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김양희의 야구광
SK 와이번스 최정
|
2년 연속 ‘홈런왕’을 꿈꾸는 최정(SK 와이번스)이 14일 인천 에스케이행복드림파크에서 타격 연습을 마친 뒤 자세를 취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고교 최고 타자 ‘이영민 타격상’ 받아
프로 진출 만 18살에 1군 홈런 때려
이승엽 등 이어 10대 두자릿수 기록
수비 문제로 트레이드 카드 오르기도
2010년부터 장타율 5할 이상 유지
지난해 40개로 공동 홈런 1위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근육량 늘려…
이상적 타구 궤적에 타구 속도 붙어”
생애 첫 50홈런 고지 오를지 주목
김성근 전 한화 감독의 표현은 이랬다. “그 아이만큼 나한테 덤비는 선수는 없었다. 센 훈련 강도에 불만 없이 훈련을 이겨냈다. 보통 독한 선수가 아니었다. 핑계도 없는 아이였다. 프로 선수의 견본이자 교과서 같은 선수다.”
한때 ‘김성근의 황태자’로 불렸기 때문일까. 하지만 최정(SK)은 누구나 인정하는 ‘악바리’였다. 하루 1000번 땅볼을 받아냈고 2000번 방망이를 돌렸다. 김 감독은 “지바 롯데 인스트럭터(2005년) 때 이승엽(현 삼성)도 힘든 훈련을 견뎠지만 당시 타격 훈련만 했다. 최정은 타격 훈련에 수비 훈련까지 하루에 모두 소화해냈다”며 “그때 한계를 극복했고 그런 경험이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준 것 같다”고 밝혔다.
그의 나이 이제 만 서른살. 지난해 처음 홈런왕(NC 에릭 테임즈와 함께 홈런 공동 1위)에 등극했고 올 시즌에도 홈런 1위(25개·22일 현재)를 질주 중이다. 22일 문학 엔씨전에서는 역대 15번째로 250홈런 고지를 밟았다. 이승엽, 심정수(은퇴) 다음으로 역대 최연소 기록이다. 하지만 그는 “프로 데뷔 뒤 야구를 잘한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나의 야구는 아직 50점짜리다”라고 말한다. 왜일까.
“‘어, 이러니까 되네’ 느낌이 온다”
2006년 11월 제주도 강창학야구장. 최정은 구르고 또 굴렀다. 그래도 악착같이 일어서서 감독이 쳐주는 펑고(수비 훈련 때 땅볼을 굴려주는 것)를 다 받아냈다. 김 감독은 아직도 생생하게 그때를 기억한다. “한번은 노란 글러브를 끼고 있었는데 내야에서 펑고 10개를 치면 10개를 다 놓쳤다. 어쩌다 잡고 던지면 공이 1루 더그아웃 복도 쪽으로 날아갔다. 진짜 ‘뭐 이런 놈이 다 있냐’ 싶었다.” 그럼에도 최정은 주저앉지 않았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힘든 훈련 일정을 모두 소화해냈다. “본인 스스로 믿음이 있던 것”이라고 김 감독은 말했다.
|
2006년 말 제주도 강창학야구장에서 수비 훈련을 하던 최정(SK)의 모습. 에스케이 와이번스 제공
|
최정은 “재미있던 시절”로 당시를 돌아본다. “야구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던 때라서 하루하루 배우는 게 재미가 있었다. 나는 성격상 재미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 한다. 힘들더라도 그 속에서 잔재미를 찾아내는 게 내 장점이다. 수비 연습 때 이런저런 자세를 해보면서 모르는 것을 조금씩 익혀가는 재미가 있었다. 연습하다 보면 ‘어, 이러니까 되네’라는 느낌이 온다. 솔직히 티배팅은 정말 재미가 없었다.” 이광길 현 케이티 위즈 수석코치는 그를 “야천”(야구천재)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스스로는 “기술 습득력이 빨라서 그런 것 같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아마추어 때 고교 최고 타자에게 수여되는 이영민 타격상을 받은 최정은 2005년 프로 입단 뒤 타격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홍현우(은퇴)에 이어 역대 두번째로 만 18살에 1군에서 홈런을 때려냈다. 2006년에는 방망이가 부러지는 와중에도 한화 마무리투수 구대성을 상대로 홈런을 만들어내 ‘소년장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해 최정은 김재현(은퇴), 이승엽, 김태균(한화)에 이어 10대 나이로 두 자릿수 홈런(12개)을 기록한 선수가 됐다. 하지만 수비는 엉망이었다. 실책이나 악송구가 많았다. 프로 지명을 투수로 받았던 그였다. 최정은 “고등학교 시절 비공식 기록으로 구속이 시속 150㎞까지 나왔다”면서도 “투구 폼이 야수가 공을 던지는 폼이어서 투수를 했으면 아마 지금 2군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수비 문제가 대두되면서 한때 팀 내에서 트레이드 카드로도 논의됐다. 