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버밍엄대 사회정책학과 교수 영국의 인기 있는 극장용 버라이어티쇼 노래 ‘오, 나는 바닷가 근처가 정말 좋다네’는 잉글랜드 북서부 해변 휴양지 블랙풀의 타워볼룸에서 오르간을 연주해온 레지널드 딕슨의 테마곡이다. 그는 1930년부터 40년 동안 이 곡을 연주했다. 당시 블랙풀은 수많은 영국 가족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여름휴가지 중 한 곳이었다. 그러나 1960~70년대 들어 이국적인 해외 휴양지로 떠나는 패키지 휴가가 유행하면서 영국의 가족 휴가 습성도 바뀌었다. 블랙풀 바닷가 근처 비앤비 민박에서 2주 동안 보내는 상품을 더 이상 이용하지 않고 태양이 이글거리는 스페인·이탈리아 해변을 선호했다. 하루 당일치기 여행지로는 블랙풀이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지만 여행 패턴의 변화로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블랙풀의 지역 소득도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다만 관광경기 침체에도 블랙풀은 주민들에게 거주지로서는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여러 숙박업소는 점차 값싸고 질이 낮은 원룸 자취방 같은 곳으로 바뀐 지 오래다. 미숙련 일용직 노동자나 실업자, 취업 부적격자들이 선호하기 때문이다. 블랙풀 주민 중에 교육수준과 숙련이 높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고, 미숙련·실업자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블랙풀은 실업률이 영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 중 한 곳이다. 경제활동인구 중 약 13%는 노동능력 상실에 따른 급여를 받아 살아가고 있다. 비만율과 흡연율도 영국에서 가장 높고 항우울제에 의존하는 사람도 많다. 알코올 관련 간질환 사망자가 영국 전역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증가하면서 기대 수명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블랙풀의 명성을 재건하려는 다양한 지역적 시도가 일어나고 있기는 하다. 블랙풀의 지방자치단체(카운슬)는 집주인들에게 열악한 주거시설을 보수·개선하라고 압박하는가 하면 몇몇 비앤비 숙소를 사들여 일반 가정집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관광객이 주로 찾는 겨울정원과 블랙풀 타워는 지자체가 되사들여 가족 단위 휴가객들이 즐겨 찾을 관광지로 탈바꿈시키려 노력 중이다. 다양한 부문에서 자발적 비영리조직이 지역공동체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자 다양한 활동을 주도적으로 벌이고 있는데, 마약중독자나 신용불량자에게 맞춤형 지원 및 조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주요 문제들의 도전에 직면해 있는 해변도시가 블랙풀만은 아니다. 영국 정부는 2012년에 해변 지역 펀드를 설립해 상황 개선에 나섰다. 2억2800만파운드(약 3360억원)의 펀드 자금이 최근 서퍽의 사우스월드, 켄트의 도버, 도싯의 본머스와 풀의 여러 프로젝트에 제공됐다. 하지만 영국 상원 전문가위원회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해변 지역 재생은 장기 투자를 필요로 하는 사업이다. 교통, 디지털 기반시설, 주거·교육 등에 걸쳐 막대한 규모의 투자가 이뤄져야 ‘번창하는 곳이어서, 거주하기도 관광지로 찾아가기도 좋은 장소’가 될 수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 기자로 해변도시를 탐사보도해온 세라 오코너는 해변도시가 안고 있는 고유하고 특별한 문제에만 집중하다 보면 경제적 문제 이외의 것들은 잘되고 있다는 그릇된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고 말한다. 해변 지역이 몸살을 앓고 있는 문제들은 종종 다른 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저임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블랙풀로 흘러들어오는 이유 중 하나는 값싼 집들이 다른 지역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임대료가 싼 주택을 더 많이 공급하지 못한 영국 전체의 실패를 반영한다. 따라서 영국 전체가 맞닥뜨린 국가적 문제라는 척도에서 블랙풀을 봐야 한다. 지역공동체들이 스스로 재생하기를 기대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물론 변덕스러운 관광수입 의존 같은 해변 지역이 맞닥뜨린 문제와 그에 따른 맞춤형 해법은 별도로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이 직면한 문제를 둘러싼 폭넓은 국가정책적 개입이 요청된다. 그래야만 딕슨이 타워볼룸에서 오랫동안 연주해온 노래 가사처럼 바닷가에 사는 달콤한 삶이 다시 한번 현실이 될 수 있다.
