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김창금의 축구광
매치 에이전트 정재훈
한 국내 대기업의 현지법인에서 영업맨으로 일하던 정재훈 모로스포츠마케팅 대표는 한때 안정환 등 유명 선수를 거느린 톱5 선수 에이전트를 거쳐 지금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직접 관리하는 매치 에이전트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합정역 근처 스포츠 에이전시 모로 사무실에서 정 대표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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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간 A매치 등 중간고리 역할
항공료 뺀 대진료의 10%를 챙겨
전세계 100여명, 한국엔 3명뿐 대기업 현지법인 영업맨 일하다
월드컵 유치 뒤 협회 국제부 옮겨
각국 협회와 감독 등 인맥이 자산
“떨어지는 감을 먹는 게 아니다” 반면 대표팀이나 프로팀 경기를 성사시키는 매치 에이전트는 등록 기준이 까다롭다. 대한축구협회의 추천을 받은 뒤 피파의 요건을 맞춰야 자격을 얻을 수 있다. 피파는 2억2천만원(20만스위스프랑)까지 배상이 가능한 보험 가입서나 1억1천만원(10만스위스프랑)의 자금을 예치한 통장을 제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상당히 고액으로 경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재정적인 완충을 위해 설정해 두었다. 평가전이 성사되면 매치 에이전트는 통상 항공료를 제외한 대진료의 10%를 수수료로 받는다. 전세계 매치 에이전트는 100여명으로 한국엔 정 대표를 비롯해 황정우 FC네트워크 대표, 김중석 K스포츠 인터내셔널 대표 등 셋이 등록돼 있다. 정 대표는 선수 에이전트를 거쳐 매치 에이전트로 전업했다. 애초 정 대표는 1994년 현대중공업 벨기에 현지법인에 특채된 국제통 영업맨이었다. 본인은 “중장비 열심히 팔아 벨기에 시장을 확대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회사의 배려와 한국의 월드컵 유치를 계기로 축구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되고, 원어민 수준의 영어와 불어 구사 능력으로 한일월드컵 전에는 아예 축구협회 국제부 직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대표팀 지원팀장 등을 맡으면서 주요 선수와 감독 등 인맥을 확보했고, 나중에 에이전트로 새출발하는 발판이 됐다. 2007년 축구협회를 떠난 정 대표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 내가 하던 것을 떠나 다른 것을 할 자신이 없었다. 해오던 것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이 맞았다”고 했다. 안정환을 비롯해 이운재, 김두현, 김진규, 강수일, 김형범, 임유환 등 한때 20여명의 선수를 거느려 국내 톱5 안에 드는 선수 에이전트로 꼽히기도 했다. 안정환이나 박성화 감독을 초기 중국시장으로 보낸 것도 신선한 화제가 됐다. 하지만 2011년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안면마비 증상으로 열흘간 병상에 누우면서 생각을 바꿨다. “선수 에이전트를 더 이상 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한국팀 국제시장 상품성은 충분 사실 한국의 에이전트는 선수나 구단과 동급이 아닌 을이다. 선수의 가족이 나서 계약 성사로 받는 수수료를 깎으려 하는 사례도 많다. 에이전트를 공항에 나와 픽업을 하거나 외국 등 객지에 나갔을 때 밥이나 빨래 등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으로 여기는 부류도 있다. 다수의 선수를 확보하지 못한 영세한 에이전트들은 어떻게든 선수를 외국에 보내려고 하는 경향도 있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한국의 에이전트는 시장을 확대하기보다는 연봉에서 파생되는 수수료 의존 비율이 높다. 에이전트가 사업을 키워서 광고 계약이라도 하나 더 따내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선수들도 에이전트 비용을 아까워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정 대표는 인간적으로 힘들다는 표현을 했다. 그는 “에이전트 세계에는 ‘선수를 사람으로 보지 말고 상품으로 보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에이전트의 판단과 조언이 선수의 장래에 정말 큰 영향을 미친다.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때로는 선수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크다”고 했다.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일하는 ‘버럭’ 스타일의 정 대표는 자기 이익 챙기기 위해 따지거나, 갑처럼 굴려는 선수를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2011년부터는 선수 에이전트를 포기하고 매치 에이전트로 말을 갈아탔다. 그는 “매치 에이전트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수입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선수나 구단으로부터 상처를 받을 일도 없다. 일은 고될지 모르지만 쏟은 땀을 배반하는 일은 전혀 없다”고 했다. 일의 성격이 그렇다. 각국의 협회가 요구하는 조건만 조율하면 A매치가 이뤄지고, A매치 관련 예산은 미리 짜여 있기 때문에 금전 문제도 깔끔하다. 감정 문제로 대립할 일도 없이 신뢰를 주며 쿨하게 처신하면 된다. 국제적인 인맥은 기본이다. 