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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11 18:41 수정 : 2015.12.12 09:52

영국 드라마 <어프로프리어트 어덜트>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영국 드라마 <어프로프리어트 어덜트>

사회복지사 훈련을 받던 자넷 리치(에밀리 왓슨)에게 첫 임무가 주어진다. 자신을 변호할 능력이 충분하지 못한 성인 혹은 미성년자가 범죄에 연루되었을 때 그 수사 과정이나 소송을 돕는 ‘법적 후견인’(appropriate adult) 역할이었다. 보호 대상자 프레드 웨스트(도미닉 웨스트)를 만난 자넷은 그가 딸을 토막내 집에 매장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한다. 더 충격적인 것은 발굴된 유해가 여러 사람의 것으로 보인다는 소식이었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넓게 파헤쳐지는 프레드의 집 마당처럼 사건의 규모는 점점 커진다.

<어프로프리어트 어덜트>는 영국 범죄 사상 최악의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프레드와 로즈메리 웨스트 연쇄살인사건을 기초로 한 작품이다. 범죄가 폭로된 1994년까지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웨스트 부부에게 목숨을 잃은 이는 밝혀진 수만 12명에 이르고 더 많은 실종과의 연관성도 의심받는다. 피해자 가운데는 프레드의 전 부인과 의붓딸, 그리고 로즈메리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도 있었고 이들을 포함한 대부분이 성폭행과 잔혹한 고문 끝에 죽음을 맞았다. 인간의 악마성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묻게 한 세기의 사건이었다.

드라마는 이 희대의 범죄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사건에 대한 구체적 묘사보다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건조하게 들여다보는 전개를 택한다. 특히 이야기의 중심으로 삼은 것은 프레드의 실제 후견인 자넷의 시점이다. 사건을 대하는 자넷의 태도는 일반인이 충격적인 범죄를 접했을 때 보이는 상식적 반응에서부터 범죄자를 이해하려 애쓰는 동안 자신의 나약한 심리를 발견하고 급기야는 정신적 감응을 일으키기까지의 극한을 오간다. 이러한 심리 변화는 자넷의 시점으로 괴물을 바라보던 시청자들이 그녀까지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혼란을 경험하게 만든다. 드라마는 그처럼 한 인간의 심연에 다가가는 것이 흩어진 유해들을 찾아 맞추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임을 말해준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작품의 제목이 나타내는 ‘법적 후견인’ 제도는 1984년, ‘경찰 및 형사증거법’에 의해 도입된 영국의 독특한 제도다. 평론가들은 말 그대로 풀이하면 ‘적합한 성인’이라는 뜻을 지닌 이 제도가 시민의 몫을 다하지 못하는 ‘취약한 성인’(vulnerable adult)을 보호하며 보완하는 성숙한 시민성에 대한 ‘영국의 이상’을 담고 있다고 본다. 드라마는 극단적인 사례 안에서 흔들리는 법적 후견인을 통해 바로 이 이상이 와해되는 순간을 그린다. 그리하여 이성적 인간과 짐승의 경계란 명확한 것이 아니며, 이 비극을 괴물의 돌연변이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일로 들여다볼 것을 이야기한다. 자넷이 심연을 헤매는 방황의 끝에서 결국 피해자들의 고통을 발견했던 것처럼, 드라마의 이 같은 태도는 대량살상을 티브이로 감상하는 시대에 던지는 가장 필요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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