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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국가대표 풀백 이용 선수가 7일 전북 현대 클럽하우스(전북 완주군 봉동읍)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완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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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창금의 축구광
국가대표 풀백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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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국가대표 풀백 이용 선수가 7일 전북 현대 클럽하우스(전북 완주군 봉동읍)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완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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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반품할까?”
물리치료실에 누워있기도 지쳤다. 누구라도 재활 과정은 괴로운 일이다. 이럴 때 지나가면서 던지는 감독의 말 한 마디는 뜨끔하다. 다른 팀에서 비싼 돈 주고 데려왔는데 “반품한다”니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감독과 선수는 이런 식으로 ‘아는 체’하며 힘을 북돋운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포기할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감독님과 동료, 구단에서 믿어주었다”고 했다. ‘좌절은 있어도 포기는 없다’는 그의 좌우명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살아남음으로써 강해졌다
7일 전북 완주군 봉동읍 전북 현대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국가대표 풀백 이용(32·전북 현대). 포마드로 가르마를 탄 머리와 균형 잡힌 눈매, 반듯한 이마엔 조금의 감정도 틈입할 수 없는 무골풍의 냉정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원만하고 환한 미소는 금세 인터뷰의 분위기를 온화하게 만든다. 그라운드에 들어가면 질풍처럼 내달리지만, 침착하고 효율적으로 공격로에 공을 투입하는 정밀함은 내면의 평화와 맞닿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만성형 선수”라고 말을 꺼내자, 그는 “원래 실력이 특출하지 않다”라며 웃었다. 남보다 조금 늦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축구부에 들어간 이용의 축구 인생은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꼬불꼬불한 산길이었고, 때로는 고립무원의 잔도였다. 지금은 1m80㎝의 당당한 체격의 국가대표 철벽 수비로 성장했지만, 고교 1학년 때까지 그의 키는 1m53㎝이었다. 왜소한 체격의 오른쪽 풀백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이는 없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 공을 좀 찬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단 한번도 청소년 대표팀에 뽑힌 적이 없었죠.” 국가대표팀에 처음 뽑힌 것도 27살이 돼서야 이뤄졌다.
디엔에이(DNA)냐, 후천적 노력이냐를 가리는 것은 옛날 프레임이다. 프로에서는 경쟁력과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일관된 능력이 훨씬 중요하다. 가령 기술이 아무리 좋은 선수라도 체력이 없으면 무용지물이고, 반짝 천재성을 보인 선수라도 관리에 실패하면 곧바로 사라진다. 고통스런 반복훈련을 감내하고, 휴식과 식단을 조절하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약점을 보완해야 버틸 수 있다. 경기를 읽고 전술 응용력을 높이고, 운동장 밖의 사회적 평판까지 고려하는 도덕 지능까지 갖춰야 진짜 강자다.
변화무쌍한 프로축구 무대에서 이용은 살아 남았다. 강해서 살아남은 게 아니라 살아남아서 강해졌다. 그는 9일 현재 프로축구 K리그에서 도움주기 2위(9개)에 올라 있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를 포함해 전북의 39명의 선수 가운데 최다 출장시간(3440분)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대표팀의 모든 평가전과 월드컵 본선까지 포함하면 이미 53경기에 출전했다. 오죽하면 최강희 전북 감독이 “70~80%만 뛰라”며 안쓰러워 할 정도다. 그러나 이용은 “체력은 내가 만들면 된다. 축구를 접어야할지도 몰랐던 작년의 악몽을 생각하면 많이 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고 했다. 이동국, 김신욱, 김민재, 김진수, 최철순, 홍정호, 한교원과 분데스리가로 옮긴 이재성 등 국가대표급이 즐비한 전북에서 그가 우뚝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용을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한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는 이렇게 말한다. “2013년 동아시안컵에 대비해 오른쪽 풀백을 찾고 있는데 이용이 눈에 띄었다. 당시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신체조건과 스피드, 운동능력이 뛰어났다. 대표팀 경험이 없었지만 짧은 시간 안에 팀이 원하는 전술을 이해하고 잘 해냈다”고 돌아봤다. 이용은 홍명보 감독의 신임 아래 2014 브라질 월드컵 전 경기에 출장했다. 하지만 브라질 월드컵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는 “그때 감독님과 선수들이 정말 많이 준비했다. 미팅을 하고 상대분석도 완벽하게 했다. 하지만 인생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고 했다.
덕분에 올해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후회 없이 뛰었다. 독일전에서는 상대의 슈팅에 급소를 맞아 기절할 뻔도 했지만 정신력으로 버텼고, 대회를 마치고 돌아와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장기간 큰 대회를 치르고 나면 힘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2014년 기억 때문에 마음을 다잡았다. 대회 뒤에 운동을 하지 않고 몸이 무거워지면 잔근육이 빠져 나간다. 팀에 복귀해서도 근력운동을 더 많이 했고, 체력 회복을 위해 독하게 연습했다.”
