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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8.21 19:04 수정 : 2015.08.22 11:35

장현수가 지난해 9월30일 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 축구 4강전에서 타이를 상대로 페널티킥 쐐기골을 넣은 뒤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토요판] 김창금의 축구광
국가대표 수비수 장현수

“아버지! 제가 왜 짱돌이죠?”

축구 국가대표 장현수(24)는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가 불러온 별명의 뜻을 최근에야 물었다. “넌 지독해! 다쳐도 절대 안 울었지.” 아버지의 설명에 “허허~” 웃었지만 사실 참는 데는 일인자였던 것 같기는 하다. 넘어져 피가 나도 눈물을 보인 적이 적었고, 남들 앞에 드러내 보인 적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 성격을 바탕으로 짱돌은 더 단단해졌고, 최근 1년 새 엄청난 변화를 겪으며 금강석 반열로 격상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문제를 풀었고, 울리 슈틸리케 대표팀 감독의 빌드업 축구(수비에서 공격 전환 때 의도를 갖고 만들어가는 것)를 가장 잘 이해하는 선수로 ‘감독의 복심’이 됐다. 최근 동아시안컵 4개국 대회에서는 중국과 일본, 북한을 제치고 우승컵을 차지하는 데 기여해 최우수선수 개인상도 챙겼다. 소속팀 광저우 푸리와의 5년 100억원 재계약은 화룡점정이다. 감정을 쉽게 노출하지 않는 그도 “부모님이 저 땜에 고생이 많았는데, 이제는 효도할 때”라며 뿌듯해했다.

기술과 머리보다 더 중요한 ‘인성’

하룻밤 새 유명해졌다는 말이 있다. 소리 소문 없이 슈틸리케 감독 축구 대표팀의 중앙으로 진출한 장현수가 그렇다. 1년 전만 해도 장현수를 아는 팬들은 많지 않았다. 청소년대표를 거쳤지만, 팬들은 대표팀 활약이 미디어를 통해 전달될 때라야 비로소 선수의 진가를 알게 된다. 현장의 지도자들이 잠재력을 발굴해 키우면서 가능성을 확인하지만, 대중은 완성본일 때 알아보기에 감식에 시차가 발생하는 것이다. 장현수를 키운 경희고의 변일우 감독은 “중학교 때부터 수비수로 유명했고, 고교 1학년 때 3학년을 제치고 금석배 최우수수비상을 받았다. 고교 졸업 때는 프로와 대학을 놓고 고민했다”고 말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일궜을 때 장현수를 접하게 된 팬들과 달리, 장현수는 이미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수비수였다.

수비나 수비형 미드필더는 공격수보다 불리하다. 상대가 움직임의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골 하나로 승패가 갈리는 극도의 폭발성 때문에 골잡이의 뒤를 쫓아다니는 수비수는 보조적인 역할로 보여지기 쉽다. 중원에서 상대를 쓸어내야 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도 대중의 인기투표가 열린다면 공격수에게 밀린다. 미디어도 열번을 실수하더라도 한번의 골을 성공시킨 공격수를 ‘해결사’로 부각시키는 데 익숙하다. 양지보다는 음지의 선수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수비형 미드필더 김남일을 “진공청소기”라며 극찬한 것은 상대적으로 홀대받는 수비나 수비형 미드필더에 대한 감독의 생각을 반영한다. 감독의 눈에는 골 넣는 선수보다 묵묵하게 골을 막아내는 선수가 더 소중할 수 있다. 하재훈 프로연맹 감독관은 “지도자 입장에서 나가서 끊고, 길을 열어주는 수비형 미드필더는 중요하다.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숨은 일꾼이며 승리에 기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10년 전 K리그 울산에서 뛰었던 대표적인 중앙 수비수 박동혁이 경기 때마다 ‘잘 키운 수비수 하나, 열 공격수 부럽지 않다’는 팬들의 플래카드 성원을 받은 적이 있다. 이후 수비에 대한 팬들의 이해는 조금씩 깊어졌지만 공격수에게 유리하도록 기울어진 지형에는 변함이 없다.

