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7.02.03 19:24 수정 : 2017.02.03 20:16

“최대한 15m 안팎의 가까운 거리를 지키면서 시선은 전체 상황을 장악해야 한다.” 김종혁 심판은 실수를 줄이기 위해 끊임없이 슬로비디오를 보며 동작 연구를 한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김창금의 축구광
축구 심판 김종혁

“최대한 15m 안팎의 가까운 거리를 지키면서 시선은 전체 상황을 장악해야 한다.” 김종혁 심판은 실수를 줄이기 위해 끊임없이 슬로비디오를 보며 동작 연구를 한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골은 줄어들고 있다.

프리미어리그에서도 경기당 2.66골이 최근의 추세다. 3.5골 가깝던 1950년대의 기록과 비교하면 1골가량 적다. 공격 기술도 좋아졌지만 수비 능력도 덩달아 올라왔고, 같은 리그 내 팀간 전력차도 줄었다. 선수들의 이동이 자유롭고, 전술이나 선수단 관리 정보도 빠르게 퍼진다. 대륙간 경기력 편차도 축소됐다. <지금껏 축구는 왜 오류투성일까?>(브레인스토어)의 저자인 크리스 앤더슨과 데이비드 샐리의 분석은 한국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K리그 클래식도 지난해 경기당 평균 2.71골을 기록했고, 이전 3~4년간엔 좀더 낮은 수준이었다.

이런 환경 변화에 민감한 직업군이 심판이다. 경기 속도가 빨라져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데, 득점까지 떨어지면 한 골의 희소성은 더 커진다. 앤더슨과 샐리는 “팬들이 축구장에 가는 이유는 골 때문이 아니라, 골이 핵심적인 구실을 하는 경기를 보기 위해서”라고 단언한다. 팬들은 90분 동안 손에 땀을 쥐고 짜릿한 순간을 기대하지만, “잘 봐야 본전”이란 푸념을 안고 사는 심판들은 더 큰 부담을 지게 됐다.

부드러운 미소의 김종혁(34) 심판은 눈이 날카롭다. 시력을 물어보니 1.2, 1.5라고 한다. ‘매의 눈’이다. 하지만 심판의 능력은 눈보다 위치에서 나온다. “주심은 아무 데나 서 있지 않는다. 서는 위치는 모두 계산에 의해 정해진다. 최대한 15m 안팎의 가까운 거리를 지키면서 시선은 전체 상황을 장악해야 한다. 프리킥 상황이라면 공과 수비와 공격진, 골키퍼와 부심까지 시야에 잡아야 한다.” 이런 복잡한 장면에서 파울을 가리고 휘슬을 부는 것은 각종 조건과 변수 등 정보를 종합해 진단을 내려야 하는 의사와 같다. 때로는 먼 곳에서 봐야 더 잘 보인다.

운명적으로 악역을 맡은 존재

선수와 선수가 정면으로 충돌할 땐 판단하기가 쉽다. 하지만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두 선수의 허벅지가 서로 살짝 닿았거나, 수비수가 공격수를 막기 위해 등에 손을 댔을 때는 미묘해진다. 만약 한 선수가 넘어졌다면, 실제 가한 외력이 넘어뜨릴 수 있을 정도인지 따지는 것은 자기공명영상장치를 들이대도 쉽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시야가 가려져 있을 경우 판단은 더 어려워진다. 그러나 주심은 운명적으로 휘슬을 불거나 경기를 진행하는 악역을 맡도록 돼 있다.

이 괴로운 싸움은 실수를 줄이는 확률게임인데, 주심이 동원하는 최고의 방법은 줄창 슬로비디오를 보면서 하는 공부다. 김종혁 심판은 “비디오를 보면서 끊임없이 동작 연구를 한다. 국내 경기뿐 아니라 외국 영상도 본다”고 했다. 여기에 누가 잘 넘어지는지, 누가 몸싸움을 즐겨 하는지, 누가 핵심 선수인지, 누가 팀의 리더인지, 누가 말썽쟁이인지, 누가 파울을 잘하는지, 감독의 전술은 4-4-2인지 3-4-2-1인지도 알아야 한다. 말처럼 무조건 뛰지 않고 효율적으로, 때로는 예측해 움직여야 한다.

좀더 깊숙이 들어가면 디테일의 경쟁이다. 김종혁 심판은 “판정을 내릴 때는 선수의 스피드, 디딤발이나 들이대는 다리의 모양새, 마지막 공 터치 순간, 축구화 스터드의 높낮이와 각도, 공이 흐르는 방향과 선수의 자세까지 상세하게 잡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헤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주심은 높게 날아오는 공에 시선을 두기보다는 낙하지점에서 경쟁하는 선수들의 영토싸움을 눈여겨본 뒤 미리 자리를 잡은 선수한테 우선권을 준다.