축구인생을 건 재활
폭발적으로 솟구치기보다는 계단을 오르듯 단계적으로 도약하는 그의 경기력은 고통의 산물이다. 지난해 축구인생을 걸고 재활했던 시간은 그의 축구인생을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치열했다. 2016년 말 친정팀 울산 현대를 떠나 전북으로 옮긴 그는 2017년 8경기에만 출전한 뒤 드러눕는다. 격렬하게 운동하는 선수들에게 찾아오는 스포츠 탈장 문제가 불거졌다. 급격한 방향 전환이나 순간 폭발력을 내야 하는 아이스하키나 축구 종목 선수가 하복부나 사타구니 부위에 엄청난 통증을 느끼는 부상이다. 그는 일본에 이어 독일까지 찾아가 세 차례 수술을 받은 죽음의 재활과정을 통과했다. 그는 “회복해 다시 뛸 수 있을지도 불확실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축구이고, 동료와 연습하고 그라운드에 서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라는 것, 팬들의 존재가 소중하다는 것을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고 설명했다.
영등포공고 시절 입학이 예정됐던 명문대 진학이 꼬이면서 동기보다 대학 진학이 늦은 것도 아픔이었다. 소속팀 없이 훈련도 제대로 못하고 방황하다가 이듬해 중앙대에 들어간 것은 다행이었다. 그는 “1년 공백기 때 가장 마음 편하게 놀았고, 먹기도 많이 먹었다”고 했다. 체격이 불어난 그를 본 대학 감독은 “너, 축구선수 맞냐?”라고 눈총을 줄 정도였다. 대학 1학년 때 경기에도 좀처럼 나가지 못했던 그는 17살 청소년대표팀과의 연습경기에 모처럼 출전했다가 완패하면서 큰 충격을 받는다. 그는 “후배들한테 졌다는 게 창피했고, 내 실력이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인가를 생각하니 초라해졌다. 아버지한테 울면서 전화해서 ‘저 도저히 축구 선수로는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래도 지금까지 고생했는데, 딱 1년만 더해보자’고 다독였다.”
고교 1학년 때까지 1m53㎝ 왜소
27살 돼서야 국가대표 첫 발탁
국내 프로리그 도움주기 2위
전북 현대에서 최다 출장시간
벤투 대표팀 감독 ‘이유 있는 중용’
이용의 경기력은 고통의 산물
스포츠 탈장으로 3차례 수술에도
꾸준한 몸 관리로 끌어올린 파워
그 힘이 만들어낸 정교한 크로스
“동국 형처럼 마흔까진 뛰어야죠”
좀체 티를 안 내는 이용은 성격상 조급해하지 않는다. 조준헌 대한축구협회 홍보팀장은 “이용은 꾸준하게 자기관리를 하는 성실파다. 대표팀 훈련장에 가보면 고참인데도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여유가 있어 어린 선수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 그런데 경기장에만 들어가면 순한양에서 싸움닭이 된다”고 했다.
삶을 긍정하는 현실적인 마음가짐도 전화위복의 지혜다. 그는 “불운하다고 느낀 적이 많았지만 스트레스는 받지 않는다. 그것보다 나의 상태를 인정하고, 할 수 있는 일에 더 집중하는 편”이라고 했다. 감독이 지시하면 말 잘 듣고, 하라는 것 열심히 하는 게 이용이다.
물론 기회는 늘 오는 것도 아니고, 한번 왔을 때 잡지 못하면 사라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중학교 때 “감아차기 훈련”이나, 고교 때 “크로스 연습”을 죽어라고 한 것은 그의 승부욕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대학 때는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기 위해 시간만 나면 웨이트 훈련장에서 살았다. 다른 선수들과 단체 사진을 찍을 때면 확연히 드러나는 무릎 위 허벅지 근육은 그의 몰입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7일 전북 현대 클럽하우스 연습경기를 보기 위해 온 여성팬 조미현(25)씨는 “이용 선수는 다리밖에 안 보여요. 너무 멋있어요”라며 감탄했다. 그렇다고 둔탁한 근육은 절대 아니다. 전북 현대의 물리치료사인 브라질 출신의 지우반은 이용의 재활 기간 하와이까지 함께 가 휴양하며 도왔던 절친이다. 그는 “이용의 근육 조직은 보통 한국 선수들과 다르다. 다리가 훨씬 날씬한 로페즈와 비슷하다. 로페즈가 근섬유가 얇고 길어 빠르다면 이용은 파워가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이런 탄탄한 체력에서 전매특허인 정교한 크로스가 나온다. 2018 러시아 월드컵 한국대표팀을 이끌었던 신태용 감독은 “오른쪽 풀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크로싱 능력인데, 이용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정교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수비치고는 스피드도 갖춘 이용을 기용하기 위해 2년을 기다렸다”고 말할 정도다.
