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시 데쓰야/도쿄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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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창
태평양전쟁 말기 오키나와전투에서 발생한 주민의 ‘집단자결’ 문제는 지난 4월 칼럼에서 다룬 적이 있다. 문부과학성이 검정을 통해, 일본군이 집단자결을 강제했다는 교과서 기술을 삭제해 말썽을 빚어왔다. 이번에는 그 후일담부터 써보겠다. 오키나와에서는 학회의 통설이나 생존자들의 여러 증언들을 무시한 정부의 ‘역사 개악’에 대해 격렬한 항의의 물결이 일어났다. 오키나와현의 전 시·마을 의회가 검정 결과의 철회와 일본군의 관여를 나타내는 기술의 부활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현의회에서도 여야의 차이를 넘어 초당파적 철회 요구 결의가 두 번에 걸쳐 이뤄졌다. 그래도 정부가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자 오키나와에서 9월29일 현민 총궐기 집회가 열렸다. 대회는 11만6천명이 참가해 대성공을 거둔 채 끝났다. 한국에서는 대규모 시민집회가 드물지 않을지 모르지만, 일본에서 10만명이 넘는 시민집회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오키나와에서도 1995년 미군 병사의 소녀 성폭행 사건에 항의해 열린 현민대회에 8만5천명이 결집한 이후 최대 규모라고 한다. 오키나와 전투의 주민 피해에 대한 군의 책임, 국가의 책임을 은폐하려는 정부에 대한 분노가 오키나와 사람들 사이에 들끓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내가 지금 걱정하는 것은 검정 결과의 철회나 관련 기술의 부활에 반대하는 세력의 움직임이다. 이 세력에 속하는 여야 의원이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 그룹은 “역사에 정치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역사교과서의 기술도, 그것에 대한 문부성의 검정도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입장에서 이뤄져야 하며, 오키나와에서 항의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해서 정치적인 결정으로 검정 결과를 철회하거나 관련 기술을 부활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정치적인 역학관계로 역사가 얼마든지 바뀌어 기록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얼핏 간단히 반론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까탈스런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검정 결과의 철회나 기술의 부활에 반대하는 쪽은 문부성 검정이 마치 정치적으로 중립인 듯이 말하고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문부성의 검정은 그 자체가 역사학계의 통설이나 체험자들의 증언을 고의로 무시한 것이다. 전임 아베 신조 정권의 뜻에 따른 내용을 강요하는, 강한 정치성을 띠고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검정 결과의 철회와 원래 기술의 부활은 최초의 검정이 가지고 있던 정치적 왜곡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필요한 정치적 조처 이상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회나 지방의회의 결의, 시민집회의 힘이 정치를 움직여 교과서의 기술을 바꾸는 것을 무조건 인정해도 좋은가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그렇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예컨대 새역모의 교과서를 채택해야 한다는 결의를 국회나 지방의회가 차례로 진행하고, 그것을 지지하는 시민집회가 각지에서 다수의 참가자를 끌어모으는 사태를 상상해 보자. 그런 교과서 채택을 정치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6월 <아에프페>(AFP) 통신을 통해 발표된 ‘일본의 문화인 선언’에서는, 새역모에 가까운 역사관을 가진 일본인들이 역사인식에 대한 국가의 개입에 반대해 ‘금기 없는 역사연구의 자유’를 호소하고 있다. 현대의 역사수정주의가 까탈스러운 것은 정치적 중립과 언론의 자유, 학문의 자유의 옹호자인 듯한 얼굴을 하고 찾아오기 때문인 것이다.다카하시 데쓰야/도쿄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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