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드라마 <학교: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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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의 한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난다. 평소 학교폭력에 시달려왔던 두 학생은 자신들을 괴롭힌 동급생들에게 총격을 가해 네명을 죽이고 세명을 다치게 했다. 사건 뒤 범인들은 현장에서 동반자살을 시도하고 중도에 자살을 포기한 한명만이 살아남는다. 일마르 라그 감독의 2007년 영화 <학교>(Klass)는 10대 총기난사 사건을 소재로 학교폭력이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섬세하게 그려내 유수의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작품이었다. 감독은 1999년 미국 콜럼바인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에서 국가와 시대를 초월한 학교폭력과 청소년 문제의 심각성을 목격했고 이 영화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공교롭게도 영화가 공개된 그해 핀란드에서도 고등학생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그로부터 3년 뒤, 같은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7부작 티브이 시리즈 <학교: 그 후>는 참사의 후유증을 그리고 있다. 영화가 인간의 영혼을 서서히 좀먹어 들어가는 학교폭력의 잔혹함을 끈질긴 시선으로 응시했다면, 드라마는 영화 속 파국의 결말 바로 그 지점에서 살아남은 자들에게 묻는다. 이 비극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이며,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남은 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교사, 학생, 피해자 가족, 가해자 가족 등 매회 다른 시점을 통해 반복해서 떠오른다. 가령 첫회에서 자신의 반 학생 대부분이 폭력에 가담한 사실을 알게 된 교사 라이네(라이네 메기)의 “내가 어디서부터 잘못한 거죠?”라는 오열과 자문은 그대로 다른 이들에게도 적용된다. 가족들은 “아이한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왜 아무것도 몰랐을까” 괴로워하고 폭력을 방관했던 아이는 ‘왜 모른 척했을까’ 후회한다. 그리고 총기사건 범인 카스파르(발로 키르스)의 재판이 전개되는 마지막회에 이르면 물음은 사회 전체로 확대된다. ‘어떤 경우에도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강한 처벌이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 놓치고 있는 질문을 카스파르의 변호사가 대변한다. “이들이 존엄성을 잃지 않기 위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운 사람이 있나요? 그를 감옥에 보내는 것만이 올바른 해결책일까요?” 얼핏 상투적으로 들릴 수 있는 이 물음은 하나의 사회적 폭력에 얼마나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하는가를 다각도에서 추적하고 그것이 얼마나 많은 이에게 고통을 주는지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과정을 거쳐 강렬한 힘을 얻는다. 밝혀진 진실 중 카스파르만이 한 사람을 향한 집단폭력에 저항해 그의 편에 선 인물이었다는 사실 역시 가해자와 피해자의 단순 구분에 근거한 징벌을 떠나 더 신중한 대안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김선영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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