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브리즈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아시안컵 조별리그 A조 3차전 한국 대 호주 경기에서 골키퍼 김진현이 상대 공격을 막아낸 뒤 수비수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다. 브리즈번/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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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창금의 축구광
골키퍼 김진현은 누구인가
가냘프고 긴 손가락. 속살처럼 희다. 느낌이 온다. 섬세한 성격이다. 금세 드러났다. 차를 주문하는데 “아무거나 달라!”지 않는다. “커피 말고요, 주스 있어요?” 찬찬히 설명을 듣는다. 그러더니 “키위 주스 주세요!”라며 메뉴판을 덮는다. 짧은 순간이지만 80%는 알 것 같다. 이 친구 깐깐하다. 낮은 목소리. 톤의 변화가 없다. 얘기가 조금 진행돼서야 웃는다. 경계를 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AB형답게 꼼꼼하면서 때론 소탈하다. 하긴 축구대표팀 골키퍼 아무나 할 수 없다. 차분하면서도 자유롭게 변신해 강력본드처럼 골문을 밀봉해야 한다. 그에게 딱 맞아 보였다.
첫 A매치, 스페인에 1 대 4 패배
김진현은 어디서 왔는가? 축구팬들이라면 공통적으로 품는 의문이다. 청소년팀이나 대표팀에서 그의 활약을 본 기억이 없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스쳤을 뿐이다. 축구인들만 “원래 재능이 있는 친구다. 각급 대표팀에 단골로 뽑혔다”고 말한다. 2005년 18살 이하 대표팀에 뽑혔고, 2007년 캐나다에서 열린 20살 이하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당시 1순위 골키퍼는 조수혁이었지만 본선에서는 김진현이 주전 장갑을 꼈다. 미국, 브라질, 폴란드를 상대로 2무1패. 나름 선전했지만 16강에 오르지 못했다. 이후 A매치 경기 데뷔는 한참 뒤인 2012년 5월 스페인 평가전에야 이뤄진다. 주전 골키퍼 정성룡은 부상이었고, 두번째 골키퍼 김영광은 소속팀 일정으로 빠졌다. 기회는 왔는데 상대는 세계 1위 스페인. “왜 하필 데뷔전에…”라며 운을 뗀 김진현은 “긴장을 많이 했고, 경험도 없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1-4로 패배. 그렇게 딱 한번 A매치에 등록한 뒤 2년여간 그는 넘버 스리나 포였다.
공 터치하는 데 대개 0.2초
김진현 동영상은 0.05초 더 빨라
코치 지도 한번 받아본 적 없이
스스로를 조탁한 17년 시간 “소속팀 2부 강등에 위축 안돼
위기는 꼭 오고, 기회도 꼭 온다
지금이 비등점은 아닐 것
더 잘해 정상을 밟는 게 목표
나는 포기하는 스타일 아니다” 고교 때 허들 놓고 수없이 넘으며 단련 골키퍼의 비중은 11분의 1이 아니다. 슈틸리케 감독은 “포지션마다 다르기 때문에 정확히 가르기는 어렵다. 다만 뒤의 골키퍼가 불안하면 선수들이 잘 뛸 수 없다”고 했다. 박영수 코치는 “허망하게 골을 내줄 경우 선수들한테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반대로 거의 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막아내면 없는 힘도 생겨난다. 축구는 심리의 경기다”라고 했다. 팽팽한 경기에서는 승패의 60%까지 골키퍼가 결정짓는다는 주장도 있다.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오만과의 예선 첫 경기 종료 직전 코너킥에 이은 상대 헤딩슛을 전광석화처럼 쳐낸 일이나, 8강전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 골지역 밖으로 뛰어나와 공을 잡아챈 뒤 왼쪽 팔꿈치를 잡고 쓰러진 모습들은 팀을 바꾼다. 진퇴의 판단도 정확해야 한다. 지난해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알제리전 패배(2-4) 때 정성룡은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첫번째와 세번째 실점은 후방에서 공이 길게 올라오면서 상대 공격이 시작됐다. 한 축구인은 “처음부터 판단을 달리해 미리 대비했더라면 결과도 달라졌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대표팀 골키퍼 자리는 쉽게 오지 않는다. 아무리 잘해도 조금 더 잘하는 선수가 있으면 출전할 수 없다. 1970년대 이세연과 변호영의 경쟁부터 시작해 오연교와 조병득(80년대), 최인영과 김병지·이운재(90년대) 등 간판 골키퍼 사이에서도 명암은 갈린다. 