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개장한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를 찾은 시민들이 계단식 외야 잔디석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음식을 먹으면서 야구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이날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잔치 분위기를 연출했다.
수원/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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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양희의 야구광
‘수원 KT’의 원년의 시작
봄 햇살이 스며든 3월의 공기는 참 따뜻했다. ‘까르르’ 웃으며 야구장으로 뛰어가는 아이들을 쫓는 부모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그들 뒤로 두산 베어스 저지를 입은 남녀 커플이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2015년 3월14일,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탄생한 수원야구장 주변은 조금 ‘낯선’ 활기로 넘쳤다. 7년 동안 달고 있던 산소 호흡기를 떼어내고 팔딱팔딱 숨을 쉰다고나 할까.
개장식과 더불어 케이티(kt) 위즈와 두산 베어스의 시범경기가 열린 이날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에는 2만여명의 관중이 모였다. 개장식 행사 때문에 버스로 동원된 지역구민들이 많기는 했으나 가족 단위나 연인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만석이라는 말을 듣고 아쉽게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도 꽤 됐다. 다음날(15일)에도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에는 1만5000명의 팬들이 몰렸다. 비운의 팀, 현대 유니콘스 마지막 주장이었던 이숭용 케이티 위즈 타격코치는 “전율을 느꼈다”고까지 했다. 불모지 수원에 야구의 꽃이 비로소 피는 것일까.
더그아웃서 관중수 셌다는 전설
120만 인구의 수원은 야구에 소외된 도시였다. 지금은 박제된 옛 이름이 된 현대 유니콘스가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수원야구장을 사용했으나 불편한 동거 관계에 있었다. 새로 창단된 에스케이(SK) 와이번스에 인천을 내주면서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기로 했던 현대는, 목동구장과 기존 서울 연고의 두산·엘지(LG)에 내줄 보상금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수원야구장을 임시로 사용하는 신분이었다. ‘때 되면 떠날 구단’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니 수원 야구팬들이 마음을 열어줄 리 없었다. 이성만 전 현대 유니콘스 홍보팀장은 “수원구장을 임시 홈구장으로 사용할 때부터 ‘목동야구장이 제대로 갖춰지면 바로 서울로 간다’고 했다. 시작부터 그랬으니까 온갖 마케팅 수단을 다 동원해봐도 수원시나 시민들의 마음을 잡기는 어려웠다”고 돌아봤다. 수원 내 고교 야구팀이 한 개(유신고. 또다른 고교팀 장안고는 2013년 창단)밖에 없다는 점도 관중 동원에 어려움을 줬다.
현대는 당시 수원 시내 곳곳에서 치어리더를 동원한 게릴라 홍보전을 펼치기도 했고, 경기 도중 ‘자장면 시키신 분~’이라는 콘셉트로 관중석에 직접 탕수육(자장면은 불어서 자장면 대신 탕수육으로 대체했다)을 배달해주는 독특한 이벤트도 시행했다. 하지만 수원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태평양 돌핀스 시절부터 인천 연고 구단의 제2구장으로 사용됐던 수원야구장은 경기 때마다 평균 8000여명의 팬들을 불러모았으나 현대가 본격적으로 둥지를 튼 뒤에는 평균 관중이 4분의 1가량으로 줄었다. 현대가 풀 시즌을 처음 소화한 2000년 수원구장의 평균 관중은 1940명(총 12만8013명)에 불과했다. 이듬해부터 조금씩 늘어나기는 했으나 평균 3000명을 넘은 시즌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관중이 워낙 적어서 경기 도중 현대 선수들끼리 더그아웃에서 관중수를 일일이 세어보는 ‘웃픈’(웃기고 슬픈) 에피소드도 있었다.
정규리그에서 우승했을 때(2000년·2003년·2004년)도 마찬가지였다. 현대 구단의 애매모호한 정체성 때문인지 수준 높은 경기력과 좋은 팀 성적이 홈 관중수를 보장해주지 못했다. 최고의 축제인 한국시리즈 때조차 만원 관중이 차지 않았으니 말은 다 했다. 8시즌(2000~2007년) 평균 관중은 2151명. 같은 기간 프로야구 평균 관중과 비교해 3분의 1가량밖에 되지 않았다. 남발된 공짜표의 영향으로 연 관중수입이 4억원을 넘었던 적도 없었다. 당시 팀 내 간판 투수였던 정민태의 연봉(2004년 정민태의 연봉은 7억4000만원이었으나 당시 현대의 총 관중수입은 2억8400만원이었다)을 주기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액수였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인구가 많은 베드타운이라는 약점상 주중 관중 상황은 더욱 안 좋았다. 2013년 1월, 전라북도를 기반으로 한 부영을 꺾고 수원을 연고로 한 케이티 위즈가 10구단 팀으로 결정된 뒤 가장 우려됐던 부분도 흥행 문제였다. 세월이 흘렀으나 현대 시절의 관중 동원 실패 역사가 뼈아프기 때문이다. 더욱이 수원은 축구 도시 이미지가 강한 곳이다. 실제로 프로축구 수원 삼성의 지난해 평균관중(리그 경기 기준)은 1만9608명(전체 37만2551명)이었다. 2013년에는 1만7689명, 2012년에는 2만265명의 평균 관중을 끌어모았다. K리그 최고 수준이다.
