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일본에서는 여당이 정기국회 회기를 연장해 국민에게 필요하거나 유익한지가 불분명한 법률을 숫자의 힘으로 통과시키려고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아르(Integrated Resort·종합형 리조트 정비) 법안은 일본에 카지노를 개설하기 위한 법안이다. 정부는 성장 전략의 하나로 카지노가 필요하다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카지노는 도박으로 손해를 본 사람들의 돈으로 이익을 낸다. 그런 것이 성장 전략으로 불리다니, 일본이 그 정도까지 추락했나 하고 슬퍼지지만, 정부는 법안 통과에 전력을 쏟겠다고 말하고 있다. 아이아르 법안은 지난달 19일 중의원을 통과하고 최근 참의원에서 심의 중이다. ‘일하는 방식 개혁법’도 통과됐다. 이 법안은 노동기준법 등 각종 노동 관련 법 개정안을 통칭하는 것으로, 지난달 29일 참의원 통과로 최종 확정됐다. 이 개정안들을 통해 1947년 노동기준법 제정 이후 처음으로 처벌 규정이 부여된 시간 외 노동 상한 조항을 만들었으나, 시간 외 노동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 각종 예외 규정도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노동자 과로 방지를 위한 법안이 맞느냐는 논란이 일었다. 장시간 노동 규제는 필요하지만, 이 법률의 노림수는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의 도입에 있다.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는 일정 수입 이상 전문 직종은 소정 노동 시간(일정한 노동 시간에 따라 임금을 지급)이라는 개념을 폐지하고 일의 양에 따라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다. 이 때문에 사용자가 많은 일을 노동자에게 할당한 뒤 잔업 수당을 주지 않고 장시간 노동을 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 입법 과정의 공통점은 정부 쪽의 극히 불성실한 태도다.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을 기초한 후생노동성이 법안 통과 필요성의 근거로 든 데이터는 날조됐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또한 후생노동상은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가 필요하다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설명했지만, 법안 제출 전 면담 조사를 한 노동자는 한 명뿐이었다는 점도 명백하게 드러났다. 가족을 과로사로 잃은 사람들이 이 법률은 단지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는 것이라며 아베 신조 총리와의 면담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상대해주지 않았다. 지금의 일본에서 국회 심의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겉모양과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의례일 뿐이다. 총리와 각료가 야당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때로는 각료들이 야당 의원에게 야유를 날리는 경우조차 있다. 그리고 일정한 질의 시간이 지나면 법안의 결점에 대해서 아무리 적확한 추궁이 있어도 통과시킨다. 일본 정치는 성실이라는 미덕을 잃어버렸다. ‘이웃집의 잔디는 푸르게 보인다’(남의 것이 더 좋아 보인다는 뜻)는 일본 속담이 있지만,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을 보고 있으면 그 성실함은 외국인에게도 전달된다. 그가 지금까지 겪어온 여러 어려운 경력들이 그러한 얼굴과 말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성실한 정치가를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는 국민이 민주 정치에 얼마나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가의 허위와 기만에 대해서 소용없는 듯이 보여도 항의하는 목소리를 계속해서 내는 국민의 존재가 있기에 정치가가 국민을 성실하게 마주 대하게 되는 것이다. 권모술수가 소용돌이치는 정치의 세계에서 성실함은 유효한 무기가 될까, 배신을 당하는 근원이 될까. 마키아벨리 이후 논쟁이다. 동양에서는 ‘무신불립’(無信不立, 정치는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다는 뜻)이라는 말이 있다. 정치가가 국민에게 성실하게 말을 걸면, 국민 자신이 나라의 명운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열의와 성실함을 만들어내는 효과가 있다. 일본에서는 앞으로 당분간 아베 총리의 정치가 계속될 듯하지만, 정치가의 기만과 거짓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국민의 목소리를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내서 민주 정치를 지지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칼럼 |
