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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7.28 09:20 수정 : 2018.07.28 13:52

[토요판] 김창금의 축구광 골키퍼 강현무

강현무가 24일 포항 송라의 클럽하우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며 밝게 웃고 있다.
국가대표가 뭐길래?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가대표가 되면 달라지는 게 많다. 당장 팬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미디어 노출이 많아진다. 협상력이 커지면서 소속팀에서 몸값이 솟구친다. 대표 선수가 누리는 가장 실질적인 혜택이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대표팀도 마찬가지다. 입상하거나 금메달을 따면 병역 혜택까지 기대할 수 있다. 연령별 대표팀도 비슷하다. 청소년 대표팀에 한번이라도 이름을 올리면 대학 들어가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김학범 감독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 명단을 발표하면서 명암이 갈렸다. 아시안게임에는 23살 이하 선수들이 중심이 돼 나가는데, 그동안 23살 이하팀의 주전 수문장이었던 강현무(23·포항 스틸러스)가 ‘날벼락’을 맞았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2018 러시아월드컵 한국 축구대표팀의 조현우(27·대구FC)가 갑작스럽게 주전 골키퍼 자리로 치고들어왔기 때문이다. 김학범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 입장에서는 세계 무대에서 검증된 조현우가 와일드카드로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었고, 두번째 골키퍼로는 ‘젊은 피’ 송범근(21·전북 현대)의 잠재력을 주목했다. 20명 엔트리에 골키퍼는 2명으로 제한돼 있어 결국 강현무는 탈락했다. 얼마나 속이 쓰릴까?

풋내기에서 ‘성난 사자’로

24일 포항 송라의 포항스틸러스클럽에서 만난 강현무는 막 낮잠에서 깬 듯했다. 천진한 표정에서는 금방 하품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솔직히 실망스럽기는 하죠. 하지만 그렇게 신경쓰지는 않아요.” 코와 입, 귀까지 모두 커다란 그는 조금의 불만도 내색하지 않았다. 시간을 한껏 잡아 늘린 슬로 모션의 장면처럼 그는 “잘했으면 좋겠어요”라며 웃었다. “원래, 그래요. 참 무던합니다.” 옆에 있던 임정민 포항 스틸러스 홍보담당이 한 마디 곁들인다. “정말 속 상하지 않냐?”라며 묻자, 수줍은 듯 “정말”이라고 한다.

골키퍼의 운명이 그렇다. 실수를 생각하는 순간 망한다. 잡념이나 번뇌가 틈입하는 순간 무너진다. 항상 주도권을 쥐고 마음을 다스려야 골문을 지킬 수 있다. 최순호 포항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강현무는 담대하다. 회복이 무척 빠르고, 실수에 연연하지 않는다. 뭐랄까, 유행을 타지 않는 선수다.” 골키퍼의 우열은 신체적 능력보다는 심리에서 갈린다라는 말처럼 들린다.

포항스틸러스 골키퍼 강현무
조현우 와일드카드 합류로
AG대표팀 명단에서 탈락
“그렇게 신경은 안써요, 정말”

오늘날 강현무 만든 졸레 코치
“반사신경, 스피드에선 최고다”
대표팀 골키퍼 구도는 예측불가
‘뒤집기’는 언제든 가능

물론 사람이기에,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익히기는 쉽지 않다. 포철고 졸업 뒤 포항에 입단한 강현무도 넘버3, 넘버4 골키퍼로 벤치를 달구다가 주전 장갑을 끼었고, 한 경기 한 경기 실전을 치르면서 더 단단해지고 있다. 그는 “확실히 경기에서 많이 배운다. 매 경기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순간 번쩍하며 깨달음 같은 것을 얻는다”고 했다. 경기를 직접 치르는 자의 특권이고, 끊임없이 연구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통찰이다.

1년여 전인 2017년 3월12일 포항전용경기장. 안방 개막 데뷔전에 나선 그는 오금이 저렸다. 광주FC를 상대로 프로 데뷔전 무실점 승리(2-0)를 이끈 뒤에는 엄청난 부담감 탓인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펑펑 울었다. 경기 중에 상대방의 프리킥 공을 헤딩으로 받아내는 ‘쇼’로 코칭 스태프와 팬들의 가슴을 졸인 것도 잊지못할 일이다. 그는 “첫 경기에 긴장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프리킥을 가슴으로 받아내려고 했다. 그런데 공이 예측보다 높게 날아와 머리로 간신히 막았다. 정말 큰일날 뻔했다”고 회상했다. 모두 풋내기 시절의 일화다.