케이티 구단을 비롯해 수원시, 수원 야구팬들은 “현대 유니콘스 시절하고는 사정이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손님을 맞이하는 곳, 즉 구장 인프라 자체가 달라졌고 지자체의 관심 또한 커졌다는 이유에서다.
현대가 쓰던 옛 수원야구장은 전국체전을 위해 1989년 만들어진 구장으로 그저 야구 경기만 가능했을 뿐 내외부 시설은 형편없었다. 더그아웃이나 라커룸 등의 선수 시설도 마찬가지였다. 보조구장 역할로만 가능했지 프로야구 구단 풀 시즌을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현대 유니콘스를 거쳐 넥센 히어로즈에서 근무중인 한 구단 관계자는 “당시 수원시는 야구장 보수나 증축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수원시장이 축구에 더 관심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언제 떠날지 모르는 구단을 위해 야구장을 개·보수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원시 쪽에서는 개막전 시구를 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고 했다.
리모델링 전의 수원야구장 전경. 16개월의 공사 기간을 거쳐 2014년 12월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는 홈플레이트 뒤 관중석이 3, 4층까지 올라간 것이 눈에 띈다. 조명탑의 위치도 기존보다 높아졌다. 케이티 위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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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한 정체성 지녔던
현대 시절 관중동원 대실패
케이티는 다른 역사를 쓸까
희망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2만석 규모로 증축한 야구장
337억 들여 화려한 리모델링
첫해 관중 60만명 목표치 잡고
지역특성 고려한 틈새 마케팅
자발적 서포터스 움직임도 활발 수원시의 놀라운 의지 수원야구장 바깥쪽으로 기둥을 올려 3, 4층을 세우면서 관중석은 기존 1만4000석에서 2만석으로 늘었다. 외야에 맥주를 마시면서 야구를 즐길 수 있는 스포츠펍이 생겼고 포수 뒤 테이블석, 익사이팅존, 스카이박스(6~24인실·16개) 등도 새롭게 선보였다. 케이티 관계자에 따르면 스카이박스는 2개를 남겨두고 14개는 이미 연간회원권으로 팔렸다고 한다. 패밀리 뷔페를 즐기면서 야구를 관람할 수 있는 파티플로어(각 68명 수용)도 3층 스카이박스 양 측면에 설치됐다. 주중 2인 9만원, 주말 2인 18만원으로 꽤 비싼 편이지만 동창회, 돌잔치 등 각종 행사를 겸하면서 야구 경기를 즐기는 이색 이벤트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1·3루석 내야 통로 자리에는 장애인석(41석)이 생겼고, 외야 자유석(3612석)은 나무의자가 있는 4단 잔디밭으로 꾸며졌다. 내야 관중석 사이가 좁아서 이동에 불편이 있다는 지적도 있으나 아주 볼품이 없던 기존 야구장과 비교하면 가히 환골탈태의 수준으로 탈바꿈했다. 수원야구장의 화려한 변신에는 수원시의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됐다. 10구단 유치 때부터 발 벗고 나섰던 수원시는 리모델링한 야구장을 케이티에 25년간 무상 임대해주기로 했다. 야구장 광고권, 식음료 판매권도 모두 케이티가 갖는다. 현대 유니콘스 때와는 180도 달라진 지원으로 지자체가 나서서 ‘수원 케이티’라는 스포츠문화 콘텐츠 정착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박용민 수원시 공보팀장은 “바깥쪽으로 기둥을 올려서 3, 4층을 새롭게 세웠는데 양쪽 끝부분도 올려서 2만3000석 정도로 좌석을 더 늘릴 계획으로 용역 발주 예정이다”라며 “고질적인 주변 교통 문제 해결을 위해 운동장 주변을 순회하도록 버스 노선을 조정할 계획도 있고 주말에는 개장식 때처럼 주변 학교를 개방해 주차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협의중에 있다”고 밝혔다. 여러모로 케이티 구단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문제 해결에 능동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이인원 케이티 위즈 홍보팀장은 “수원시의 협조는 아주 좋다. 우리는 지자체를 잘 만난 편”이라고 했다.
현대 유니콘스 수원구장 관중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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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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