때로 길 위에서 마스크를 끼고 노동하는 할머니를 보고 울기도 하고, 시골 장터에서 만난 참외 장수의 넋두리도 들어줄 줄 알아야 한다.
부모에게 물려받는 목소리가 중요한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송재익 캐스터의 목소리는 그 색깔부터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독특한 캐릭터가 있다. 김대길 해설위원은 “팬들이 축구에 몰두하는 것은 경기가 재미있을 때지만, 특색있는 캐스터와 해설자가 얼마나 매력적으로 중계를 하는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2부 리그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높아질 수 있다”고 기대했다.
축구 하면 연상됐던 그가 ‘노병은 죽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돌아왔다. 첫 중계인 전남-아산전은 전파를 송신한 해당 방송사에서도 시청률이 꽤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완숙의 경지를 넘어섰음에도 “준비가 완벽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는 그의 자세가 빚어낸 결과다. 그는 9일 열리는 수원FC와 부산 아이파크의 경기를 중계하기 위해 벌써 팀 정보와 선수 특성을 분석하고 있다.
“김혜자씨가 광고에서 한 말 있잖아요. ‘그래, 이 맛이야!’ 제가 그렇습니다. 논두렁에서 먹든 길거리에서 먹든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는 원초적인 맛이 있어요. 바로 그 추억의 맛을 찾아 중계할 생각입니다.” 77살 희수(喜壽)의 꿈이 싱싱하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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