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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21 18:17 수정 : 2014.09.21 18:18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3차 핵실험을 강행한 뒤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 북한이 처한 국제 환경은 최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도 많았다. 그런데 많은 예측과 달리 북한은 버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가 서서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분위기다.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1978년 11기 3중전회를 시작으로 개혁개방의 문을 연 중국은 불과 2~3년 만에 먹는 문제를 해결했다. 시장에는 문화대혁명 때 볼 수 없던 상품들이 요술처럼 쏟아져 나왔다. 요술을 부린 것은 정책 변화였다. 문화대혁명 탓에 나라 경제가 거덜난 상황에서 정부가 줄 수 있는 것은 정책뿐이었다. 그 정책은 한마디로 ‘권력하방’(權力下放)이었다. 권력의 주체가 일원화에서 다원화로 나아가며 잠자던 힘을 깨웠던 것이다.

최근 다녀온 북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다. 변화의 원동력은 바로 내적 잠재력을 불러일으킨 조처에 있었다. ‘5·30 조처’로 불리는 새로운 조처로 북한 전역 모든 공장과 기업, 회사, 상점 등에 자율경영권을 부여했다. 생산권, 분배권에 이어 무역권까지 원래 국가 몫이던 권력이 하방돼 공장, 기업의 독자적인 자주경영권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어찌 보면 가장 획기적인 조처라 하겠다. 농촌은 경영단위가 계속 축소되고 생산물에 대한 자율처분권이 확대돼왔다. 19개로 확대된 개발구 역시 개발구법에 따라 경제무역관리 측면에서 많은 권력이 이양되고 있다.

개혁개방 초기 중국은 개인재산이라는 경제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은 공유제 기관 명의를 빌려서야 회사나 식당 등을 꾸릴 수 있었다. 이른바 ‘붉은 모자’를 썼던 것이다. 지금의 북한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외모는 공공기관의 이름이지만 내실은 개인이 투자·경영하는 회사나 상점, 식당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일까. 필자가 찾은 원산의 한 해변가 대중식당은 맛이나 서비스가 한국 못지않았다. 북한 주민들로 붐볐다. 돈도 엄청 번다고 한다. 원산 도처는 ‘원산을 세계적인 휴양지로 건설하자’는 구호가 걸려 있었다. 갈마반도의 섬들에서는 호텔 공사가 한창이라고 한다. 크고 작은 변화는 도처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변화의 이면에는 시장 원리가 작동하고 있었다. 북한에서 다분히 ‘선전용’이라 할 수 있는 주체사상탑, 전승기념관은 이제 모두 입장료를 받고 있다. 크고 작은 공원도 입장료를 내야 한다. 없던 주차비도 생겼다. 원산의 일반 해수욕장 입구에는 입장료가 명시돼 있었다. 이런 변화를 일상생활로 받아들이는 북한 주민들의 표정은 지난 어느 때보다 밝고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희망이 읽혔다.

“지난날의 경제관리 방법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나라 경제를 발전시킬 수 없다.” 최근 북한 학술지에 실린 내용이다. 북한 안에선 분명 조용히, 그렇지만 커다란 변화가 태동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래서일까. 북한 학자들은 “2~3년이면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한국은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려 갖은 노력을 해왔다. 그런데 이제 정작 그토록 바라던 북한의 ‘변화’를 외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왜일까? 한국이 바라는 변화, 한국이 주도하는 변화가 아니기 때문일까? 자의든 타의든 한국에서는 ‘북한 흔들기’가 계속되는 것 같다. ‘언론자유’라는 명분으로 묵인되는 삐라 살포만 봐도 그렇다. 박근혜 정부는 ‘국제관례’를 내세우며 북한 응원단의 자비 부담을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삐라 살포에도 ‘국제관례’를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다른 나라에 그 나라 원수를 모독하는 삐라를 날리면 어떻게 될까. 한국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원색적 비난도 마찬가지다.

아침마다 북한 보통강변에는 음악에 맞춰 춤추는 수십명의 중·노년 여성들이 있었다. 우아한 모습이었다. 필자 일행이 사진에 담으려 하니 7~8명이 우르르 나와 막아섰다. 외래인에 대한 경계심이 역력했다. 북한은 그 경계심을 풀지 못하면 개방이 어려울 것이다. 그걸 풀어주는 것은 한국이나 국제사회의 몫이 아닐까.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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