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1.11 19:19
수정 : 2016.11.11 19:47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 드라마 <11.22.63>
고등학교 영어 교사 제이크 에핑(제임스 프랭코)은 단골식당 주인이자 오랜 지인 앨 템플턴(크리스 쿠퍼)으로부터 충격적인 비밀 하나를 듣게 된다. 그의 식당 뒤 벽장 속에 시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타임 포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베트남전 참전의 상처를 지닌 앨은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추종자였다. 만약 그가 암살당하지 않았더라면 베트남전은 일찍 종식되고 더 좋은 세상이 왔을 것이라는 믿음을 지닌 채 암살 저지를 위해 홀로 과거 여행을 거듭해왔다. 후유증 탓인지 암을 얻게 된 앨은 죽기 직전 제이크에게 비밀을 밝히고 자신의 뒤를 이어 케네디 암살을 저지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1963년 11월22일, 역대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미 대통령 가운데 하나인 존 에프 케네디가 댈러스 거리행진 도중 총탄에 쓰러졌다. <11.22.63>은 2016년의 주인공을 그 역사적인 현장으로 걸어 들어가게 만든다. 케네디 대통령 서거 50주년이 가까워오던 때 호러 소설의 거장 스티븐 킹이 발표해 화제를 모은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제이 제이 에이브럼스가 제작을, 제임스 프랭코가 주연을 맡아 더 관심을 모았고, 기존의 케네디 암살 소재 작품들과 달리 시간여행을 결합한 대체역사물이라는 형식의 신선함도 돋보였다.
이야기는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한다. 만약 역사상 최악의 순간이라고 여기는 지점으로 돌아가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현재의 세상은 좀더 나아질까? 적어도 앨은 가능하다고 믿었고 그의 시간여행도 그렇게 시작된다. 하지만 이 질문은 제이크가 이어받은 여행에서 회의에 부딪힌다. 그가 무언가를 바꾸려 할 때마다 지속적인 ‘과거의 방해’를 만나기 때문이다. 정체불명의 사나이가 나타나 ‘절대 여기 와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던지고, 간발의 차이로 지나간 자리에서 급작스러운 화재나 교통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제이크는 힘이 닿는 대로 과거의 비극을 수정하고자 노력한다. 끔찍한 존속살해로 가족을 잃은 제자의 운명을 바꾸기도 하고, 케네디 암살에 대한 단서에도 점점 접근해 들어간다. 그는 과연 성공했을까? 역사는 바뀌고 세상은 더 좋아졌을까?
<11.22.63>의 질문은 미국 45대 대통령 선거가 마무리된 시점에서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뒤바뀐 역사’야말로 도널드 트럼프를 반대한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상상이다. 드라마가 그리는 풍경은 마냥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그 주제는 아마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트럼프 당선 소감 속 한 문장과 제일 가까울 것이다. 오바마는 “미국이 걸어온 길은 일직선이 아니라 지그재그로 여러 굴곡을 거친 역사”라고 말했다. 퇴보할 수도 있고 정체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아주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간다는 믿음”이다. <11.22.63>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결말은 바로 그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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