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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03 20:51 수정 : 2016.06.04 10:23

축구 국가대표팀 피지컬 코치 카를로스 아르무아가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아르무아 코치는 “슈틸리케 감독 아래서 한국 선수들은 하려는 의욕이 강하다”며 “기본 체력을 바탕으로 대표팀에서 요구하는 기술과 전술적인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결합한다”고 말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토요판] 김창금의 축구광
국가대표팀 피지컬 코치 카를로스 아르무아

복심(復心)인가, 그림자인가.

울리 슈틸리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옆에는 그림자 같은 사람이 있다. 항상 붙어 다닌다. 그래서 참모이고 최측근이다. 카를로스 알베르토 아르무아(67) 피지컬 코치. 그는 감독한테는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노신사는 슈틸리케 감독을 보좌하는 4명의 코치진 가운데 수석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원래 드러내기 싫어하는 성격이어서 그가 언론에 노출된 경우는 없다. 시골 할아버지 같은 인상이기에 특별히 시선을 끌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르무아 코치 없는 슈틸리케 감독을 상상하기는 힘들다.

슈틸리케 감독이 2년 전 취임하면서 “인터뷰는 스페인어로 하겠다. 아르무아 코치가 아르헨티나 출신이고, 내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고 소통해야 한다”고 했을 때 기자들은 의아해했다. 모국어인 독일어나 한국 기자들을 위해 영어를 쓰는 대신, 코치 한 사람을 위해서 스페인어를 쓴다는 게 지나친 배려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슈틸리케 감독의 아르무아 코치 존중은 한국에서만 이뤄진 게 아니었다. 슈틸리케 감독이 2008년 스위스 프로축구 FC시옹에 부임했을 때도 공식 인터뷰는 아르무아도 이해하는 프랑스어로, 사적인 대화는 스페인어로 했다. 단순한 소통 차원이 아니라 아주 밀착된 이해를 위한 방식으로 보인다. 심지어 두 사람은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생활한다. 왜 그럴까.

스위스 프로팀을 맡은 2008년에도 아르무아 코치와 함께 일한 슈틸리케 감독은 2년 전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에 취임할 때 “인터뷰는 스페인어로 하겠다”며 아르무아 코치를 최대한 배려하기도 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히딩크 시절, 악명 높은 셔틀런 도입

아르무아 코치는 “대표팀이 소집되면 할 일이 많다. 처음에 하는 것은 회복이고, 두번째는 선수들 몸 상태의 편차를 줄이는 것이다. 짧은 소집기간에 공을 갖고 체력과 전술 훈련을 해야 한다. 포지션에 따라 선수들의 상태도 보고해야 한다. 서로 논의를 많이 하고 생각을 잘 알아야 한다”고 했다. 대표팀에 합류하는 선수들의 몸은 정상 상태는 아니다. 소속팀의 리그 일정이나 축구 문화, 주전이냐 벤치 멤버냐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기본적으로 체력은 소속팀 프로그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대표팀에서는 경기 당일에 100%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한다.

훈련 방식은 상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공격의 방향이나 압박의 형태가 정해지면 그에 따른 연습 훈련이 이뤄진다. 요즘의 피지컬 트레이닝은 게임을 하면서 피지컬 요소를 강화할 수 있도록 전술과 결합한 형태로 이뤄진다. 좌우 측면의 풀백한테 강력한 오버래핑을 주문하기 위해서는 침투와 크로스 뒤 수비 가담 등 활동량이 많은 훈련 프로그램을 짤 수도 있다. 상대 공격수를 막아야 하는 중앙 수비의 경우 훈련 때 스프린트의 길이를 짧게 배치하고, 고강도 미니게임에서 부분적으로 휴식을 준 뒤 다시 뛰게 하는 식으로 한다. 그러나 인력으로 되지 않을 때도 있다. 1일 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평가전(1-6 패)은 현지 도착 이틀 만에 치른 경기였다. 차라리 남미나 미국은 낮과 밤이 정반대여서 적응하기가 낫다. 7~9시간 시차의 유럽 원정은 운동선수들이 가장 피곤해하는 시차 지역이다. 어쨌든 아르무아 코치가 감독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고 가장 긴밀하게 협의하는 것은 선수들의 민감한 몸과 마음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이다.