올해 강현무는 그라운드의 ‘성난 사자’ 이미지로 바뀌었다. 골지역 5.5m 거리의 직사각형 안에서 그는 카리스마를 뽐낸다. 포항의 중앙 수비수 김광석은 그보다 12살 많은 띠동갑 선배다. 하지만 인정 사정 가리지 않는다. 늘 큰 소리로 “옆” “뒤” “집중해!”라며 쉴새없이 수비수들에게 지시한다. 그는 “말을 많이 해야 집중력이 유지된다. 또 크게 말해야 우리 수비수들이 빨리 알아듣는다”고 설명했다. 때로는 소리를 많이 질러 정신이 ‘띵~’해질 때도 있다고 한다. “처음에 선배들한테 ‘형’이라고 붙이다가, 나중에는 현기증 나서 못하겠더라. 그냥 팩트만 전달하게 됐다.” 위기의 순간을 겪기라도 하면, 집중력을 다잡는 듯한 표정이 중계 카메라에 생생하게 잡힌다. 하지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다. 그는 “나도 잘 해보려다가 실수한 적이 많다. 빈틈이 생겨 어려운 순간을 맞이할 때는 오히려 ‘형, 잘했어!’라며 자신감을 북돋아 준다. 골키퍼는 팀 분위기까지 살릴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포항 스틸러스의 졸레 콜키퍼 코치가 24일 클럽하우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마케도니아 출신의 졸레(본명 조르지 조바노프스키) 골키퍼 코치는 다른 측면을 강조한다. 강현무가 포철고 시절 처음 만난 졸레 코치는 유럽축구연맹(UEFA) 프로감독 자격증(P급)을 보유한 실력파다. 강현무가 포철고를 졸업하자 포항을 떠나게 된 그는 지난해 최순호 감독 부임으로 다시 포항으로 호출돼 강현무와 운명적으로 재회했다. 사실상 오늘의 강현무를 특급으로 만든 그는 “현무는 매우 영리하다. 반사신경과 스피드에서 국내 프로선수 가운데 최고다. 또 경기를 읽는 눈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경직된 연습과 달리 캐칭-다이빙-펀칭 등 골키퍼가 맞는 여러 상황을 섞은 프로그램을 돌리면서 강현무가 훈련의 재미를 높이고, 상황상황 대처 능력을 끌어올리도록 했다.

강현무도 골키퍼로서 훈련이 힘들지 않고 재미있게 바뀐 시점은 고교 3학년 때라고 고백했다. 초등학교 때 골키퍼를 보면서도 공격수를 맡기도 했던 강현무는 중학 시절에도 가끔 필드 플레이어로 출격하기도 했다. 그 때마다 골키퍼는 초라하거나 답답해보였다. 고교 1~2학년 때도 골망을 향해 들어오는 공을 막을 때의 짜릿함은 컸지만 훈련까지 즐거웠던 것은 아니다. 졸레 코치를 만난 강현무는 “아무리 훈련해도 지겹지가 않았다. 얼굴로 공을 막아도 아프지 않았고, 막아준 얼굴이 고마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뒤늦게 뛰어든 사례이지만, 발전의 속도는 빨랐다. 축구 데이터 회사인 ‘비주얼스포츠’에 따르면 2018 K리그1 17라운드까지 경기당 선방 순위에서 강현무(1.94개)는 서울의 양한빈(2.12개)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결정적인 선방을 팀 승점과 연결한 부문에서는 강현무(6점)가 팀에 6점을 안기면서 양한빈(3점), 수원의 신화용(3점), 강원의 이범영(3점), 전북의 송범근(3점), 대구의 조현우(3점), 제주의 이창근(2점)을 따돌렸다. 비주얼스포츠는 “강현무가 올해 무려 6점의 승점을 지켜냈다. 6점 차이는 포항이 강등권에 위치할 수도 있었다는 말과 같다”고 분석했다.

물론 강현무에게는 부족한 점도 많다. 골지역에서는 동물적인 반사 신경과 빠른 판단력으로 거의 100점의 점수를 받는다. 하지만 185㎝의 키 때문인지, 반경을 조금 넓힌 10~15m 공간에서는 상대의 크로스와 세트피스 때 마음먹은 대로 공을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빌드업 능력이나 킥의 정교함에서는 강현무가 조현우에 뒤지지 않는다. 최순호 감독은 “조현우가 다 갖추고 있다면, 현무는 공중볼 장악에서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그점을 보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지 해설위원은 “실망할 필요가 없다. 위기관리 능력에서 디테일을 보완하면 언제든 대표팀 골키퍼 구도가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포항 스틸러스의 주전 수문장 강현무가 4월25일 포항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2018 프로축구 K리그1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골킥을 하고 있다. 포항 스틸러스 제공
대표팀 탈락 뒤 오히려 시야 넓어져

아시안게임 대표팀 탈락은 그의 의욕을 자극하고 있다. 그동안 아시안게임 대표팀 승선이라는 좁은 틀에만 가둬두었던 시야도 확장했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골키퍼가 되겠다”는 꿈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물론 국가대표 넘버원 골키퍼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후보로 마지막 경기 후반에 나섰던 이운재는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대표 선수 선발에서 서동명 등에 밀려 탈락했고, 8년 뒤인 2002년 한-일월드컵 때 극적으로 김병지 그늘에서 벗어나 주전 장갑을 차지했다. 이운재는 2006년 독일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도 참가하는 등 이후 8년간 철옹성을 지켰다.

