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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7.22 09:29 수정 : 2017.07.27 17:24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6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한 대표팀 운영 방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러시아 월드컵 본선행 기로에
슈틸리케 경질 비상시국 맡아
난적 이란·우즈베크 경기 앞두고
최소 1승1무 얻어야 자력 진출

‘소통의 카리스마’ 리더십 강점
공격축구 살리되 안정성 보강 숙제
‘결과’에 민감한 한국 축구 풍토
정종선 “하늘에 빌듯 간절함으로”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6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한 대표팀 운영 방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토요판] 김창금의 축구광

신태용의 숙제

낙관론과 비관론이 엇갈린다. ‘8회 연속 월드컵 저력’을 강조하는 이가 있는 반면, 기적은 반복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하늘이 도울 것이라는 바람 못지않게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현실론이 비등한다. 이참에 아예 한국 축구의 새판을 짜자는 얘기도 나온다. 혼란기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행에 우리 사회의 촉각이 곤두서 있다. 지난 3월 야구월드컵인 세계야구클래식(WBC) 1차예선에서 한국팀이 떨어졌을 때와는 다르다. 야구 대표팀이 복병 네덜란드와 이스라엘에 져도 파장은 일시적이었다. 하지만 월드컵 예선은 야구와는 다르다. 축구는 열정이고 가슴이고 감정이다. 만약 본선에 오르지 못하면 축구협회 집행부가 물러나야 할지도 모르는 태풍이 몰려온다. 4년마다 한 번 찾아오는 월드컵 특수가 끊기면 방송사도 스포츠경제도 팬들도 시무룩해진다. 선수로 등록한 수만 10만명을 넘어선 축구의 폭발력 때문이다.

‘본선 좌절’ 태풍 분다면

‘여우’ 신태용 감독(47)이 해결사로 나섰다. 하지만 도전은 간단치가 않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2위(승점 13)가 불안한 것은 8월31일 이란(승점 20)과의 홈경기, 9월5일 우즈베키스탄(승점 12) 원정경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순위로 단순 비교를 해도 이란(23위)은 한국(51위)에 앞선다. 한국은 우즈베키스탄(65위)에 앞서지만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최종예선 과정에서 원정 무승이다. 최악의 형국이다. 하재훈 전 부천 에스케이(SK) 감독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처음에는 조직적인 모습의 축구를 선보였으나 나중에는 선수들이 알아서 하는 식으로 변했다. 감독의 축구철학이 과거 거스 히딩크 때처럼 선수들한테 녹아들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물론 전임 슈틸리케(63) 감독이 패장은 아니다. 그는 2년9개월간 태극호를 맡으면서 한때 신의 경지를 뜻하는 ‘갓틸리케’로 불렸다. 조 2위까지 월드컵 본선 직행티켓을 받으니 엄밀하게 따지면 조 2위를 지킨 슈틸리케가 ‘죽을죄’를 지은 것은 아니다. 정종선 전 언남고 감독은 “A조의 일본(승점 17)이나 사우디(16점), 호주(16점)를 봐도 승점 1 사이에 세 팀이 몰려 있어 일본도 본선에 간다고 장담할 수 없다. 슈틸리케 감독이 흡족한 경기를 보여주지 못했지만 아직도 한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 가능성은 확률적으로 75%는 된다”고 주장했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노리는 한국은 예선에서 늘 위기를 겪었다. 1993년 10월 아시아 최종예선 ‘도하의 기적’이 대표적이다. 동시에 한곳에서 열린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일본이 종료 10초 전 이라크 자파르한테 동점골(2-2)을 허용하자, 탈락이 확정된 것처럼 낙담하던 한국이 일본 대신 극적으로 본선티켓을 챙긴 적이 있다. 1997년 ‘도쿄 대첩’에서는 이민성의 역전골(2-1)로 험로를 돌파할 수 있었고, 2008~9년 최종예선 북한과의 경기(1승1무) 때도 기성용 등의 활약이 없었다면 사지에 몰렸을 것이다. 2005년 6월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 원정에서 박주영의 후반 동점골(1-1)은 위기에서 탈출하는 천금의 골이 됐다.

