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버밍엄대 사회정책학과 교수
칼럼 |
[세계의 창] 계층이동 추구는 포기할 때인가 / 로버트 페이지 |
많은 존경과 대가를 받는 직업들은 개인의 장점 및 노력과 연결돼야 한다는 점은 정치적 스펙트럼과 상관없이 폭넓은 지지를 받는다. 정부와 비정부기구들은 불리한 배경을 지녔지만 능력이 있는 사람의 상승이동을 막는 장벽들을 없애는 정책들을 추진한다. 예를 들어, 최근 옥스퍼드대 부총장은 사회·경제적으로 불우한 학생들을 더 받겠다고 발표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은 기존 입학 자격에 조금 못 미치더라도 그들보다 성적이 좀 더 우수한 특권층 출신 대신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이는 불우한 배경을 지닌 학생들 일부의 상승이동에 도움이 되겠지만, 이런 정책에 대한 주목은 폭넓은 불평등과 빈곤 심화 문제에 대한 관심을 흩트린다.
사회이동(계층이동)을 강조하고 평등을 지향하는 좌파는 ‘출생에서 일자리까지 거의 모든 단계에서 사회이동이 정체됐다’는 영국 사회이동성위원회의 최근 보고서 내용이 불편할 것이다. 이는 후한 급여를 받는 직업이 늘면서 사회이동에 대한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게 만든 1960~70년대와 대조적이다. 오늘날 상승이동의 증가는 어찌 보면 다른 이들의 하강이동을 통해서야 성취할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부유한 부모들은 자녀가 사회·경제적 계층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부유층은 그런 가능성을 막으려고 특별한 노력을 한다. 자녀를 명문학교에 보내려고 많은 돈을 쓰고, 인맥을 이용해 자녀에게 인턴십이나 취업 기회를 마련해주는 식이다. 노동계급 출신이지만 전문직으로 진출한 소수의 사람들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는 게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샘 프리드먼과 대니얼 로리슨이 최근 낸 책 <계급 천장>은 노동계급 출신으로 높은 지위의 직업을 갖게 된 이들은 특권적 배경을 지닌 이들에 비해 적은 급여를 받으며 승진 기회가 막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사회이동을 촉진한다는 정책이 불리한 조건에 놓인 시민들 중 아주 일부에게만 혜택을 준다는 점을 고려하면, 평등주의자들은 확대되는 빈부격차 해결을 위한 긴급하고 근본적인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최근 나온 영국 재정연구소(IFS)의 ‘21세기의 불평등’ 보고서는 영국에서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높은 수준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1970년대에 3%였던 상위 1% 가구의 소득 점유율은 8%까지 올라갔다. 최고경영자 평균 급여는 노동자 평균의 145배에 이른다. 이는 1998년에 비해 3배 늘었다. 상위 10%가 보유한 부가 전체의 50%가량이며, 상위 1%에 14% 이상의 부가 집중돼 있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 확대는 밑바닥에 있는 이들의 빈곤 심화와 동시에 진행된다. 조지프 라운트리 재단의 ‘2018 영국 빈곤 보고서’는 영국인 5명 중 1명이 빈곤 상태라고 밝혔다. 최근 몇년간 실업률이 빠르게 내려갔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이 보고서는 어떤 가구에 1명 이상의 취업자가 있더라도 빈곤이 심화되는 추세라고 했다. 특히 한부모 가정은 저소득 일자리, 주거비 부담, 복지 혜택과 세액 공제 축소로 빈곤에 빠지는 경향이 더욱 강했다.
극빈과 인권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관은 최근 보고서에서 영국의 아동 빈곤 문제가 앞으로 2년간 더 심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 거리에서 생활하는 비주택 거주자가 증가하고 자선 푸드뱅크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남자는 약 9년 반, 여자는 거의 8년인 빈곤 지역과 부유층 거주 지역의 기대수명 차이의 증가도 주목된다.
불평등 해소를 위해 소득 재분배, 부유세, 공공지출 증가 등 여러 대책이 거론된다. 평등주의자들은 정책 변화를 위해 유권자들의 지지를 확보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증세와 공공지출 증가에 대한 지지가 높아졌음을 보여주지만, 개인 세금 부담의 증가를 고려하면 시민들의 선의를 실제 정책으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좌파 정치인들과 정책 결정자들은 사회이동이라는 좁은 어젠다보다는 더욱 야심찬 정책을 고려해야 한다.
로버트 페이지
영국 버밍엄대 사회정책학과 교수
영국 버밍엄대 사회정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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