당시 에스케이 전력분석팀에 있던 김정준 전 한화 코치는 “최정의 경우 조범현 감독 시절 3루수, 유격수를 시키려고 했는데 수비가 도저히 안 됐다. 외야수도 안 돼 결국 1루수로 기용해야 했지만 최정은 비쩍 마른 체형이었다. 1루수로 나서려면 적어도 홈런 30개 정도는 쳐줘야 하는데 팀 내에서 안 된다는 결론이 나왔고 결국 한화 투수와 트레이드 얘기가 오갔다”고 밝혔다. 김성근 감독과 함께한, 입에서 단내가 났던 2006년 가을캠프가 최정으로서는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최정은 스스로를 ‘노력형 선수’라고 생각할까. 그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노력은 아마 남들이 나보다 더 많이 했을 것이다. 나는 다만 집착이 심하다. 무엇이든 하나에 꽂히면 내가 만족할 때까지 계속하는 편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완성형으로 가려고 노력한다. 열아홉, 스무살 때는 집착이 더 심한 편이었다. 지금 그때처럼 훈련하라면 절대 못할 것이다.”
한때 그의 고민은 “타석에서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이었다. “연습할 때처럼 실전에서도 쳐야만 만족”하던 시절이 있었다. “전날 밤 숙소에서 생각했던 바대로 타격이 안 되면 신경이 너무 쓰이”던 때였다. 훈련이나 경기가 뜻대로 안 풀리면 다른 선수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더그아웃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때이기도 했다. 최정은 “타석에서 투수와 싸워야 하는데 어느 순간 나 자신과만 싸우고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요즘은 멘탈적으로 더 신경을 쓰면서 안 좋은 것은 빨리 잊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
최정(SK)은 갑자기 나타난 ‘홈런왕’이 아니다. 2011~2013년 시즌 홈런 2~3위권에서 활약했다. 이상적인 배트 각도(45도 안팎)를 자랑하는 최정의 타격 모습. 에스케이 와이번스 제공
|
올 시즌 개막 한 달간 홈런 12개
2010년부터 꾸준하게 장타율 5할(0.500) 이상을 기록해온 최정은 지난해 40홈런을 쏘아 올렸다. 이전까지는 시즌 28홈런(2013년)이 개인 최다홈런이었다. 홈런 2위(2012년), 홈런 3위(2011년, 2013년)에 오른 적은 있지만 타이틀을 차지한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최정은 “장타를 늘리고 싶어 몇 년 동안 꾸준하게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면서 근육량을 늘렸다”고 했다. 데뷔 때 82~83㎏이었던 그의 몸무게는 현재 97㎏까지 늘었다. “왜소하다”는 평가를 들었던 10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이젠 1경기 4홈런(4월8일 문학 NC전)을 칠 정도로 타구에 힘이 제대로 실린다.
정경배 에스케이 타격코치는 “지난해 홈런왕이 된 뒤 스프링캠프 때 더 업그레이드됐다”며 “스윙 궤도가 좋아져서 공을 스위트 스폿(공과 방망이가 만나는 최적의 지점)에서 2~3개 정도 더 밀고 간다는 느낌이 든다. 옛날 이승엽이 홈런을 많이 칠 때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최정은 “잘 안 맞을 때 이것저것 바꿔봤는데 작년에 바꾼 타격 폼이 내게 잘 맞는 듯하다”고 했다.
‘에스케이 왕조시대’ 때 최정과 함께 뛰었던 김재현 <스포티브이>(SPOTV) 해설위원은 “최정은 성실하고 배팅에 대한 욕심도 있으며 타격 폼 연구도 꾸준히 하는 후배였다”며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타격 폼을 응용하고 변형하면서 자신만의 타격 폼을 계속 찾아왔고 이제 자신에게 맞는 타격 폼을 찾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어 “실투를 놓치는 게 줄었고 임팩트까지 가는 시간이 짧아지면서 공이 방망이에 접촉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공을 맞는 면적이 앞뒤 1개 더 넓어지면서 타구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에스케이 외국인 사령탑 트레이 힐만 감독은 “최정은 힘이 워낙 좋고 타구 각도(45도 안팎) 또한 이상적”이라며 “내가 지금껏 본 최고의 우타자 중에서도 손에 꼽힌다”고 했다.
