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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6.27 18:44 수정 : 2014.06.28 14:22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왼쪽)는 결국 팀을 16강으로 이끌지 못했다. 그에게 가는 공이 철저하게 차단된 독일전에서 포르투갈은 4-0의 대패를 당했다.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는 4골을 몰아넣으며 팀을 16강에 진출시켰다. 하지만 한 명의 슈퍼스타에 의존하는 팀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AP 연합뉴스

[토요판] 축구광
월드컵의 메시와 호날두

▶호날신과 메신.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 두 사람을 누리꾼들이 부르는 호칭입니다. 축구 실력이 신(神)에 이르렀다는 찬사죠. 그런데 이 둘은 월드컵 앞에만 서면 왠지 작아지나 봅니다. 지난 두차례의 월드컵에서 이들의 활약은 매우 미미했습니다. 이번 월드컵에선 어떨까요. 이 둘을 중심으로 이번 월드컵을 정리해 봤습니다.

‘펠레가 잘해? 마라도나가 잘해?’

월드컵 때마다 등장하는 해묵은 논쟁이다. 30년이 넘도록 지속돼온 논쟁이건만 여전히 뚜렷한 결론은 없다. 그만큼 두 사람 모두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경이로운 선수들이었다. 브라질월드컵을 통해 사람들은 펠레와 마라도나를 대체할 새로운 논쟁 거리를 갈망했다. 리오넬 메시(27·아르헨티나)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9·포르투갈). 펠레와 마라도나처럼 이들을 통해 축구가 특출난 개인으로 대표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녹록지 않다. 소속 클럽에서는 펄펄 날던 이들은 정작 월드컵만 되면 허우적댄다. 축구 전문가들은 더 이상 원맨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원맨팀을 집어삼킨 덫의 실체는 무엇일까?

‘축구신’으로 추앙받지만
둘 다 월드컵에선 실망스러워
금색 우승 트로피 없이는
대관식 안 치른 황태자일 뿐

호날두는 3게임 1골 1도움뿐
그에게 가는 패스 막히니 자멸
메시는 4골로 고군분투하지만
우승까지는 험난한 길 예상
축구에 영원한 전술은 없다

외줄 운명대에 선 황태자들

메시와 호날두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들이다. 리그 챔피언은 물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세계 최고의 선수들에게 주는 피파(FIFA) 발롱도르(Ballon d’or) 역시 양분하고 있다. 다만 축구황제 등극의 마지막 조건인 월드컵 우승컵만큼은 차지하지 못했다.

월드컵이야말로 축구황제 대관식이다. 펠레, 베켄바워, 마라도나, 호나우두 등은 월드컵 우승을 통해 축구황제 칭호를 얻었다. 호날두와 메시가 현시대 최고의 태양이라고 추앙받지만 결국 월드컵 우승 트로피 없이는 아직 대관식을 치르지 않은 황태자일 뿐이다.

나란히 2006 독일대회를 통해 월드컵 무대를 밟은 이들은 월드컵 우승은커녕, 개인 기록도 형편없었다. 브라질월드컵 이전까지 메시는 1골(7경기), 호날두는 2골(10경기)에 그쳤다. 월드컵 3수생인 메시와 호날두에게 브라질월드컵은 그만큼 절박했다. 이들은 골을 뽑아낸 후 달콤함과 짜릿함에 취하는 무아지경의 희열을 꿈꿨다. 온몸이 전율하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분. 그 1분을 위해 이들은 수많은 시간 눈물과 땀을 쏟았다. 이들은 찬사와 비난 한가운데서 외줄을 타는 운명이다. 골과 노골은 항상 극단의 갈림을 만든다. 골을 터뜨리면 최고의 찬사와 영광스러운 수식어가 붙지만 골을 넣지 못했을 때는 냉혹한 심판대에 올라야 한다. ‘Hero’(영웅)와 ‘Zero’(0). H와 Z의 한 자 차이지만 평가는 극명하게 갈리는 것이 이들의 삶이다.