장현수 프로필
장현수는 ‘멀티 수비수’라는 신형 무기로 기존 구도에 균열을 내려고 한다. 그동안 한국 축구에서 중앙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 두 개는 취약 포지션이었다. 어쩌다 둘을 한꺼번에 소화할 수 있는 선수가 나오기는 했다. 2002 월드컵 때 유상철이나 K리그 성남과 전북의 선수로 뛰었던 김상식, FC서울에서 은퇴한 김한윤 등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들은 거칠게 상대와 부닥치면서 힘으로 찍어 누르는 스타일이었다. 허정무 전 대표팀 감독은 상대적으로 빠른 조용형을 두 포지션에 썼지만 힘에 부쳤다. 최근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박종우, 정우영, 이명주, 한국영 등 여럿이 등장했지만 중앙 수비까지 멀티로 나설 선수는 없다. 기성용이 당대 한국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지만 수비 부담이 적을 때 더 날카롭다. 장현수는 두 지역을 매끄럽게 소화하면서 수비의 신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최경식 축구해설위원은 “축구는 템포의 경기다. 수비에서 공격으로 빌드업을 할 때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장현수는 미리 보는 스타일에다 패스가 정확해 수비 지역에서 공격으로 흐름을 이어가도록 해준다”고 평가했다.

좋은 축구선수의 요소는 여럿이다. 요한 크라위프는 “축구는 발이 아니라 머리로 한다”고 했고, 히딩크 감독은 ‘체력전과 선수단 심리를 장악해’ 월드컵 4강을 이뤘다. 장현수의 은사인 변일우 경희고 감독은 “인성”을 가장 첫 순위로 꼽는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인성이 그르면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이다. 변 감독은 “현수는 어떤 얘기를 해도 항상 선하게 받아들이고 희생을 달게 여긴다. 청소년대표팀에서도 주장, 아시안게임에서도 주장을 맡은 것을 보면 감독들이 현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엿볼 수 있다”고 했다. 빌드업과 점유율을 강조하는 슈틸리케 감독의 축구도 장현수와는 코드가 맞는다. 장현수는 “슈틸리케 감독이 경기 전 세세하게 작전 지시를 하는 것은 아니다. 동아시안컵 첫 경기 중국전 전날에도 슈틸리케 감독은 수비 밸런스를 맞춰라. 공격 전개 시 측면으로 갈라주라고만 말했다”고 전했다. 나머지는 선수가 임기응변식으로 상황에 맞게 게임을 풀어나가야 한다. 변일우 감독은 “슈틸리케 감독이 임무를 주면 100% 수행하는 장현수의 능력을 높게 봤을 것 같다”고 추측했다.

“장현수는 미리 보는 스타일에다
패스가 정확해 수비 지역에서
공격으로 흐름 이어가게 해준다”
수비와 수비형 미드필더 모두 소화
수비의 신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출전 앞두고
연습게임 하다 무릎 전치6주 중상
도쿄FC 입단 직후 벤치신세만
짓궂은 운명에도 결국 전화위복
2014년 아시안게임 7경기 무실점

축구 국가대표 장현수

“홍명보 감독은 나의 우상이었다”