선수를 부상으로부터 보호해야 하지만 공격수를 수비수보다 우위에 두는 것은 아니다. 정당한 몸싸움은 인정하나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 그는 “K리그 클래식처럼 톱 수준의 경기에서 선수들이 충돌할 때 어느 정도까지는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장신의 공격수와 단신의 수비수 사이의 싸움에서는 상대적인 힘의 차이를 감안한다”고 했다. 벌칙구역 안에서는 조그만 충격에도 넘어지려고 하는 공격수에게 속지 말아야 하지만, 세트피스 때 상대의 옷을 잡은 수비수의 동작에 일일이 휘슬을 불 수도 없다.

광양제철고 중앙공격수 선수 출신
다친 무릎인대 수술 뒤 축구 접어
2009년 국제심판 첫 A매치 데뷔
고정팬 거느린 ‘전국구’ 유명세

피파, 연 3회 이상 심판 체력테스트
하루도 빠짐없이 달리기와 근력훈련
슬로비디오 보며 실수 줄이는 연습
“주심 위치는 모두 계산돼 있다”

판정관인 주심의 자율성은 모순 덩어리다. 판정은 두 팀 가운데 한 팀엔 유리하지 않다. 관중석의 서포터스는 감정을 앞세운다. 그런데 주심은 모두한테 신뢰를 얻어야 한다. 적으로부터도 인정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에스케이(SK)를 이끌었던 하재훈 전 감독은 “첫 휘슬이 중요하다. 그 판정 기준에 따라 이후 파울에 대한 경중의 조처가 일관되게 이뤄져야 한다. 또 소신있게 판정하면서 많이 뛰어야 한다”고 했다.

19살에 판관의 길로 접어든 김종혁 심판은 2009년 국제심판으로 첫 A매치(몽골-괌)를 치렀고, 2011년 K리그 심판으로 진입해 대한축구협회 최우수심판(2012년)을 거쳐 2015년 국제축구연맹(FIFA) 주최 아시안컵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에서는 백업 주심으로 추천을 받았다. 밝게 웃으면서 맺고 끊는 것이 명쾌한 김종혁 심판은 전국구여서 고정팬도 있다.

물론 주심은 100% 완벽할 수 없다. 경기 뒤에는 “잘 봤다”, “못 봤다”라는 느낌을 갖지만, 집에 돌아와 다시 경기를 보면 아쉬움만 남는다고 한다. 비디오 리플레이도 가려내기 힘든 상황을 0.1초의 찰나에도 정확하게 판별해야 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김종혁 주심은 “90% 정도는 맞힌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관중석 아이 가리키며 “진정하라” 다독여

통상 경기 중 개별 선수들이 공을 잡는 시간은 1분이 안 되고, 1~2번 터치한 뒤 패스로 연결된다. 심판은 공을 쫓아가야 한다. 1m83, 76㎏의 날렵한 몸을 갖춘 김종혁 심판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달리기와 근력훈련을 한다. 힘재활스포츠라는 곳에서 마사지도 받는다. 몸이 준비되지 않으면 심판을 볼 수 없다”고 했다. 프로선수들이 경기당 뛰는 거리는 10~11㎞ 안팎인데, 주심은 더 뛰어야 한다. 패스를 주로 하는 팀을 만나면 쉴 틈이라도 있지만, 역습과 롱볼 공격을 선호하는 팀의 경기에선 공수가 바뀔 때 100m 달리기 하듯 총알처럼 뛰쳐나가야 한다.

나라별로 다른 축구장 환경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란의 아자디스타디움처럼 고지대에서 뛸 때는 “10분만 지나도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운이 쪽 빠진다”고 했다. 특히 중동지역은 시차뿐만 아니라 공기 중에 미세한 모래 가루가 있어 숨이 컥컥 막힌다고 한다. 그래서 전반이 끝난 뒤 라커룸에서 “후반전 끝난 것 아냐!”라고 말할 정도로 녹초가 된다고 한다.

주심은 경기의 흐름이나 선수를 이해하는 눈이 필요하다. 광양제철고 중앙공격수 출신인 김종혁 주심은 학원축구 시절의 경험이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체력이다. 피파는 지난해부터 국제심판의 연령기준을 완전히 풀면서도 연간 3회 이상 실시해야 하는 심판 체력테스트를 더욱 강화했다. 김종혁 심판의 경우 “무결점 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제1의 철칙이다. 토요일 경기를 치르면 일요일엔 회복훈련, 월요일부터 강도를 높여 수요일 정점에서 훈련한 뒤 목요일과 금요일엔 강도를 낮춘다. 보통 1시간30분가량 투입하는데 수요일 최고조로 몸을 단련할 때는 75m를 15초 안에 뛰고, 15초를 쉰 다음에 다시 뛰는 식으로 40번을 반복한다. “빨리 뛰고, 빨리 회복해야 하는” 훈련을 통해 연간 30회 정도의 경기를 소화한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 축구의 판정 문화는 척박했다. 효창운동장에서 학원축구를 취재할 때 보면 관중석의 학부모는 자식들 앞에서 심판에게 욕설을 퍼붓는 모습이 일상적이었다. 아이들은 심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존중심도 없었다. 심판의 이상한 판정은 불신의 악순환에 기름을 부었다. 광양제철고의 센터 포워드였던 김종혁 심판도 3학년 때 무릎인대 부상으로 심판계로 전입할 때 흔쾌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다.