비상시국에 대타로 나선 신태용 감독이 느낄 부담감은 크다. 슈틸리케 감독보다는 확실히 낫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사령탑 경질로 인한 대표팀의 혼란 등 기회비용까지 만회해야 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신태용 감독은 월드컵 무대에서 한 번도 뛰어보지 못했지만 성남 일화의 선수로 프로 401경기(99골 68도움)에 출장한 레전드다. 슈틸리케 감독은 명문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수로 독일 대표팀에 뽑혀 월드컵까지 나갔다. 비록 한국과 유럽의 프로무대의 차이가 크지만, 재기발랄한 축구로 팬들과 교감했던 신태용 감독이 스타성에서 슈틸리케 감독에게 밀리지 않는다. 축구 색깔에서는 신태용 감독이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공격축구를, 슈틸리케 감독은 점유율 중심의 빌드업을 강조한다. 미드필드를 통한 패스 플레이를 선호하고, 체력보다는 두뇌의 판단 속도를 중시하는 점은 비슷하다.

지도자 경륜에서는 차이가 있다. 신태용 감독은 성남 일화의 사령탑으로 2010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랐으나 2년 뒤 물러났다. 2014년 슈틸리케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로 있다가 23살 이하 대표팀 감독으로 리우올림픽 8강, 20살 대표팀 감독으로 월드컵 16강 성적을 냈지만 A대표팀은 처음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1989년 스위스 대표팀 감독을 시작으로 독일 대표팀 코치, 코트디부아르 사령탑을 맡는 등 대표팀과 여러 프로팀을 거쳤고, 2015년 한국을 아시안컵 준우승과 동아시안컵 우승으로 이끌었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50대 감독층이 뭉텅 잘려나간 빈 공간에 40대 신태용 감독이 들어섰다. 보통은 월드컵 예선 3년을 통해서 한 나라 대표팀 축구가 더 강해져야 하는데 신태용 감독은 파산 직전에 올라탔다. 매우 힘든 조건에서 팀을 이끌게 됐다”고 설명했다.

신태용의 ‘슈틸리케 비교우위’

그렇다면 신태용 감독의 비교우위는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리더십을 꼽는다. 서현옥 전 호남대 감독은 “대표팀에 들어올 정도의 선수라면 기술적, 전술적으로 새롭게 가르칠 것이 없다. 잘 뛰는 선수를 발탁해 실제 경기에서는 죽을힘을 다해 뛰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선수들한테도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신뢰했지만 한국 선수들이 갖는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민주적인 리더십은 자칫 자유방임이나 방관형으로 바뀔 수가 있다. 슈틸리케 감독 아래 주장을 맡았던 기성용은 여러 차례 “선수들이 부족했다. 우리가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신태용 감독은 슈틸리케 감독보다 강력하고 끈끈한 리더십을 작동시켜야 한다.

신태용 감독은 슈틸리케 감독과 달리 한국 선수들의 미세한 감정까지 파악할 수 있다.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지도 스타일도 지시형(보스형)이나 방관형이 아니다. 오히려 유형을 넘나드는 안내형으로 볼 수 있다. ‘소통의 대가’여서 선수와 수평적으로 대화하면서도, 때로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다그친다. 선수 시절 오랫동안 주장을 맡으면서 벤치에 있는 선수들의 심리를 연구해 팀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능력이 있다. 평소 생활하다가 번뜩 든 아이디어를 주제로 선수와 대화하고, 카멜레온처럼 강온 양면을 구사하며 선수들을 응집시킨다. 그는 “대화하면서 안아야 할 선수가 있고 잘한다고 격려할 선수가 있다. 하지만 집중력을 잃거나 변명하는 선수는 따끔하게 혼낸다. 대화는 진심을 갖고 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칭찬을 하더라도 립싱크하듯 가식적으로 대하면 통하지 않는다.

전술 이해력이 높다고 하는 대표급 선수들이지만 설명력을 높일 필요도 있다. 하재훈 전 부천 에스케이 감독은 “한국 선수들은 이해가 잘 안 돼도 듣는 척하고 이해하는 척한다. 이해 안 되면 이해할 때까지 질문하고 문제가 해결돼야 다음 진도로 나가야 하는데 아직도 그런 데 미숙하다.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은 ‘한국에서 3년 걸릴 것이 일본에서는 반년이면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신태용 감독이 더 정확히 자신의 축구철학을 선수들에게 주입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전경준 코치는 신태용 감독의 복심이고, 김남일과 차두리 코치는 기강과 책임감, 헌신을 이끌어내는 동력이 돼야 한다. 하지만 팀 전력 완성의 95% 이상은 신태용 감독의 몫이다.

