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영국 정부는 3주 전 줄리언 어산지를 미국으로 송환해달라는 미국 정부의 요청을 승인하고, 이와 관련한 예비심리를 열었다. 예비심리가 열리기 전날, 사지드 자비드 영국 내무장관이 한 말을 살펴보자. “미국 정부의 어산지 송환 요청에 따라 내일 어산지의 송환을 결정하는 예비심리가 열릴 예정입니다. 송환 명령은 어제 이미 서명하여 교부한 상태입니다. 어산지를 미국으로 송환할지 여부는 내일 있을 법원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영국 정부는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법원의 결정을 따르겠지만 말입니다.” 영국 내무장관은 길지도 않은 발언을 하면서 어산지의 송환이 법원의 결정에 달려 있다는 말을 중언부언 되풀이한다. 이 어색함에서 그의 말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소리 내어 발화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최종적인 결정이 실은 ‘어제’ 이미 내려졌으며, 영국은 미국이 바라는 대로 이를 ‘내일’ 사후적으로 승인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어산지가 한 일이 정의였는지 정의가 아니었는지는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지난 5월에는 런던 주재 에콰도르대사관이 미국이 어산지의 송환을 최종적으로 요청하기도 전에 어산지의 물품을 미국에 건네는 절차를 시작했다. 어산지의 원고와 법률서류, 진료기록, 전자기기 등이 압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에콰도르대사관은 망명 제도의 기본적인 규정을 완전히 무시한 채, 어산지의 개인정보를 무분별하게 미국에 넘겼다. 어산지의 변호사는 이렇게 비판한다. “이해하기 어렵게도, 얼마 전까지 어산지에게 피난처를 제공해주던 에콰도르대사관은 이제 입장을 바꿔 어산지의 물품을 미국에 넘기고 있습니다. 영장도 없이, 정치적 난민의 권리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어산지의 물품을 압류했습니다. 또 어산지가 대사관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몰래 녹화한 다음 이를 언론에 공개하기까지 했습니다. 어산지의 비판자들에게 어산지가 비난받을 빌미를 제공한 것입니다. 어산지의 삶은 매우 체계적으로 파괴되고 있습니다.” 어산지에 대한 송환 결정이나 물품 압류가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저들은 의도적으로 법적 절차를 무시하며 어산지를 가혹한 방법으로 괴롭히고 있다. 어산지를 괴롭히는 방식의 노골적인 불법성 자체가 비판적 대중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저들은 어산지를 혹독하게 처벌함으로써 우리에게 ‘성가시게 하지 말라! 귀찮게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잔혹하게 짓밟아주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미국으로 송환되면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할 수도 있다고 어산지가 우려할 때 이를 편집증적 과대망상으로 몰아붙이던 이들, 어산지가 대사관에서 나온다 해도 그저 몇주 정도 복역하고 말 것이라고 주장하던 이들이 이제는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어산지가 대사관에 너무 오래 머물면서 에콰도르 쪽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주장하던 야비한 이들이 이제는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어산지와 같은 강간범과는 절대 연대할 수 없다고 주장하던 소위 여성주의자들이 이제는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공적 공간의 자유가 지켜져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우리는 줄리언 어산지, 첼시 매닝, 에드워드 스노든 같은 이들을 진정한 공적 영웅으로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 우리가 중국 반체제 예술가 아이웨이웨이를 진정한 공적 영웅으로 평가하는 것처럼 말이다. 둘째, 우리는 어산지 같은 인물이 아랍 국가들, 중국, 러시아 같은 국가에서도 곧 등장해야 한다고 말로만 떠들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어산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어산지를 지지하지 않는 미국과 영국의 자유주의자들은 어산지가 저런 권위주의 국가에 있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제 분명해졌다. 지금 어산지가 겪고 있는 일들을 보라. 번역 김박수연
칼럼 |
