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8.19 17:53
수정 : 2007.08.1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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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그 해리슨/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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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창
다음달 9·11 동시테러 6주년이 되면, 미국 텔레비전들은 밤늦게까지 세계무역센터 테러 장면을 반복해 틀 것이다. 또다시 테러 위협을 저지할 방법을 토론할 것이다. 그러나 위험을 경고하는 해설자들 중 ‘9·11에 대한 대응방식이 테러의 도전을 증폭시키지 않았나’라는 중요한 질문에 딱 부러지게 답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 같다.
이에 대한 잠정적인 답은 분명히 ‘예스’다. 부시 행정부의 ‘테러와의 전쟁’ 개념은 알카에다 같은 드러난 테러단체에 대한 군사적 대응 개발에만 초점을 맞춰 왔다. 알카에다와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과 걸프 지역의 미군 주둔과 미국의 무조건적인 이스라엘 지지에 부분적으로 자극받았다는 의견은 잘 봐주면 이단이었고, 최악의 경우 반역으로 간주됐다.
이제 부시 행정부에 대한 일부 비판자들은 ‘테러와의 전쟁’의 개념적 결함과 이 개념이 정책에 미친 자멸적 영향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테러와의 전쟁’ 교리에 대한 가장 공공연한 도전은 2006년 9월 <포린어페어스>에 실린 논문이다. 이 논문은 9·11이 “아마도 되풀이될 수 없는 일회성 사건이고, 미국 내의 테러집단으로부터의 위협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영향력 있는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는 “‘테러와의 전쟁’은 의도와 반대로 자멸적 결과를 가져온 잘못된 수사”라고 주장한 책을 내놨다.
9·11 이후 이라크·가자·레바논·아프가니스탄·소말리아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무고한 민간인 수만명이 죽었다. 알카에다는 항복하지 않았다. 2006년 12월 영국 외무부는 “‘테러와의 전쟁’이 이슬람에 대한 전쟁을 의미함으로써, 서방국들이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전쟁을 얘기할 때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추종자들을 더 쉽게 찾게 하기 때문에 이 용어를 더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말레이시아의 압둘라 바다위 총리는 ‘테러와의 전쟁’이 이슬람에 대한 전쟁이라는 인식이 무슬림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고 강조했다. 57개국이 가입한 이슬람회의기구 의장인 그는 “근본 원인을 살피지 않고 테러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뿌리가 아니라 열매에 비료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샘물교회 신자들을 인질로 삼은 비열한 탈레반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한국인들은 뉴햄프셔경영대학의 마크 해럴드 교수가 발표한 아프간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연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6년 10월까지 탈레반의 은신처 추정지에 대한 미군의 폭격으로 민간인 4643명이 죽었다. 많은 공중폭격은 수천마일 떨어진 미국의 지휘본부에 의해 원격조종되고, 컴퓨터로 목표물이 설정된다. 고고도 폭격기들과 무인항공기들이 잘못된 첩보에 근거해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열리는 목표물에 폭탄을 쏟아부었다.
미국이 대통령으로 내세운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공중폭격을 줄이라고 거듭 호소해 왔다. 아프간인들의 생명을 값싸게 취급한다고 미군과 나토군 지휘관들을 비난하면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한국인들이 일차적으로 미국을 겨냥한 아프간인들의 분노의 대상이 된 일은 슬픈 일이다. 한국이 아프간에 파병했을 때부터 예견된 위험이다. 2004년 이라크에서의 김선일씨 살해사건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건이 노무현 정부와 차기 정부에 주는 교훈은 한-미 동맹의 범위는 전지구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냉전시기 한국은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이 소련·중국과 연계돼 있기 때문에 베트남전에 끌려들어가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한-미 동맹은 한반도에서조차 타당성을 급속히 상실하고 있다. 한-미 동맹이 다시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모험에 한국이 개입하는 핑계가 돼서는 안 된다.
셀리그 해리슨/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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