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드라마 <가족을 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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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드라마 <가족을 빌려드립니다>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아버지가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면접관들 앞에서 열심히 지원 동기를 밝히고 있다. 유창한 말솜씨와 반듯한 외모에 면접관들은 미소를 감추지 못한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면, 이번엔 다른 학교에서 지원 동기를 설명하는 남자. 그런데 이상하다. 아들의 얼굴이 아까와는 다르다. 다시 장면이 바뀌면, 이번에도 또 다른 아이를 아들이라 소개하고 있다. 이 남자, 대체 정체가 뭘까.
2012년 니혼티브이에서 방영된 스페셜드라마 <가족을 빌려드립니다>는 가족대행업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내세운 작품이다. 앞서 등장한 정체불명의 남자는 가족대행업체 사장 야마무로 슈지(다마키 히로시). 편부모가정 자녀의 입학을 꺼리는 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싶은 싱글맘들의 의뢰를 받고 아버지 노릇을 한 것이다. 그의 가족대행은 실로 다양하다. 어릴 적 이혼한 부모로부터 방치돼 고아나 다름없는 신부에게는 결혼식장을 채워줄 가족 하객이 되고, 아버지가 보고 싶다는 어린 딸에게 가정을 버린 그를 차마 소개해줄 수 없는 여인에게는 전남편 역할을 대리해준다.
드라마가 이 가상의 업체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족해체 시대의 씁쓸한 풍경이다. 슈지가 한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연간 25만쌍이 이혼’하는 가운데 가족의 변화는 부인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는 여전히 이른바 ‘정상가족’의 범주에서 벗어난 가정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인용한 ‘패밀리 로맨스’라는 이름의 대행회사가 직원들의 철저한 연기로 가상가족의 세계를 구축하는 모습은 그러한 이상가족 판타지를 효과적으로 풍자한다.
비판적 시선은 여러 사연들 속에 드러나는 억압적 가부장의 공통적 초상에서도 발견된다. 정상가족 판타지는 권위적이고 능력 있는 가부장을 그 중심으로 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다른 가족에게 상처만 남긴 가정해체의 주범이다. 또 한명의 주인공 류노스케(다케나카 나오토)가 대표적인 사례다.
전후 시대에 맨바닥에서 출발해 세계적인 제조회사를 키워낸 류노스케는 공적으로는 성공했지만, 가족들에게는 억압적 태도로 미움을 받는 아버지다. 드라마는 시한부 판정을 받고 삶을 돌아보는 그를 연민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냉정한 시선 역시 유지한다. 그의 공적 성공 신화는 결코 사적 실패에 대한 변명이 되지 못한다. 초점은 가족들이 뒤늦게 류노스케의 진심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아니라, 그가 반성하는 모습에 맞춰져 있다.
김선영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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