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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9.16 17:48 수정 : 2007.09.16 17:48

다카하시 데쓰야/도쿄대 교수·철학

세계의창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퇴진을 표명했다. 그 사임 방식은 너무 정도가 심하다. 그는 7월 말 참의원 선거에서 “나와 오자와(민주당 대표), 어느쪽이 총리에 어울리는지를 판단하는 선거”라고 큰소리를 치며 싸웠다. 그리고 역사적 참패를 당하자 “정책은 틀리지 않았다”고 강변하며 사임을 거부했다. 제2차 아베 내각을 발족했지만 농림수산상이 스캔들로 사임하고 또다시 궁지에 몰리자, 테러대책특별조처법의 연장에 “직을 걸고 임하겠다”고 선언했다. 국회 소신표명 연설에서도 ‘개혁 계속’에 불퇴전의 결의를 보여, 드디어 야당과 전면 대결을 하는 게 아닌가 하고 국민이 주시하는 순간 정권을 내던지고 말았다. 내정과 외교 면의 모든 약속은 휴짓조각 버리듯 했다. 언론 여론조사에서는 이런 사임 표명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70%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아베라는 정치가가 젊은 나이에 총리감으로 떠오른 것은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방북 뒤부터였다. 일본인 납치 사건과 관련해 대북 강경론을 상징하는 존재가 된 게 계기였다. 언론들이 ‘싸우는 정치가’ 등으로 그를 추켜세우고, 그 자신도 그것을 판매전략으로 삼았다. 그는 △‘전후체제로부터 탈피’를 내세우며 평화 헌법과 교육기본법 개정 추진 △역사 왜곡에 앞장서 온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 가까운 역사관 견지 △도쿄전범재판 비판 등으로 우파 세력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최고권력자의 지위에 오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베 총리의 전격 사임으로 가장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쪽은 일본의 우파 세력일지 모르겠다. 아베 총리의 용감한 슬로건이 실은 말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 싸우는 정치가 따위는 언론과 자신들이 만들어낸 허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아베 정권의 붕괴에 따라 헌법 개정 흐름도 멈춘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지만 전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참의원 선거에서 헌법 개정을 쟁점으로 삼으려 한 아베 총리의 계산은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그는 1년이 채 못 되는 짧은 재임 기간에 교육기본법을 개정하고 국민투표법을 통과시켜 평화헌법의 외곽을 때리는 데 성공했다. 이것들은 고이즈미 총리가 선물로 남겨둔 여당 절대다수라는 숫자의 힘으로 달성된 것이므로 실제로는 아베 총리의 성과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는 3년 뒤 국민투표법이 시행되면 국회의원 3분의 2의 찬성으로 개헌 발의가 가능하게 된다.

제1야당 민주당 안에는, 헌법 9조를 바꿔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인식하고 새 일본군이 국외에서 무력행사를 하는 길을 여는 데 자민당 의원 이상으로 열심인 의원도 많다. 아베 총리처럼 말뿐인 ‘애국’ 정치가를 총리로 밀어올린 현대 일본의 민족주의적 공기와 그것을 만들어낸 구조적 요인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포스트 아베가 아시아 외교 중시의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 같은 사람이 된다고 해도, 혹은 민주당이 정권을 잡아 오자와 이치로 대표가 총리가 된다고 해도, 그 부분이 변하지 않는 한 우경화 흐름이 간단히 멈춰지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걱정스러운 것은, 고이즈미 총리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해 격차 사회화가 진행된 일본의 ‘워킹 푸어’라는 경제적 약자들 사이에서 “현상을 단번에 바꿔준다면 전쟁도 상관없다”는 ‘전쟁 대망론’까지 나오는 현상이다.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쌓인 불만을 내셔널리즘이나 배외주의로 쏟아내는 듯한 회로를 차단하기 위해서도 글로벌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정치적 구상이 절실해졌다.

다카하시 데쓰야/도쿄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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