정 대표는 “A매치 성사는 얼마나 많은 네트워크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피파보다는 각국의 축구협회 회장과 사무총장, 국가대표 감독과의 인맥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아시아축구연맹 시상식, 피파 총회 등 각종 미팅, 각국 감독들이 참석하는 월드컵 조추첨 등 축구인들이 모이는 자리엔 무조건 나간다. 그는 “축구 이 바닥은 넓을 것 같지만 뛰는 사람은 한정돼 있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알기 때문에 알음알음 관계를 확대해 나간다”고 했다. 여기에 정보와 전략이 필요하다. 가령 6월 프라하에서 열린 한국과 체코의 경기는 현지시각으로 오후 3시에 열렸다. 유럽에서 이 시간대에 경기하는 것은 흔치 않다. 하지만 정 대표는 유로 2016을 앞둔 체코가 첫 경기인 스페인전을 오후 3시에 치르는 것을 알고, “실전에 대비해 낮 시간에 경기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결국 한국시각 밤 10시에 중계가 이뤄지면서 경기의 값어치는 급속하게 올라갔다. 상대와의 정보 전쟁에서도 이겨야 한다. 가령 2013년 11월 두바이에서 열린 한국과 러시아의 친선경기는 러시아와 평가전을 치르려고 했던 슬로베니아축구협회와 러시아축구협회의 틈새를 파고들어 조건을 파악한 뒤 유리하게 베팅해 경기를 성사시킨 사례에 속한다. 매치 에이전트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한-일전처럼 같은 아시아축구연맹에 속해 있으면서 오랫동안 친선경기를 해온 전통의 국가들은 중간에 매치 에이전트를 세우지 않는다. 양국 축구협회 국제국이 관례대로 하면 된다. 하지만 타 대륙 연맹이나 같은 대륙이라도 관계가 적은 나라와 경기를 하려면 반드시 매치 에이전트가 필요하다. 전한진 대한축구협회 국제팀장은 “협회와 협회가 직접 계약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협회와 협회의 관계는 한 경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수십년간 관계를 지속해야 하는데, 중간에 돈 얘기를 하거나 날짜나 숙박 같은 미세한 부분까지 실랑이를 하다 보면 아예 관계가 망가질 위험이 있다. 에이전트가 필요한 이유”라고 했다. 반대로 협회가 직접 협상에 나서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가령 브라질축구협회에 A매치를 제안하면 “전속 에이전트와 협의하라”는 답이 돌아온다. 보통 브라질축구협회는 연간 5차례 식으로 경기 횟수를 에이전트에게 통보하는데, 브라질과 경기를 하려면 반드시 지정 에이전트를 거쳐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 축구대표팀의 국제시장 상품성은 얼마나 될까. 정 대표는 “A매치는 늘 강팀과 하는 것이 아니다. 스페인처럼 강호라도 필요에 따라서는 중간 정도의 팀과 경기를 필요로 할 때도 있다. 한국은 팀 인지도가 높고, 누구라도 한번쯤 붙어보고 싶은 매력이 있는 나라다”라고 전했다. “명문 팀 데려왔는데 관중이 없었다” 물론 과거에 비해 월드컵이나 아시안컵 예선 등 공식경기를 제외한 대표팀 A매치는 많이 줄었다. 피파가 2014년부터 A매치 데이에 월드컵 예선전을 대거 포진시켰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부터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예선에서 한국은 2차 예선부터 나서 라오스, 미얀마 등과 싸웠다. 이전에 3차 예선부터 나갔던 것과는 다르다. 그만큼 친선경기를 치를 수 있는 횟수가 줄어든 것이다. 이런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은 새로운 시장 개척이다. 정 대표는 프로팀을 유치하거나 제3국에 진출해 친선경기를 만들고 있다. 8월20일 울산에서 열린 여자축구 올스타전에 유러피언챔피언십에서 4회 우승한 프랑크푸르트를 초청한 것은 한 사례다. 정 대표는 “유럽의 명문 팀을 섭외해 데려왔는데 경기장에 관중이 없었다. 한국 축구에 대한 자부심으로 일해왔는데 상대팀 볼 면목이 없어 답답한 적이 있다”고 했다. 에이전트의 덕목은 신뢰다. 한번 신망이 무너지면 일어설 수가 없다. 국내 매치 에이전트 가운데 한 명은 국외 파트너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송사에 오르면서 평판이 나빠졌다. 일년의 3분의 1을 해외에 체류하는 정 대표도 이런 점 때문에 신뢰를 지키는 데 온 힘을 쏟는다. 그는 “과거에는 소개만 해주면 됐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세팅해주고 관리해주어야 한다. 에이전트는 떨어지는 감을 먹는 게 아니다. 끊임없이 고민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달콤한 순간은 있다. 그는 “A매치 90분을 통해 협회나 경기장의 수많은 팬, 경기장 밖의 수백만 시청자를 만족시켰다고 생각할 때 희열을 느낀다. 특히 한국팀의 경기 때는 뭉클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고 했다. 에이전트 지망생들에 대해서는, “선수의 미래는 금전적인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에이전트에 따라 선수가 성패가 좌우된다. 선수한테 을이 돼 해야 할 말을 묻어두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선수 에이전트의 경우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는 내 것이 아닐 수 있다. 또 국내 시장이 매우 작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창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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