2013년 117.32m(28홈런)였던 최정의 홈런 평균 비거리는 2014년 113.98m(14홈런)로 줄었다가 2015년에는 116.18m(17홈런), 지난해에는 117.75m(40홈런)로 점점 늘어났다. 원래의 타구 궤적에 타구 속도가 받쳐주면서 홈런 양산의 길로 들어선 셈이다. 같은 에스케이 유니폼을 입고 있는 최정의 막내 동생 최항(23)은 “형 같은 스윙을 하는 타자는 국내에 없는 것 같다. 흉내 내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며 “폴로 스루가 너무 좋다”고 했다.
자신을 거듭 채찍질해가며 기어코 홈런왕에 등극한 최정은 올 시즌 개막 한 달간 12개 홈런을 몰아 쳤다. 5월 초 손가락 염증 탓에 주춤하며 팀 후배 한동민(29)에게 잠깐 홈런 1위를 내주기도 했지만 13일부터 홈런포를 재가동하며 홈런 1위 자리를 되찾았다. 별다른 부상 없이 현재 페이스가 유지될 경우 최정은 생애 첫 50홈런 고지도 밟을 수 있다.
최정은 팀 후배와 홈런왕 경쟁을 벌이는 데 대해 “(한)동민이는 스윙이 짧고 타격할 때 힘을 한껏 모아서 친다. 동민이의 좋은 스윙이나 타이밍을 따라가려고 하고 있다”며 “홈런왕 타이틀은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다. 시즌 막판에 가시권에 있으면 타이틀에 도전할 것”이라고 했다. 22일 현재 20홈런 이상을 친 선수는 최정과 한동민(22개)이 ‘유이’하다.
|
굳은살이 박인 최정(SK)의 손바닥. 몸에 맞는 공이 잦아 그의 몸 구석구석은 상처투성이다. 최정은 통산 몸에 맞는 공 1위(195개)에 올라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정·평·항’ 3형제 중 맏형
최정은 3형제 중 맏형이다. 고교 영어교사인 아버지는 ‘정’직하고 ‘평’탄하게 ‘항’상 우애를 갖고 살라는 뜻으로 아들들에게 정, 평, 항의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다. 최항은 “형은 지금껏 나에게 화를 낸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야구 관련 조언도 세세하게 잘 해준다”며 “형은 경기가 안 풀리는 날이면 집에 와서 튜빙이나 보강 운동, 스윙 연습 등을 따로 하고는 했다. 야구 선수로서 형은 나의 우상이자 첫번째 롤모델”이라고 했다. 최정은 “동생에게는 늘 ‘부상만 당하지 말라’고 얘기한다”고 했다. 2014, 2015년에 부상으로 90경기도 채 출전하지 못한 데 따른 조언이다.
사실 어릴 적 축구를 좋아했던 최정은 야구를 시작하기 전까지 야구장에 가본 적이 없다. 그린스카우트로 야구장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딱 한 번 갔는데 “그라운드 위 선수들이 개미처럼 보이고 야구 경기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잡고 치고 던지는 게 재밌어서” 야구에 빠진 뒤로는 무섭게 빠져들었다. 눈물이 많지 않지만 초등학교 시절에는 “두번째 투수로 나갔다가 팀이 역전당해서”, 프로에 와서는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아깝게 놓쳐서”(2009년) 펑펑 울었다. 일견 순해 보이지만 승부욕만큼은 타고났다. 현역이면서도 통산 몸에 맞는 공 1위(22일 현재 195개)에 올라 있는 이유일 것이다.
고단했던 스무살을 견디고 서른 즈음 야구의 꽃, 홈런 공장장(SK는 팀 홈런이 많아서 ‘홈런 공장’으로 불린다)이 됐다. 스스로는 “집착”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의 ‘집착’은 반걸음이라도 더 나아가기 위한 끈기였고, 절대 포기하거나 무너지지 않는 신념이었으며, ‘야구 장인’(김성근 감독)조차 혀를 내두르게 한 열정이었다. 그리고 최정은 또 다른 10년을 겨냥한다. “경험을 통해 다치는 것보다 못하는 게 낫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으로서는 안 다치고 1년을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 은퇴할 때까지 목표도 단 하나다. 안 다치고 1년, 1년을 버티는 것, 그래서 한때는 0점이었던 지금의 50점짜리 야구를 10년 뒤에는 100점짜리로 만드는 것, 그것이 나의 야구 인생 목표다. 야구는 계속 배워나가는 것이니까.”(최정)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