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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드라마 <높은 성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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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 드라마 <높은 성의 사나이>
가정해보자.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아니라 추축국이 승리했다면? 그리하여 독일과 일본은 세계를 양분하여 지배하고 나치의 인종 말살 정책이 법제화된 세상이라면?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 에스에프(SF)의 거장 필립 케이 딕은 이처럼 소름 끼치는 가상현실을 소재로 한 대체역사소설 <높은 성의 사나이>를 발표하며 충격을 주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로 이미 필립 케이 딕과 인연을 맺은 바 있던 감독 리들리 스콧은 이 소설의 영상화를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번번이 좌초됐고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아마존 스튜디오를 통해 파일럿을 공개하게 됐다. 마침 올해가 종전 70주년을 맞이한 해라 결과적으로는 더 뜻깊은 프로젝트가 된 셈이다.
드라마는 시작부터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풍경을 강조한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평화와 저항정신을 상징했던 곡 ‘에델바이스’가 음산하게 깔리는 가운데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 위로 폭탄이 떨어져 내리고 전범기가 세상을 뒤엎는 메인 타이틀 영상은 극의 전체적 분위기를 그대로 압축하고 있다. 일본령인 서부와 독일령인 동부로 갈라진 식민지 미국의 거리 곳곳에는 사람들을 검열하고 통제하는 나치 제복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고 불온분자들을 바로 총살하는 소리도 예사롭게 들려온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뉴욕의 조 블레이크(루크 클라인탱크)와 샌프란시스코의 줄리아나 크레인(알렉사 대벌러스), 두 사람의 시점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참전용사 아버지에게서 ‘자유로웠던 조국’에 대한 이야기를 전설처럼 듣고 자란 조는 뉴욕 동부 저항군 지도자로부터 비밀 임무를 부여받고 중립지대 캐년 시티로 이동하고, 자유롭지는 않아도 일본 문화에 적응하며 나름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던 줄리아나는 저항군이던 동생의 부탁을 받고 캐년 시티로 찾아가게 된다. 반대편에서 출발한 두 인물이 중간지대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마무리까지, 좀처럼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이 한시간 분량의 파일럿을 꽉 채우고 있다.
압권인 장면은 작품의 제목인 ‘높은 성의 사나이’가 처음 언급되는 신이다. 경찰에게 쫓기는 동생에게서 넘겨받은 필름을 살펴보던 줄리아나는 그것이 극중 현실과 달리 연합군의 승리를 생생하게 담고 있는 영상이자 ‘높은 성의 사나이’로 불리는 반파쇼 영화감독의 작품임을 알게 된다. 현실에 어느 정도 순응하는 듯 보였던 줄리아나가 영화를 본 뒤 그 세계야말로 진짜가 아닐까 의심하면서 지금까지의 세계를 벗어나게 되는 모습은 <높은 성의 사나이>가 대체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환기시키는 성찰의 힘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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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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