[세계의 창] 줄리언 어산지의 어제와 내일 / 슬라보이 지제크 |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영국 정부는 3주 전 줄리언 어산지를 미국으로 송환해달라는 미국 정부의 요청을 승인하고, 이와 관련한 예비심리를 열었다. 예비심리가 열리기 전날, 사지드 자비드 영국 내무장관이 한 말을 살펴보자. “미국 정부의 어산지 송환 요청에 따라 내일 어산지의 송환을 결정하는 예비심리가 열릴 예정입니다. 송환 명령은 어제 이미 서명하여 교부한 상태입니다. 어산지를 미국으로 송환할지 여부는 내일 있을 법원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영국 정부는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법원의 결정을 따르겠지만 말입니다.” 영국 내무장관은 길지도 않은 발언을 하면서 어산지의 송환이 법원의 결정에 달려 있다는 말을 중언부언 되풀이한다. 이 어색함에서 그의 말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소리 내어 발화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최종적인 결정이 실은 ‘어제’ 이미 내려졌으며, 영국은 미국이 바라는 대로 이를 ‘내일’ 사후적으로 승인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어산지가 한 일이 정의였는지 정의가 아니었는지는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지난 5월에는 런던 주재 에콰도르대사관이 미국이 어산지의 송환을 최종적으로 요청하기도 전에 어산지의 물품을 미국에 건네는 절차를 시작했다. 어산지의 원고와 법률서류, 진료기록, 전자기기 등이 압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에콰도르대사관은 망명 제도의 기본적인 규정을 완전히 무시한 채, 어산지의 개인정보를 무분별하게 미국에 넘겼다. 어산지의 변호사는 이렇게 비판한다. “이해하기 어렵게도, 얼마 전까지 어산지에게 피난처를 제공해주던 에콰도르대사관은 이제 입장을 바꿔 어산지의 물품을 미국에 넘기고 있습니다. 영장도 없이, 정치적 난민의 권리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어산지의 물품을 압류했습니다. 또 어산지가 대사관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몰래 녹화한 다음 이를 언론에 공개하기까지 했습니다. 어산지의 비판자들에게 어산지가 비난받을 빌미를 제공한 것입니다. 어산지의 삶은 매우 체계적으로 파괴되고 있습니다.” 어산지에 대한 송환 결정이나 물품 압류가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저들은 의도적으로 법적 절차를 무시하며 어산지를 가혹한 방법으로 괴롭히고 있다. 어산지를 괴롭히는 방식의 노골적인 불법성 자체가 비판적 대중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저들은 어산지를 혹독하게 처벌함으로써 우리에게 ‘성가시게 하지 말라! 귀찮게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잔혹하게 짓밟아주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미국으로 송환되면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할 수도 있다고 어산지가 우려할 때 이를 편집증적 과대망상으로 몰아붙이던 이들, 어산지가 대사관에서 나온다 해도 그저 몇주 정도 복역하고 말 것이라고 주장하던 이들이 이제는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어산지가 대사관에 너무 오래 머물면서 에콰도르 쪽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주장하던 야비한 이들이 이제는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어산지와 같은 강간범과는 절대 연대할 수 없다고 주장하던 소위 여성주의자들이 이제는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공적 공간의 자유가 지켜져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우리는 줄리언 어산지, 첼시 매닝, 에드워드 스노든 같은 이들을 진정한 공적 영웅으로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 우리가 중국 반체제 예술가 아이웨이웨이를 진정한 공적 영웅으로 평가하는 것처럼 말이다. 둘째, 우리는 어산지 같은 인물이 아랍 국가들, 중국, 러시아 같은 국가에서도 곧 등장해야 한다고 말로만 떠들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어산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어산지를 지지하지 않는 미국과 영국의 자유주의자들은 어산지가 저런 권위주의 국가에 있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제 분명해졌다. 지금 어산지가 겪고 있는 일들을 보라. 번역 김박수연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