아르무아 코치는 “1950~60년대는 세계적으로 피지컬의 개념이 생소한 시기였다. 아르헨티나에서도 70년대 들어 피지컬이 강조됐고, 유럽과 스페인의 지도자들이 들어와 가르쳤다. 90년대 초기까지도 피지컬 코치의 역할은 단지 체력에만 신경 쓰면 됐다. 하지만 최근 10~15년 새 체력과 기술·전술을 융합시키면서 피지컬 요소를 끌어올리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피지컬이 강조된 것은 2000년 한국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거스 히딩크 때부터다. 당시 히딩크 감독은 레이먼드 베르하이옌(라이몬트 페르헤이연) 피지컬 코치를 데려와, 선수들에게 악명 높은 셔틀런 훈련을 시키면서 단기간에 체력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선수들은 기술이 약한 것이 아니라 체력이 약하다”는 진단을 내렸는데, 폭발적 움직임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는 약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히딩크 감독이 취한 일련의 체력 강화 프로그램이 한국의 월드컵 4강 진출에 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전문적인 피지컬 코치는 없었다. 감독이나 코치가 체력 훈련을 지시하면 됐는데, 주로 지구력 훈련이어서 축구에서 필요한 순간 파워와는 다른 경우가 많았다. 김대길 해설위원은 “80년대 학교 축구팀에서 체력훈련을 할 때 보통 운동장 100바퀴를 도는 것이 일이었다. 감독이나 코치가 숫자를 세기 어려우니까 돌 100개를 갖다 놓고 한 바퀴 돌 때마다 던져서 표시를 했다. 아스팔트 도로를 달리는 로드워크도 했고, 더워 죽겠는데 물 먹으면 안 된다고 물도 못 먹으면서 뛰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학적이지 못한 훈련 방식이었다”고 회상했다.

아르무아 코치는 히딩크 감독 시절처럼 6개월 장기 합숙을 하며 대표선수를 소집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또 연간 단위로 계획을 짤 수도 없다. 7~10일 짧은 기간 소집해 알짜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그는 “슈틸리케 감독 아래서 한국 선수들은 하려는 의욕이 강하다. 몸도 소속팀에서 잘 만들어 온다. 그래서 체력훈련은 많이 하지 않고, 기본 체력을 바탕으로 대표팀에서 요구하는 기술과 전술적인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결합한다.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고 했다.

슈틸리케 보좌하는 최측근 참모
“짧은 소집기간에 체력·전술 훈련
감독과 소통하며 생각 잘 알아야”
대표선수 면면 속속들이 꿰뚫어
“안정된 심리상태가 피지컬 좌우”

2000년 대표팀 맡은 히딩크
“한국 선수들, 체력이 약하다”
피지컬 코치 도입해 체력 훈련
당일 몸상태 극대치 끌어내야
선수단 스케줄 짜는 데도 영향력
“결국은 기술과 체력의 조화”

섬세하게 훈련 계획을 짜야 하는 이유는 피지컬 트레이닝이 단순히 근력이나 지구력을 키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19살 이하 축구대표팀의 박지현 피지컬 코치는 “피지컬은 체중이나 힘뿐만이 아니라 상대와 부딪혀도 넘어지지 않는 밸런스, 공을 갖고 움직일 때 몸과 공의 코디네이션, 부상을 줄이기 위한 유연성, 스피드와 민첩성 등 축구에 필요한 모든 체력적 요소를 말한다. 보통 축구 선수들이 경기당 10~13㎞를 뛰는데 20㎞를 뛰는 선수가 같은 팀원이라고 해도 이기는 것이 아니다. 적게 뛰고 이기면 다음 경기에도 대비할 수 있다. 요즘 체력을 말할 때는 많이 뛰는 것보다는 효율을 중시한다”고 했다.

아르무아 코치는 “대표팀 소집 첫날에는 피로를 푸는 회복훈련을 중점적으로 한다. 지구력 훈련은 없다. 조깅이나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공을 갖고 원터치 패스를 하고, 미니게임에서 수비 라인 사이로 패스를 하고 돌아 들어가면서 패스와 슈팅 동작의 반응 속도를 끌어올린다. 압박할 때도 실전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한다”고 했다.

감독이 어떤 축구 철학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훈련의 방법도 달라진다. 좋은 감독은 자기가 생각하는 축구를 선수에게 강요하기보다는, 선수들의 장점을 끌어내 강팀을 만들어낸다. 기술을 강조하는 스페인은 선수 자원도 풍부하고 팬들도 화려한 플레이를 원한다. 아시아권에서도 체격과 파워, 스피드를 내세우는 한국의 축구와 일본의 패스 중심 축구는 또 다르다. 스페인을 모델로 정교함을 추구하는 일본은 선수들의 폭발성은 떨어지지만 경기가 끝날 때까지 일정한 움직임을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그런 쪽으로 축구 색깔이 만들어졌다.

아르무아 코치는 “결국은 기술과 체력의 조화다. 기술적 능력이 최고인 바르셀로나팀은 패스로 체력 소모를 줄이면서 90분을 지배한다. 그렇지만 메시나 이니에스타도 기본적인 체력이 없으면 기술력을 100% 발휘할 수 없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 잉글랜드전에서 드리블 신기를 보여주었던 디에고 마라도나도 한동안 쉬었다가 복귀했을 때, ‘월드컵 당시의 폭발적 드리블을 할 수는 없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고 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축구는 공격적이다. 선수들은 많이 뛰어야 한다. 아르무아 코치는 “프로 선수들의 소속팀 훈련량은 대개 큰 차이가 없다. 중요한 것은 이해력이다. 압박을 할 때 팀 전체가 타이밍을 잡고 들어가야 한다. 1~2명이 빠지면 팀 전체가 엄청난 체력 소모를 겪는다. 그러니까 체력적인 준비보다는 전술적으로 잘 준비가 돼야 한다. 점유율을 강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공을 가지고 뛰면 덜 지친다. 공 없이 많이 뛰고 수비만 하다가는 축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육체는 정신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체력이 좋은 선수보다는 체력이 떨어져도 집중력과 정신력이 강한 선수를 기용하는 경향이 있다. 생각의 속도가 빠르면 스피드 부족이나 체격의 왜소함 등의 약점을 보완할 수가 있다. 아르무아 코치는 “육체와 열정, 혹은 육체와 정신에서 정신적인 부분이 더 중요하다. 가르칠 때도 마찬가지다. 열정적인 선수는 더 활기차게 하고, 시무룩한 선수는 체력적으로 힘들어한다. 정신적으로 힘들면 운동을 잘할 수 없다”고 했다.

