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9.04 18:41
수정 : 2015.10.26 17:30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 드라마 <온나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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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드라마 <온나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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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드라마를 볼 때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가장 대표적인 유형은 싱글여성에 관한 이야기다. 유교가 공통적 문화기반으로 작용하는 양국 여성 현실의 유사성 때문일 것이다. 일본 드라마 <호타루의 빛>으로 유명해진 ‘건어물녀’(혼자 쉬는 것을 좋아하고 연애 세포도 말라버린 여성을 지칭하는 말)나 만화가 마스다 미리의 ‘수짱 시리즈’로 더 널리 알려진 ‘마케이누’(싸움에서 패배한 개를 뜻하는 말로 올드미스를 주로 지칭하는 속어) 같은 용어들이 국내 여성들 사이에서도 공감어로 자리잡은 것은 단적인 예다.
올해 3분기 드라마 중 <엔에이치케이 비에스>(NHK BS) 프리미엄 채널에서 방영을 시작한 <온나미치> 역시 양국의 싱글여성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30살 전후의 비혼여성을 가리키는 신조어 ‘아라서’에 속하는 인물형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아라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초혼 연령대가 계속해서 높아지는 일본 여성들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포함된 단어로, 이 작품의 주인공인 야마구치 린카(가타세 나나) 역시 32살이 되도록 남자친구도 없고 결혼할 가망성도 낮아지고 있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인물로 그려진다.
드라마는 야마구치가 32살 생일을 맞은 장면에서 바로 20년 뒤로 건너뛰며 52살 생일에 맥주병을 밟고 넘어져 고독사하는,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미래의 한 장면을 비추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혼이 된 52살의 야마구치(와타나베 에리)는 너무도 허무한 죽음에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신은 그녀가 20년 전으로 돌아가 인생을 재출발할 수 있는 기적을 베푼다. 그리하여 미래와 현재, 두명의 야마구치 린카가 합심하여 실패한 인생을 수정해나가는 판타지 코미디가 주 내용이다. 2년 전 방영된 윤은혜, 최명길 주연의 <한국방송>(KBS) 드라마 <미래의 선택>과도 흡사하다.
인상적인 것은 이 작품이 여성 자기계발서의 주류 서사인 성공기가 아니라 실패담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미래의 야마구치가 현재의 자신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그러다 나처럼 된다”는 얘기다. 그녀는 결코 젊은 야마구치의 능숙한 인생 가이드가 아니다. “난 인생의 실패법은 알지만 성공법은 몰라”라는 대사처럼 미래를 알고 있음에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50대 야마구치의 이러한 미숙함이야말로 이 드라마를 인생 선배의 일방적 가르침이 아니라 두 여성이 서로의 삶을 상의하며 동반성장하는 이야기로 만드는 힘이다. 그들의 실패는 그렇게 함께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이어지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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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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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제목 ‘온나미치’는 일본의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옆으로 에둘러 완만하게 돌아가는 길을 뜻하는 말이라 한다. 곧장 가로질러 가는 것보다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넘어져도 쉽게 다시 일어날 수 있고 주변도 돌아볼 수 있는 길이다. 드라마 속 두 여성의 이야기는 바로 그 길을 따라 올라간다. 친구와 수다 떨며 여유롭고 가벼이 산책하듯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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