칼럼 |
[세계의 창] 쇠락한 블랙풀, 영국이 맞닥뜨린 과제 / 로버트 페이지 |
영국 버밍엄대 사회정책학과 교수 영국의 인기 있는 극장용 버라이어티쇼 노래 ‘오, 나는 바닷가 근처가 정말 좋다네’는 잉글랜드 북서부 해변 휴양지 블랙풀의 타워볼룸에서 오르간을 연주해온 레지널드 딕슨의 테마곡이다. 그는 1930년부터 40년 동안 이 곡을 연주했다. 당시 블랙풀은 수많은 영국 가족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여름휴가지 중 한 곳이었다. 그러나 1960~70년대 들어 이국적인 해외 휴양지로 떠나는 패키지 휴가가 유행하면서 영국의 가족 휴가 습성도 바뀌었다. 블랙풀 바닷가 근처 비앤비 민박에서 2주 동안 보내는 상품을 더 이상 이용하지 않고 태양이 이글거리는 스페인·이탈리아 해변을 선호했다. 하루 당일치기 여행지로는 블랙풀이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지만 여행 패턴의 변화로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블랙풀의 지역 소득도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다만 관광경기 침체에도 블랙풀은 주민들에게 거주지로서는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여러 숙박업소는 점차 값싸고 질이 낮은 원룸 자취방 같은 곳으로 바뀐 지 오래다. 미숙련 일용직 노동자나 실업자, 취업 부적격자들이 선호하기 때문이다. 블랙풀 주민 중에 교육수준과 숙련이 높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고, 미숙련·실업자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블랙풀은 실업률이 영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 중 한 곳이다. 경제활동인구 중 약 13%는 노동능력 상실에 따른 급여를 받아 살아가고 있다. 비만율과 흡연율도 영국에서 가장 높고 항우울제에 의존하는 사람도 많다. 알코올 관련 간질환 사망자가 영국 전역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증가하면서 기대 수명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블랙풀의 명성을 재건하려는 다양한 지역적 시도가 일어나고 있기는 하다. 블랙풀의 지방자치단체(카운슬)는 집주인들에게 열악한 주거시설을 보수·개선하라고 압박하는가 하면 몇몇 비앤비 숙소를 사들여 일반 가정집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관광객이 주로 찾는 겨울정원과 블랙풀 타워는 지자체가 되사들여 가족 단위 휴가객들이 즐겨 찾을 관광지로 탈바꿈시키려 노력 중이다. 다양한 부문에서 자발적 비영리조직이 지역공동체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자 다양한 활동을 주도적으로 벌이고 있는데, 마약중독자나 신용불량자에게 맞춤형 지원 및 조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주요 문제들의 도전에 직면해 있는 해변도시가 블랙풀만은 아니다. 영국 정부는 2012년에 해변 지역 펀드를 설립해 상황 개선에 나섰다. 2억2800만파운드(약 3360억원)의 펀드 자금이 최근 서퍽의 사우스월드, 켄트의 도버, 도싯의 본머스와 풀의 여러 프로젝트에 제공됐다. 하지만 영국 상원 전문가위원회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해변 지역 재생은 장기 투자를 필요로 하는 사업이다. 교통, 디지털 기반시설, 주거·교육 등에 걸쳐 막대한 규모의 투자가 이뤄져야 ‘번창하는 곳이어서, 거주하기도 관광지로 찾아가기도 좋은 장소’가 될 수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 기자로 해변도시를 탐사보도해온 세라 오코너는 해변도시가 안고 있는 고유하고 특별한 문제에만 집중하다 보면 경제적 문제 이외의 것들은 잘되고 있다는 그릇된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고 말한다. 해변 지역이 몸살을 앓고 있는 문제들은 종종 다른 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저임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블랙풀로 흘러들어오는 이유 중 하나는 값싼 집들이 다른 지역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임대료가 싼 주택을 더 많이 공급하지 못한 영국 전체의 실패를 반영한다. 따라서 영국 전체가 맞닥뜨린 국가적 문제라는 척도에서 블랙풀을 봐야 한다. 지역공동체들이 스스로 재생하기를 기대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물론 변덕스러운 관광수입 의존 같은 해변 지역이 맞닥뜨린 문제와 그에 따른 맞춤형 해법은 별도로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이 직면한 문제를 둘러싼 폭넓은 국가정책적 개입이 요청된다. 그래야만 딕슨이 타워볼룸에서 오랫동안 연주해온 노래 가사처럼 바닷가에 사는 달콤한 삶이 다시 한번 현실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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