호날두는 “축구책을 펼쳤을 때 펠레와 마라도나 옆에 내 이름이 있길 바란다”고 했다. 조국 포르투갈에 첫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안기며 펠레와 마라도나의 반열에 오르겠다는 속내였다.

지난 시즌 그가 보여준 활약이라면 불가능한 꿈도 아닌 듯했다. 호날두는 프리메라리가 득점왕(31골)과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득점왕(17골, 역대 한 시즌 최다골)을 거머쥐었고, 레알 마드리드(스페인)를 챔피언스리그 10번째 우승까지 이끌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만 246경기에서 252골(경기당 1.02골)을 뽑아낸 호날두를 보고 있자면 ‘골 넣기 참 쉽네’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브라질월드컵에서도 호날두의 원맨쇼는 없었다. 지난 17일 독일과의 G조 첫 경기에서 호날두는 그야말로 무참히 깨졌다. 0-4 패. 리그를 치르며 누적된 피로감과 왼무릎 건초염 등 부상을 안고 있던 호날두는 최고의 컨디션은 아니었다. 게다가 수비수 페페마저 어처구니없이 퇴장당하며 대등한 대결을 펼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호날두 부진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일반적인 팀들은 측면에 빠르고 발재간 있는 전문 풀백들을 투입해 호날두 방어에 나선다. 하지만 독일의 선택은 상식을 벗어난 파격이었다. 주로 중앙 수비수로 뛰던 베네딕트 회베데스와 제롬 보아텡을 좌우 풀백으로 투입했다. 풀백 요원이었던 필리프 람을 중앙에 배치하여 호날두의 동선을 미연에 봉쇄했다.

요아힘 뢰프 독일 감독이 참고자료로 삼은 것은 호날두가 해트트릭을 기록한 스웨덴과의 브라질월드컵 유럽예선 플레이오프 2차전이었다. 당시 포르투갈 전술은 간단했다. 볼을 끊어내면 빈 공간에 도사리고 있던 호날두에게 롱패스를 보내 1대1 기회를 만들었다. 뢰프 감독은 스피드가 아닌 공간 최소화를 택했다. 중앙 수비수들을 좌우 풀백으로 투입시켜 호날두에게 향하는 롱패스를 미연에 차단했다. 호날두가 스피드뿐 아니라 몸싸움에도 능하다는 점에서 중앙 수비수들의 측면배치는 적중했다. 스피드가 느리다는 약점은 람의 지원을 통해 보완했다. 좌우로 스위칭하며 기회를 엿보던 호날두는 회베데스와 보아텡에게 막히자 후반전에는 투톱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페어 메르테자커와 마츠 후멜스가 버티고 있는 중앙 역시 여의치 않았다. 독일의 수비 덫에 갇힌 호날두는 스스로 리듬을 잃었다. 두 팀 통틀어 가장 적은 44회 공터치에 불과했고, 유효슛은 1회뿐이었다. 90분간 9.134㎞를 뛰는 데 그쳤고, 패스성공률 역시 72%에 불과했다.

회베데스는 “호날두를 막을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수비수 네 명은 모두 호날두를 예의주시했다”며 공간을 막은 전술의 승리라는 점을 강조했다. 뢰프 감독은 “호날두를 상대로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은 보아텡과 수비진의 공이 가장 크다”고 칭찬했다. 독일 일간지 <빌트>는 그의 이름 Ronaldo를 ‘Ron-NIL-do’(NIL은 nothing, 없다는 뜻)라고 표현하며 한 골도 넣지 못한 호날두를 비아냥댔다.