한국 특유의 ‘근성의 축구’에 대한 세대 간 심리 단층도 극복해야 한다. 과거 대표팀 선수들은 근성이나 정신력을 강조하는 풍토에서 성장했다. 6월 카타르와의 최종예선에 출전했던 고참급의 이근호는 “상대와 비교하면 열의에서 차이가 있다. 우리 선수들이 더 간절하고 더 응집하고, 나라를 대표한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질책했다. 20대가 주축이고 해외파가 다수인 대표팀은 과거와 다르다. 기성용과 손흥민은 중고등학교 때 이미 외국의 클럽축구 문화에서 성장했다. 대표팀이 주는 책임감이 예전보다 덜해진 경향도 있다. 김대길 해설위원은 “대표선수의 정체성은 대단한 것이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협회에서도 이런 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슈틸리케 경질이라는 극약 처방으로 외부환경이 좋아진 면도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코칭스태프 구성부터 경기 시간, 원정 일정까지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이 자신만의 코칭스태프를 구성하지 못하고, 구성된 코칭스태프조차 수시로 떠나면서 힘을 실어주지 못한 것과도 다르다. 축구협회는 이란과의 최종예선을 위해 공식 소집일보다 일주일을 더 앞당겨 K리거를 소집할 수 있도록 프로연맹에 협조를 구할 방침이다. 다행히 선수들 또한 상황의 긴급함을 알고 있어 정신적으로는 충분한 동기부여가 돼 있는 상태다.

축구의 의외성도 치밀한 계산에 의해 극복해야 한다. 한국은 이란, 우즈베키스탄과 최소 1승1무를 기록해야 자력으로 월드컵 본선에 직행한다. 이란은 조 1위로 본선행을 확정한 만큼 결사적으로 뛰지는 않을 것이다. 또 8월31일 중국-우즈베키스탄 경기 결과도 한국의 운명에 영향을 준다.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 이끄는 최하위 중국(승점 6)은 우즈베키스탄, 카타르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모두 이겨 조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전술적으로도 리피 감독의 중국은 이전보다 탄탄해졌다. 만약 중국이 우즈베키스탄을 잡고, 한국이 이란을 꺾는다면 한국은 9월5일 우즈베키스탄과의 마지막 경기 전에 본선행을 확정한다.

다만, 축구에서는 경기 시작하자마자 골이 터지는 경우도 있지만, 90분 내내 숱하게 골문을 위협해도 한 골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수들이 조급해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최경식 해설위원은 “어차피 전술은 대개 정해져 있다. 감독이 선수를 배치하고 그림을 만들면서 경기를 관리하면 골은 터지게 돼 있다. 의외성보다는 준비와 열정이 승패를 가르는 더 큰 요소”라고 했다. 서현옥 감독은 “똑같은 선수 11명으로는 절대 못 이긴다. 느린 선수 옆에 빠른 선수 넣고, 성질 급한 놈 옆에 느긋한 놈 놓고 해야 한다. 기동력이 없으면 엔진이 꺼진 자동차와 같다. 대표팀은 체력과 멘털, 의욕으로 뭉쳐져야 한다”고 했다.

‘평균 재임 1년’의 운명 끊을까

신태용 감독의 공격축구도 좀더 안정성을 보강할 필요는 있다. 신태용 감독은 2016년 1월 23살 이하 아시안컵 결승 일본전에서 전반을 2-0으로 압도적으로 앞서다가, 후반 내리 3골을 내줘 준우승에 그친 적이 있다. 리우올림픽과 최근 20살 이하 월드컵에서도 팬들에게는 흥미만점의 경기를 선물했지만 ‘결과’를 내지는 못했다. 조광래 대구FC 대표는 “여러 가지 장점이 많은 감독이다. 그러나 좀더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유의 신태용식 축구의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지금까지의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신태용 감독은 벼랑 끝에 서 있다. 최종예선 두 경기를 잘 치르면 영웅이 되지만, 잘못하면 역적이 된다. 이런 상황이 빚어진 것은 대표팀 감독 선임에 대한 협회의 철학 부재에도 원인이 있지만, 결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국 축구팬들의 조급증도 관련이 있다. 1948년 런던올림픽을 준비했던 초대 박정휘 축구대표팀 감독부터 신태용 감독까지 한국은 69년 동안 대표팀 감독을 79번이나 교체했다. 평균 재임기간이 1년이 안 된다. 독일이 1926년 오토 네르츠를 초대 대표팀 감독으로 임명한 뒤 현재의 요아힘 뢰프까지 91년 동안 10명의 감독에게 중책을 맡기면서 세계 최강의 팀을 만든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정종선 감독은 “개인이 튀는 것이 아니라 선수단이 하나의 팀이 돼야 한다. 감독은 아주 작은 디테일부터 선수들을 감동시켜야 한다. 단 한 경기를 이기기 위해 하늘에 빌듯이 모든 정성을 다해야 한다. 처음 지도자가 됐을 때의 그 간절함으로 이란전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신태용(오른쪽) 감독이 지난 9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과 제주의 경기를 보면서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과 얘기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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