크로싱이라는 것은 상대 위험구역 안으로 공을 보내는 일이다. 오른쪽 풀백인 이용은 헉헉대며 공격가담을 한 뒤, 측면에서 골문 앞으로 공을 올려야 한다. 그런데 상대의 압박 상황에서 움직이는 공을 정확히 차는 것은 쉽지 않다. 대표팀 경기에서도 폭주 기관차처럼 파고드는 선수들은 그동안 여럿 등장했지만, 마무리 크로싱까지 정확하게 해내는 선수는 많지 않았다. 공이 제대로 올라오지 않으면 공격 작업의 위력은 확 떨어진다. 체력과 집중력, 동료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두뇌가 있어야 구사할 수 있는 고급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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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선수의 발. 그는 독한 재활과 훈련, 꾸준한 몸 관리로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렸다. 완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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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보필하는 게 나의 임무”
이용은 울산 시절 “정확성”을 끌어올렸고, 전북에서는 꺾어서 차거나, 템포를 늦추거나 당기는 등 응용력을 높였다. 그것은 천부적 재능의 고종수(대전 시티즌 감독) 스타일이 아니다. 기성용(뉴캐슬)의 중장거리 ‘택배 크로스’나 염기훈(수원 삼성)의 ‘마법의 왼발’처럼 꾸준히 단련하면서 경지에 올라선 사례다. 당연히 동료 선수들의 특성들을 미리 연구하고 연습해야 득점으로 연결된다. 이용은 “팀 후배인 김신욱의 경우 들어가려던 방향을 틀어 다른 쪽으로 움직이고, 이동국 형은 골문 앞으로 들어가다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런 점들을 미리 생각해서 공을 올린다”고 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9월 부임 뒤 네 차례의 평가전에 그를 오른쪽 풀백 주전 수비수로 기용한 것은 쓰임새가 크기 때문이다.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전북이나 대표팀에서 오른쪽 수비 또한 공격을 만들어나가는 빌드업의 시발점이다. 부지런히 왕복운동을 하면서 맞춤한 패스로 득점로를 열어주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엄청난 체력부담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겉으로 힘들다는 티가 나지 않는다. 이용의 팬인 안지은(20)씨는 “축구할 때 약간 화난듯이 진지하게 차는 이용 선수를 좋아한다. 어디로 패스할지 생각하는 모습이나 공을 따라가는 속도가 좋은 게 모두 매력적이다. 코너킥 때 좌우 둘러보는 눈빛의 카리스마는 얼마나 강렬한지…”라며 감탄했다.
열 번 실수하다 한 번 골을 넣으면 복권되는 공격수가 아니라, 열 번 잘하다가 한 번 실수하면 역적으로 몰리는 수비수의 약점도 운명처럼 달고 다닌다. 하지만 그는 불만이 없다. “뒤에서 보필하는 게 나의 임무다. 내가 튀는 스타일도 아니다. 무실점 경기를 하면 우리가 팀을 위해서 제몫을 했다는 생각에 공격수가 골 넣는 것 못지 않게 짜릿함을 느낀다”고 소개했다. 국내 최고의 자원과 시설을 갖춘 전북 소속으로 뛴 것은 행운이다. 워낙 좋은 선수들이 많아 배울 점도 많지만, 그가 부상으로 빠질 때조차 리그 우승을 차지했기에 미안함을 덜었던 것도 사실이다.
돌아보면 그에게 좋은 일보다 좌절의 순간이 많았다. 그때마다 그는 자기에게 시간을 투자했다. 그는 “프로에서도 좋은 선수들이 많지만 잘 하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의 에이전시는 “한때 웨이크보드도 탔지만, 요즘은 몸 생각해서 위험한 운동은 피한다. 기분 전환을 위해 쇼핑을 하거나, 머리 손질 등 작은 취미에 만족한다. 흡연은 상상할 수도 없고, 술조차 잘 먹지 않으려 한다”고 전했다.
이용은 수술 뒤 무난하게 버티면서 정상을 달려왔다. 이런 몸 상태를 유지하고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늘 충분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달궈줘야 한다. 때로는 지루한 스트레칭을 건너 뛰고 싶은 유혹도 느낀다. 그럴 때마다 재활의 시간 절감했던 축구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한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운동 후 회복하는 데 신경을 집중한다. 가리지 않고 잘 먹고, 잘 자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무엇을 위해? “동국이 형처럼 40살까지는 뛰어야죠.” 하긴 지금은 재능보다는 ‘관리’의 시대이고, 그는 꾸준한 몸 관리로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렸다.
완주/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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