[세계의 창] 정치가의 성실함 / 야마구치 지로 |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일본에서는 여당이 정기국회 회기를 연장해 국민에게 필요하거나 유익한지가 불분명한 법률을 숫자의 힘으로 통과시키려고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아르(Integrated Resort·종합형 리조트 정비) 법안은 일본에 카지노를 개설하기 위한 법안이다. 정부는 성장 전략의 하나로 카지노가 필요하다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카지노는 도박으로 손해를 본 사람들의 돈으로 이익을 낸다. 그런 것이 성장 전략으로 불리다니, 일본이 그 정도까지 추락했나 하고 슬퍼지지만, 정부는 법안 통과에 전력을 쏟겠다고 말하고 있다. 아이아르 법안은 지난달 19일 중의원을 통과하고 최근 참의원에서 심의 중이다. ‘일하는 방식 개혁법’도 통과됐다. 이 법안은 노동기준법 등 각종 노동 관련 법 개정안을 통칭하는 것으로, 지난달 29일 참의원 통과로 최종 확정됐다. 이 개정안들을 통해 1947년 노동기준법 제정 이후 처음으로 처벌 규정이 부여된 시간 외 노동 상한 조항을 만들었으나, 시간 외 노동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 각종 예외 규정도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노동자 과로 방지를 위한 법안이 맞느냐는 논란이 일었다. 장시간 노동 규제는 필요하지만, 이 법률의 노림수는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의 도입에 있다.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는 일정 수입 이상 전문 직종은 소정 노동 시간(일정한 노동 시간에 따라 임금을 지급)이라는 개념을 폐지하고 일의 양에 따라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다. 이 때문에 사용자가 많은 일을 노동자에게 할당한 뒤 잔업 수당을 주지 않고 장시간 노동을 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 입법 과정의 공통점은 정부 쪽의 극히 불성실한 태도다.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을 기초한 후생노동성이 법안 통과 필요성의 근거로 든 데이터는 날조됐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또한 후생노동상은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가 필요하다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설명했지만, 법안 제출 전 면담 조사를 한 노동자는 한 명뿐이었다는 점도 명백하게 드러났다. 가족을 과로사로 잃은 사람들이 이 법률은 단지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는 것이라며 아베 신조 총리와의 면담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상대해주지 않았다. 지금의 일본에서 국회 심의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겉모양과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의례일 뿐이다. 총리와 각료가 야당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때로는 각료들이 야당 의원에게 야유를 날리는 경우조차 있다. 그리고 일정한 질의 시간이 지나면 법안의 결점에 대해서 아무리 적확한 추궁이 있어도 통과시킨다. 일본 정치는 성실이라는 미덕을 잃어버렸다. ‘이웃집의 잔디는 푸르게 보인다’(남의 것이 더 좋아 보인다는 뜻)는 일본 속담이 있지만,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을 보고 있으면 그 성실함은 외국인에게도 전달된다. 그가 지금까지 겪어온 여러 어려운 경력들이 그러한 얼굴과 말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성실한 정치가를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는 국민이 민주 정치에 얼마나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가의 허위와 기만에 대해서 소용없는 듯이 보여도 항의하는 목소리를 계속해서 내는 국민의 존재가 있기에 정치가가 국민을 성실하게 마주 대하게 되는 것이다. 권모술수가 소용돌이치는 정치의 세계에서 성실함은 유효한 무기가 될까, 배신을 당하는 근원이 될까. 마키아벨리 이후 논쟁이다. 동양에서는 ‘무신불립’(無信不立, 정치는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다는 뜻)이라는 말이 있다. 정치가가 국민에게 성실하게 말을 걸면, 국민 자신이 나라의 명운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열의와 성실함을 만들어내는 효과가 있다. 일본에서는 앞으로 당분간 아베 총리의 정치가 계속될 듯하지만, 정치가의 기만과 거짓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국민의 목소리를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내서 민주 정치를 지지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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