서울 남성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집과 학교를 오가는 길에서도 공을 발로 튕기는 리프팅을 하고 다녔던 장현수는 기교파가 아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근력이나 복근 훈련을 하지만 기술 훈련을 따로 하지는 않는다. 동료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만들어나가고, 그 속에서 배운다. 훈련에서는 정말 열심히 한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실전에서 단련된 장현수의 강점은 ‘생각하는 축구’가 몸에 배었다는 것이다. 그는 “고교 1학년 때부터 고3 선배들을 상대해야 했다. 체격이나 경험에서 밀렸지만 ‘머리에서는 절대 지지 않는다’는 각오로 싸웠다”고 돌아봤다. 좌우 1.2의 시력을 갖춘 장현수는 경쾌하게 움직이며 군더더기 동작을 하지 않는다. 미리 보기 때문에 공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현대 축구는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강해진 압박 때문에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축구가 어려워졌다. 시각 정보를 판단해 행동으로 옮기는 정밀한 두뇌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비를 한번도 싫어한 적이 없다. 상대가 왼쪽으로 올지, 오른쪽으로 올지 미리 예측해 막는다. 빠른 선수면 들어올 공간을 비워두고, 느린 선수면 잽싸게 달라붙는다. 성향을 파악하면 행동을 예상할 수 있는데, 공을 빼앗을 때의 기분을 즐긴다.” 그러나 빼앗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공격으로 전환할 때는 몇가지 선택이 있다. 그중 최적의 코스로 공을 갈라주는 것에 따라 선수의 등급이 갈린다. 장현수는 수비의 롤모델로 홍명보 감독을 꼽았다. “홍명보 감독은 나의 우상이었다. 커서 홍 감독처럼 되는 게 나의 꿈이었다. 경기장 내 카리스마, 테크닉과 센스를 비롯해서 경기 운영 능력까지 홍 감독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공을 찼다”고 했다. 최경식 해설위원은 “수비수나 수비형 미드필더의 패스는 자기 공격수의 움직임과 속도를 염두에 두고 슈팅의 강약과 볼의 높낮이를 조절한다. 때로는 상대 수비를 속이는 가짜 동작도 필요하다. 장현수는 보는 눈이 빨라 가장 효과적인 루트를 찾아낸다”고 평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것을 체력관리의 비법으로 소개한 장현수는 철의 사나이다. 1월 아시안컵과 이달 동아시안컵에서 그는 전 경기에 출전했다. 모두 혹서기 경기였다. 그라운드에 들어가면 스피커가 된다. “좁혀” “나가” “벌려” 등등을 쉴 새 없이 외치는 것은 승부욕에서 나온다. 변일우 감독은 “힘들 때 계속 주문을 내는 것은 쉽지 않다”고 했다. 아시안게임 주장일 때는 ‘금메달’이니, ‘병역’에 대한 얘기를 입 밖에 내지 말도록 분위기를 다잡았다. 그러면서 개별 선수들과 많은 대화를 하며 하나로 끌고 나갔다.

장현수 앞의 운명은 때로 짓궂었다. 하지만 늘 화를 복으로 만들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출전을 위해 출국 4일 전 벌인 올림픽팀과 인천 코레일과의 연습게임. 올림픽팀의 중앙 수비수 장현수는 막판 상대의 태클에 무릎이 차여 전치 6주의 중상을 입는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소속팀 도쿄FC로 돌아가 재활치료를 받으면서 올림픽 동메달을 건 동료들을 봤을 땐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주변에서는 “언젠가 기회는 온다”며 위로와 관심을 보였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이 “이제 겨우 21살인데 뭘!”이라는 여유였다. 2012년 도쿄FC로 입단했을 때 장현수는 초반 벤치신세였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경기에 내보냈던 감독은 J리그 본경기에서는 출전시키지 않았다. 그때도 “언젠가 기회는 온다”며 100% 상태로 몸을 준비해 두었다. 결국 주전 수비수가 부상을 당하자 즉시 그 자리를 낚아챘고, 2년 뒤인 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7경기 무실점 수비로 정상에 올랐다. 시즌 뒤 휴가 때도 모교인 경희고로 나와 훈련하는 장현수라 가능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장현수의 대리인을 맡은 윤기영 인스포코리아 대표는 “성실하고 꼼꼼한 선수다. 중간에 고충이 많더라도 항상 마무리에서는 일이 잘 풀린다”고 설명했다.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하고, 대표팀에 승선한 뒤 시너지 효과로 소속팀 광저우로부터 대형 계약을 성사시킨 것이 그렇다. 윤 대표는 “7월 광저우와 재계약하기 직전에 카타르팀에서 영입 오퍼가 왔다. 그래서 두 팀 사이에서 장현수의 몸값 경쟁을 붙일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아시안게임은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가 아니기 때문에 광저우팀이 보내주지 않으면 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입단 때 스벤 예란 에릭손 광저우 푸리 감독(현재는 상하이 상강 감독)한테 ‘장현수를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문서화했다. 국내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 에이전트는 이런 부분까지 신경을 쓸 수가 없다. 레버쿠젠이 손흥민을 보내주지 않은 것이 사례다. 첫해 성적을 바탕으로 이듬해 계약 갱신을 해내는 몸값 키우기 전략도 통했다. 어디를 가나 6개월 안에 꼭 필요한 선수로 각인시키는 능력을 발휘한다.