피지컬 코치는 기본적으로 생리학, 해부학, 역학, 영양학, 트레이닝 방법 등 기본 지식을 동원해 선수를 파악하고 몸 상태를 운동장에서 극대치로 끌어내야 한다. 때로는 선수들에게 강도 높은 훈련을 시켜 몸을 바닥으로 만든 뒤 휴식과 영양섭취로 끌어올려 경기 당일 온 힘을 쏟아낼 수 있도록 컨디션의 주기를 인위적으로 조정하기도 한다. 큰 대회를 앞두고 소집기간이 길 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인데, 그만큼 피지컬 코칭의 기법이 고도화하고 있다. 안익수 19살 이하 대표팀 감독은 “선수들의 몸 상태를 알기 위해 전문가들의 생리학적 전문지식 도움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훈련량이나 강도를 조절하고 훈련하고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피지컬 코치의 도움을 받는다. 선수단 스케줄을 결정할 때 70~80%는 피지컬 코치와 논의해 결정한다”고 했다.

선수들한테 최대한 체력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갖고 있는 기량을 경기에 쏟아내도록 하는 것은 감독이나 코치의 목표다. 훈련을 재미있게 하기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도 등장한다. 19살 이하 대표팀은 5월 훈련 때부터 몸을 푸는 워밍업 시간에 록음악을 틀어주고 있다. 박지현 19살 이하팀 피지컬 코치는 “체력 훈련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고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음악을 틀어준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선수들이 지금은 익숙해졌다. 자신의 신청곡이 나올 때는 더 좋아한다”고 했다.

선수 습관·성격·취향까지 파악

선수단의 역량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릴 수 있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동원하는 게 현대 축구다. 아르센 벵거 감독이 1996년 아스널에 부임하면서 맨 처음 한 일은 선수들의 지방부터 빼는 일이었다. 그는 “영국에서는 설탕과 고기를 너무 많이 먹는다. 야채는 늘 부족하다”며 선수 식단부터 뜯어고쳤다. 과학은 기름기 있는 음식과 탄산음료를 피한 선수들의 몸은 가볍다고 주장한다. 아르무아 코치는 “대표팀 선수들은 워낙 자세가 잘 돼 있다. 무엇을 먹는지, 얼마를 먹는지 일절 신경 쓰지 않는다. 선수들이 알아서 관리하고, 팀 닥터나 영양사들이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선수단을 가장 가까이 지켜보는 피지컬 코치는 대표선수의 면면을 잘 알고 있다. 습관이나 성격, 취향이나 감정의 기복까지도 파악한다. 그렇다면 대표팀 안에서는 누가 체력왕일까. 아르무아 코치는 “평면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 더욱이 내 인생에서 누가 낫다, 못하다라는 식으로 비교한 적이 없다. 우리는 팀 스포츠를 한다. 포지션별로 요구되는 것이 다르다. 부족하다고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한국의 프로축구팀은 대개 피지컬 코치를 두고 있다. 선수들은 각각의 소속팀에서 과학적인 방법으로 피지컬 측면을 강화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이나 아르무아 코치는 대표선수들이 소집되기 전에 프로에서 미리 몸을 만들어 오도록 유도하고 있다. 영상을 통한 교육이나 상대 분석 등을 통해 피지컬 훈련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도 한다. 하재훈 프로축구연맹 경기감독관은 “피지컬 코치는 동양과 서양의 음식 문화에서부터 체형과 근섬유 조직의 차이까지 모두 알아야 한다. 팀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 때로는 인문학이나 역사적인 지식까지 활용해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스포츠는 몸의 활동이고, 열정은 몸을 움직일 스파크를 일으킨다. 피지컬 코치나 감독한테 선수단의 열정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아르무아 코치는 “좋은 기량의 선수는 늘 좋은 상태의 피지컬을 유지한다. 그런 피지컬은 안정된 심리상태에서 나온다”고 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김창금 기자
▶ 김창금 여자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이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란 말이 있다. 그런데 축구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학창시절도 아닌 군대였으니, 여자들은 이런 마음을 알까? <한겨레> 스포츠 기자로 1999년 이후 줄곧 축구기사를 써오면서 대한민국 여성들이 마음껏 축구 할 수 있는 날을 만드는 꿈을 간직해왔다. 스포츠 경제와 스포츠 인권에도 관심이 많다. ‘김양희의 야구광’과 함께 한달에 한번씩 번갈아 연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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