미국과의 2차전에서 호날두는 고군분투했지만 골을 뽑지 못했다. 경기 종료 직전 오른발 크로스로 실베스트르 바렐라의 헤딩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며 포르투갈을 간신히 탈락 위기에서 구한 것이 전부였다. 역시 호날두는 다르다는 칭찬이 나왔지만 이면에는 호날두의 이름에 비해 형편없었던 플레이에 대한 실망감도 적지 않았다. 3차전에서 1골을 넣었지만 결국 포르투갈은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도무지 한계가 없어 보이는 ‘축구 신’으로까지 추앙받는 호날두는 자신의 세 번째 월드컵에서도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호날두는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어쩌면 우리는 그저 평범한 팀에 불과했다. 포르투갈이 최고의 팀이라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라며 “나는 단 한 번도 우리가 세계 챔피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우리는 변변찮은 팀이며 우리 수준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호날두의 말에는 자신에 대한 실망감뿐 아니라 자신에게만 의존하는 포르투갈 대표팀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묻어났다.

호날두가 등장한 첫 메이저 대회였던 유로 2004에서 포르투갈은 준우승을 차지했다. 2년 후 독일월드컵에서는 4강에 올랐다. 시간이 흐를수록 포르투갈은 점점 호날두에 대한 의존이 심해졌고, 성적은 오히려 급락했다. 유로 2008에서는 8강으로 떨어지더니, 남아공월드컵 때는 16강에 그쳤다. 팬들은 루이스 피구, 후이 코스타를 앞세우던 황금세대 이상의 활약을 기대했지만 호날두만을 바라보는 포르투갈은 결국 좌절했다. 원맨팀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대목이다.

메시의 고군분투는 결승까지 이어질까?

메시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만 있다면 내가 이뤄낸 모든 수상을 월드컵 우승과 맞바꾸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에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바르셀로나에서 메시는 축구 신의 경지에 올랐지만, 아르헨티나 국민들 사이에서는 그만큼 신뢰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메시는 평범했다. 바르셀로나에선 경기당 0.88골(276경기 243골)을 뽑는 메시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절반인 0.44골(83경기 37골)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남아공월드컵 무득점 등 메이저대회 때마다 이어지는 부진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불렀다. 게다가 11살 때 바르셀로나로 이주한 그를 두고 아르헨티나에 대한 애국심을 의심하는 여론이 팽배했다.

브라질월드컵을 준비하는 메시의 아르헨티나한테 그나마 위안이었던 건 호날두의 포르투갈에 비해 훨씬 나은 여건이 주어졌다는 점이다. 오로지 호날두에 의존하는 포르투갈에 비해 아르헨티나는 아궤로, 이과인, 디마리아 등 특급 공격수들이 즐비해 메시에 대한 견제가 분산될 수 있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이란, 나이지리아 등 비교적 약체들과 조별예선을 치렀다는 점도 부담이 적었고, 같은 남미 대륙에서 열렸기 때문에 적응에도 수월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치른 호날두에 비해 체력적인 부담도, 부상도 없었다.

무엇보다 2011년 7월 아르헨티나 지휘봉을 잡은 알레한드로 사베야(사벨라) 감독은 메시가 최고의 활약을 펼칠 수 있는 최적의 시스템을 갖추는 데 성공했다. 4년 전 남아공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감독을 맡았던 마라도나는 메시의 활용법을 두고 우왕좌왕했다. 결국 공격형 미드필더로 내세웠지만 마치 이번 대회에서 호날두가 당한 것처럼 고립됐고 메시는 무득점에 그쳤다. 베른트 슈스터 전 레알 마드리드 감독은 “마라도나는 메시의 활용법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고 일침을 가했다.