선수들은 태클이나 몸싸움 때 피해야 할지, 아니면 맞붙어 경쟁해야 할지를 안다. 경쟁할 때는 고통이 따르지만 장현수는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맹독성 잡초다. 페널티킥을 처리할 때는 어떨까. 동아시안컵 일본전(1-1) 페널티킥을 넣었던 장현수는 “경기 전 페널티 상황을 처리하라는 슈틸리케 감독의 지시를 받았다. 실수할까봐 마음이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했다. 변일우 경희고 감독은 “사람은 분위기나 환경에 따라 오버할 때가 있다. 장현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아시아 최고 수준 대우 챙긴 실속파

고교 때부터 FC서울 2군 경기에 출장하는 등 항상 한 차원 높은 축구를 경험했던 장현수는 수비와 수비형 미드필더 두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소속팀 광저우도 지난해까지 중앙 수비수로만 쓰던 장현수를 올해엔 상대에 따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고 있다. 장현수는 “수비는 뒤에 골키퍼가 있어 좌우만 챙기지만, 미드필더는 전후좌우를 다 챙겨야 한다. 공을 빼앗거나 약속된 플레이로 공격하는 것도 상대 변수가 있어 복잡하다. 실수를 적게 하는 싸움이 축구인지라 실수를 줄이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의 얼굴을 보면 최근 1년 새 훨씬 여유로워졌고, 경기장에서도 서두르는 모습은 사라졌다. 소속 클럽이나 대표팀에서 모두 멀티 수비수 역량을 과시하면서 활용도는 높아졌다. 그는 “2018 러시아월드컵 출전이 최고의 목표다. 중국 리그에도 기술이 좋은 공격수들이 많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그의 상대는 광저우 헝다의 브라질 국가대표 3인방인 히카르두 굴라르, 파울리뉴, 호비뉴를 비롯해 상하이 상강의 아사모아 기안, 상하이 선화의 뎀바 바 등 쟁쟁한 인물들이다.

아시아에서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는 한국의 수비자원 가운데서도 만만치 않은 몸값을 챙긴 장현수는 실속파다. 당장 유럽에서 이 정도 대우를 해줄 팀은 없다. 유럽행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 변일우 경희고 감독은 “중앙 수비수나 수비형 미드필더 자원을 잘 육성하면 공격수보다 훨씬 수명이 길다. 전성기가 27~28살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다. 순간 확 피고 지는 것보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랫동안 볼 수 있는 꽃이 좋은 것 아닌가?”라며 장현수의 더 큰 성장을 기대했다.

김창금 기자
김창금 기자

▶ 김창금 여자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이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란 말이 있다. 그런데 축구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학창시절도 아닌 군대였으니, 여자들은 이런 마음을 알까? <한겨레> 스포츠 기자로 1999년 이후 줄곧 축구 기사를 써오면서 대한민국 여성들이 마음껏 축구 할 수 있는 날을 만드는 꿈을 간직해왔다. 스포츠 경제와 스포츠 인권에도 관심이 많다. ‘김양희의 야구광’과 함께 한달에 한번씩 번갈아 연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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