하지만 시스템과 사람이 판을 바꾸고 있다. 프로축구연맹이 엄정한 판정을 위해 칼을 뺐다. 심판은 경기 뒤 냉혹하게 평가를 받는다. 경기감독관과 심판위원 등 세명이 현장에서 즉시 점수를 매기고, 사후에는 휘슬 상황을 8~10명의 분석관이 1초 단위로 끊어서 보면서 문제점을 찾아낸다. 애매할 때는 주심에게 유리하게 하는 게 국제 관례인데, 너무 가혹하게 다룬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구단과의 유착을 막기 위해 경기 배정은 컴퓨터로 하고, 거점숙소제를 통해 경기 전날까지도 맡아야 할 경기를 알 수 없다. 최종적인 주·부심 조합은 경기 한 시간 전에 통보받는다. 무선 마이크 통신은 감독관한테도 연결돼 노출돼 있다. 심판승강제까지 도입돼 기량이 떨어지는 심판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각박한 시스템은 판정의 질을 높인 긍정적인 기능을 한 것이 사실이다. 5년 전과 비교할 때 K리그의 심판 수준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차범근 피파 20살 이하 월드컵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은 “심판의 수준이 확실히 과거보다는 좋아졌다”고 평가한다.

그는 카드를 꺼낼 때 인상 쓰지 않는다. 선수가 격해질 때는 관중석의 어린아이를 가리키며 “진정하라”고 다독인다. 변화는 피부로 느낀다. 김종혁 심판은 “6년 전 처음 K리그에서 뛸 때는 전반전 끝났을 때, 후반전 끝났을 때 감독이나 선수가 항의했다. 지금은 지도자들과 전혀 말싸움이 없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팬도 웃는 얼굴로 선수를 대하고, 여유있게 경기를 관리하는 주심을 보면 마음이 편하다. “내가 누군데”라는 식의 과거 권위주의 심판은 거의 사라졌다.

19살에 판관의 길로 접어든 김종혁 심판은 2009년 국제심판으로 첫 A매치를 치렀고, 2011년 K리그 심판으로 진입해 대한축구협회 최우수심판에 뽑히기도 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프리킥 거리 어림잡아 재도 거의 맞아

고3 때까지 잘나가던 축구 선수는 독일까지 가서 수술한 무릎의 인대가 낫지 않아 축구를 접었다. 당시 감독이었던 기영옥 광주FC 단장이 심판의 길을 권하면서 인생의 항로는 달라졌다. 한국의 간판 심판으로 자리도 잡았다. 하지만 늘 살얼음판이다. 지난해 수원과 서울의 경기에서는 던지기 동작을 지체한 선수에게 경고를 주어, 경고 누적 퇴장을 시키면서 이슈 인물이 된 적도 있다. 프로축구연맹의 실경기시간 늘리기 지침에 따라 지연 행위를 징계한 정당한 조처였지만 수원 서포터스는 강하게 반발해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때로 오심으로 마음 아파하고, 팬들의 비난도 받는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만족한다.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심판이 됐고, 피파와 K리그의 판정 기준이 다르지만 누구보다 잘 적응하고 있다.

이쯤에서 생기는 궁금증. 과연 프리킥 상황 때 9m15의 거리는 얼마나 정확할까. 김종혁 심판은 “초보 시절에는 보폭으로 정확하게 쟀다. 지금은 어림잡아 짐작해서 거리를 재도 거의 맞는다. 간혹 나중에 비디오를 보면서 너무 길게 잡거나 짧게 잡은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고 했다. 나라별로 선수들의 특성도 알게 됐다. 그는 “일본 선수들은 호각이 울릴 때까지 뛰는데 심판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중동 선수들은 무언가 얻기 위해 액션을 많이 취한다. 남미는 거의 항의를 안 하고, 유럽 선수들은 어느 정도 항의하지만 심판을 존중한다. 한국 축구는 거칠지만 패싱게임 할 때는 매우 뛰어나다”고 했다.

※ 김종혁 심판 프로필

1983년생. 1m83, 76㎏
2008 FA컵 심판상
2008·2010 내셔널리그 최우수심판
2009 A매치 몽골-괌 경기 데뷔
2011 K리그 심판 입문
2012 대한축구협회 최우수심판
2015 아시안컵 주심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축구연맹 추천 후보심판

▶ 김창금 여자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이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란 말이 있다. 그런데 축구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학창시절도 아닌 군대였으니, 여자들은 이런 마음을 알까? <한겨레> 스포츠 기자로 1999년 이후 줄곧 축구기사를 써오면서 대한민국 여성들이 마음껏 축구 할 수 있는 날을 만드는 꿈을 간직해왔다. 스포츠 경제와 스포츠 인권에도 관심이 많다. ‘김양희의 야구광’과 함께 한달에 한번씩 번갈아 연재된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야구광, 축구광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