골키퍼 세계에서 주전과 후보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절벽이 존재한다. 감독은 주전 골키퍼가 큰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변화를 주지 않는다. 어떤 때는 후보 선수가 주전으로 올라서는 데 10년이 걸리기도 하고, 영영 기회를 잡지 못해 떠나는 경우도 있다.

강현무는 지금까지 운이 따르는 편이었다. 포항 유스 출신으로 졸레 코치를 만나면서 새롭게 눈을 떴고, 선배 골키퍼들의 부상으로 22살 때 주전으로 도약했다. 부모로부터 타고난 담대한 성격도 값진 자산이다. 신화용 등 포항을 거쳐간 명선수를 통해 경기 노하우를 배웠다. 입단 4년 만에 주전을 꿰찬 본인도 “20대 중후반에 프로팀 주전 골키퍼로 뛸 줄 알았는데 빨리 기회가 왔다”고 표현했다. 실제 프로축구 1부리그 12개 팀 가운데 그는 송범근과 함께 가장 나이가 어린 축에 속한다.

역대 많은 선수들이 연령별 대표팀에 들지 못했다가 나중에 스타가 된 사례는 그에게 힘이 된다. 유상철 전남 감독은 1991년 포르투갈 청소년(U-20) 대회 남북 단일팀 예비 엔트리로 마지막 선발전까지 갔으나 탈락했고, 김남일 대표팀 코치 역시 1996년 아시아 청소년(U-19)대회 우승을 일궜지만 1997년 U-20 월드컵과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에는 들지 못했다. 이영표 해설위원은 연령별 청소년 대표를 한번도 해보지 못해 속을 썩였으나, 허정무 감독에 의해 대표팀에 발탁되면서 역전 드라마를 썼다. 이정수 역시 1998년 아시아 청소년대회 우승에 기여했지만, 1999년 U-20 월드컵 엔트리에는 탈락했고 2008년 늦은 나이에 국가대표로 발탁돼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2골을 넣었다. 지난달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했던 이용(전북), 고요한(서울), 문선민(인천), 주세종(아산)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대표로 뽑힌 적이 없다. 반면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주역 가운데 더 뻗어나가지 못한 사례가 있다.

90분 내내 집중하는 게 가장 힘들다는 강현무는 “경기장 안에서의 상황은 몇십개 몇백개가 아니라 몇천개는 되는 것 같다”고 했다. 하루도 빠짐없는 연습으로 근육의 감각을 유지시키고, 기본기를 훈련하지만 “매 경기 방어 상황에 정답은 없다”고 했다. “프로 선수들의 실력차는 종이 한장 정도이고, 다만 자신감이 있으면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한골 먹으면 두골 넣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한다.”

상대방 선수의 동작을 연구하는 것은 필수지만, 그렇다고 너무 예측해 뜨지도 않는다. 그는 “예측해 미리 움직이는 것은 30% 정도인 것 같다. 나머지는 공을 보면서 움직인다”고 했다. 역동작에 걸리더라도 정지한 뒤 반대 방향으로 몸을 던지기 위해서다. 줄넘기는 그의 비장의 무기다. 그는 “한번 줄넘기를 하면 한시간 동안 계속한다. 그렇게 몸을 만들면 경기장에서 몸이 통통튀는 듯한 감각을 느낀다”고 했다.

아시안게임 불발의 좌절에서 벗어난 그는 새로운 지평을 눈앞에 뒀다. 포항 팬들은 최근 ‘강현무 응원가’까지 만들어 힘을 불어넣고 있다. 몸이 안 좋아도, 마음에 상처를 입어도 티내지 않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온 것이 오뚝이처럼 그를 일으켜 세우고 있다. 하긴 한국 골키퍼의 ‘전설’인 김병지 해설위원이 청소년이나 23살 이하 대표팀 경력이 없는 것에 비하면, 그는 청소년 대표 등 더 탄탄한 엘리트의 길을 걸어 왔다.

강현무는 “프로 첫해는 힘들었지만, 올해는 진짜 경기를 즐기고 재미있게 한다. 아시안게임 대표팀 탈락 뒤 대한민국 넘버원 골키퍼가 되겠다는 각오가 더 굳어졌다”고 힘주어 말했다. 자신감 하나는 이미 세계 최고의 수준이고, 위기의 순간 더 침착해 지는 성격이기에 그의 ‘뒤집기’가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포항/글·사진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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