아르헨티나 감독 취임사 때 “메시 위주로 팀을 짜겠다”고 공언한 사베야 감독은 그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오른쪽 윙포워드로 내세웠다. 박지성의 절친으로 잘 알려진 테베스가 브라질월드컵 최종엔트리에 발탁되지 않은 것도 메시의 플레이와 겹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미드필더에 페르난도 가고를 배치해 수비 부담을 줄여주고, 바르셀로나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를 투입하며, 메시가 맘껏 플레이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 결과 이전 A매치 19골(59경기)에 그쳤던 메시는 사베야 감독 부임 후 경기당 1골(26경기 25골)에 가까운 위력을 되찾았다. 브라질월드컵 F조 조별예선에서 메시는 그야말로 아르헨티나의 메시아였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첫 경기에서 상대 자책골을 유도하는 프리킥과 결승골을 뽑아냈고, 무려 10명이 밀집수비한 이란을 상대로도 경기 종료 직전 극적인 왼발 중거리 골로 1-0 승리를 이끌었다. 나이지리아와 마지막 조별예선에서도 2골을 몰아치며 존재감을 입증했다. 아르헨티나에 패한 나이지리아의 스티븐 케시 감독은 “메시를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 물론 아르헨티나에는 뛰어난 선수가 많지만 메시는 목성에서 온 남자 같다”며 칭찬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월드컵 부진을 만회하고 있는 메시지만 ‘과연 메시 홀로 아르헨티나를 우승까지 이끌 수 있겠느냐’는 의문부호는 여전하다. 아르헨티나의 조별예선 3연승은 그야말로 메시가 보여준 슈퍼스타급 플레이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약체들과 한 조에 포함됐음에도 완벽하게 제압한 경기가 없었고, 아궤로와 이과인, 디마리아 등 메시의 지원군들의 포문이 아직 열리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아르헨티나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꼽히는 수비라인과 골키퍼의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메시의 활약에 묻혀 드러나지 않은 문제들이 앞으로 토너먼트를 거치면서 불거질 위험은 여전하다.

핵심 키워드는 과연 메시의 솔로 플레이가 네덜란드와 독일한테도 통할 수 있을까에 달렸다. 최근 월드컵을 돌이켜봐도 아르헨티나는 98 프랑스월드컵 8강전에서 네덜란드에 무릎을 꿇었고, 2006 독일월드컵과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는 내리 독일한테 패했다. 게다가 브라질월드컵에 나선 네덜란드와 독일은 상대 국가들을 압도할 수 있는 경기력을 보유하고 있다. 분명 네덜란드와 독일은 체면을 구긴 스페인, 잉글랜드,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타 유럽국가들과는 다른 전술적인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브라질월드컵의 남은 관전 포인트는 메시와 그를 막아설 독일과 네덜란드의 덫, 그리고 네이마르를 앞세운 개최국 브라질의 선전 여부로 요약할 수 있다.

영원한 전술은 없다

브라질월드컵은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를 새삼 일깨운다. 축구 역사에서 특정한 전술이 유행하거나 시장을 지배하게 되면 그 전술의 지배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새로운 전술이 태동하기를 반복했다. 펠레의 종횡무진과 요한 크라위프(크루이프)의 토털사커를 막기 위해 스위퍼 시스템이 등장했고, 마라도나가 등장하자 압박전술에 기반한 이탈리아의 카테나초(빗장수비)가 견고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월드컵은 스페인의 티키타카가 하나의 스타일일 뿐, 축구가 지향하는 유일한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그렇다고 해서 티키타카의 기본 전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티키타카는 새로운 선수들과 더 견고해진 패스워크로 무장하고 압박과 역습의 주류에 도전할 것이다.

비록 호날두는 이번에도 좌절했지만, 호날두의 원맨팀이 다시 주류가 되지 않으라는 법도 없다. 월드컵은 수많은 국가와 선수들이 죽도록 눈물나게 싸우지만 결국 영웅의 발끝에서 승패가 결정되는 게임이다. 브라질월드컵의 영웅은 개인으로 대표되는 메시가 될지, 독일이 자랑하는 팀정신이 될지, 다시 부활한 네덜란드의 토털사커가 될지는 아직 판가름나지 않았다. 누가 승자가 되건 간에, 중요한 건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는 것이다. 주류와 비주류가 서로의 무기를 앞세워 우열을 가리고, 그렇게 순환하고 진일보하는 역사를 지켜보는 것이 흥미로울 뿐이다.

최원창 수원삼성블루윙즈 홈경기운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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