변호영은 이세연의 그림자에 가렸고, 90·94년 월드컵은 최인영이 대표 골키퍼로 나섰다. 94년 월드컵 막판 잠깐 등장했던 이운재는 98년 프랑스월드컵에는 김병지에 밀려 아예 나가지도 못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개막 직전 주전으로 낙점된 이래 8년간 이운재 시대를 열었을 땐 최은성이 “분위기 메이커”에 만족해야 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정성룡이 잡아챈 뒤 김영광, 김승규, 김진현, 이범영은 늘 2인자였다. 전북의 권순태나 포항의 신화용도 재목이지만 발탁되지는 않았다. 참 어려운 일이다. 이런 면에서 운도 따라야 한다. 신태용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김진현은 슈틸리케 감독과 잘 맞는 선수다. 선수도 궁합이라는 게 있는데 그게 딱 맞는다”고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해 9월5일 베네수엘라 평가전(3-1 승) 때 김진현의 모습을 비디오 영상으로 체크한 뒤, 직접 지휘봉을 들었던 10월10일 파라과이전(2-0 승)에 그를 내세운다. 11월18일 이란 원정전(0-1 패)부터는 김진현 쪽으로 완전히 쏠렸다. 슈틸리케 감독은 김진현의 장점을 “침착함”이라고 했다. 패스와 점유율을 강조하는 슈틸리케 감독은 최후의 수비수 골키퍼부터 공격 작업이 시작된다고 본다. 가까운 지역의 동료에게 공을 밀어주거나 멀게는 중앙선 부근까지 던져주면서 공격 빌드업을 하는 능력은 김진현이 역대 최고다. 이런 동작은 단순해 보이지만 경기의 흐름을 읽는 눈이 없거나 맥을 짚지 못하면 나오지 않는다. 타이밍 싸움이어서 1초라도 늦으면 공격 작업이 매끄럽게 되지 않는다. 실력이 없으면 운도 없다. 농구 선수 출신 아버지의 승부욕처럼,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해결해야 직성이 풀린다. 고교 때 점프력이 부족하다고 느낀 그는 허들을 갖다 놓고 수없이 넘으며 단련했다. 웨이트도 기본이다. J리그 경기가 토요일날 열리면 앞서 3일간은 하루 1시간30분 정도 체력훈련을 꼭 한다. 2010년 왼쪽 무릎 연골을 들어낸 이후 더 그렇다. 대표팀 주치의 출신의 송준섭 서울제이에스병원 원장은 “무릎 연골이 없으면 허벅지 쪽의 근력을 증강시켜서 고통이나 불편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김진현은 “웨이트 훈련이 지루하지만 무릎 아프다는 것을 핑계 삼아 더 한다”고 했다. 시즌 중에 맥주 한잔 마시는 것도 꺼린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득실거리는 유럽 무대 진출까지 갈 길은 멀다. 골키퍼는 선배한테도 큰 소리로 “막아!” “들어와!” 등 끊임없이 떠벌리는 게 중요한데 그런 부분에서도 김진현은 수비진을 잘 통제하고 있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다 소속팀 세레소 오사카는 올해 2부로 강등됐다. 1부의 강팀 공격수들을 만나 실력을 더 쌓아야 하는 김진현한테는 불리할 수도 있다. 김진현의 생각은 달랐다. “아무리 잘하는 팀이라도 위기는 꼭 오고, 아무리 못하는 팀이라도 기회는 꼭 온다. 그것을 막기 위해 90분 집중하는 것은 똑같다.” 축구 선수의 기량은 26~28살에 정점이다. 그 이후에 기량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더욱이 골키퍼는 나이에 큰 제약을 받지 않는다. 이운재가 2002 월드컵에 출전했을 때가 29살이었다. 김진현은 28살이다. 김진현은 “지금이 비등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잘해서 꼭 정상의 자리를 밟을 것이다. 저 포기하는 스타일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다급한 상황에서 수비수가 넘긴 공을 잘 걷어내지 못하거나, 아무것도 아닌 상황에서 실수처럼 비치는 동작이 나오는 것은 개선해야 한다. 김진현은 “아시안컵에서 3일 간격으로 경기가 열려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말았어야 한다”며 질책했다. 박영수 코치는 “지금도 더 발전할 여지가 있다. 한쪽을 막고 다른 한쪽을 여는 식으로 수비수들과 훈련을 많이 하는데 앞으로 더 익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골키퍼는 폭격기처럼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갖고 있지만 주변에 호위 전투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 되는 것처럼 동료 수비수들이 골키퍼를 더 많이 도와야 한다”고 했다.
김창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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