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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8.05 17:42 수정 : 2007.08.05 17:42

저우창이 중국월간<당대> 편집인

세계의창

관리가 청렴하다고 표창을 받으면 백성들은 처음부터 의심을 한다. 또 거짓을 꾸미는 게 아닐까? 관리가 타락했다고 처벌을 받으면 백성들은 대뜸 한탄부터 한다. 그 사람 참 운수 사납네.

요즘 중국에선 반부패 투쟁이 한창이지만 부패는 더욱 창궐하고 있다. 공산당이 제1의 영도자이고, 법원·검찰·규율검사위원회 등 부패를 감독하고 징벌해야 할 영도들이 모두 당의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영도들이 영도를 징계한다는 것은 허황한 일이다. 중국에서 부패는 이미 하나의 풍속이 됐다.

부패는 관료사회에서 제도화됐다. 관용차를 사적으로 쓰거나, 사택을 사적으로 점용하거나, 공금으로 의료비를 부담하는 것은 관리에 대한 ‘대우’가 됐다. 이것들은 위법도 아니고 위규도 아니다. 어떤 부패는 위법이고 위규이지만 인정상 ‘관례’로 치부된다. 관리가 기념식에 참석하고 돈봉투를 받는다거나, 설날 때 세뱃돈을 받는 것 따위는 인정에도 어긋나지 않아 ‘미풍양속’에 속한다.

관리들은 부패를 치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관리의 승진을 결정하는 것은 부패나 청렴 여부가 아니다. 청렴하다고 승진하는 게 아니고, 부패했다고 강등되는 것도 아니다. 만약 어떤 관리가 부패 때문에 옷을 벗었다면, 그것은 그의 부패가 심해서가 아니라 폭로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부 청렴한 관리들은 동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부패한 척을 해야 한다.

부패는 민간에서도 뿌리를 내렸다. 의사가 수술비와 처방비를 따로 받고, 교사가 촌지를 받는다. 기자들은 취재원한테서 뒷돈을 받는다. 마지막까지 도덕적이어야 할 이들이 부패 행렬에 가세했다는 것은 부패가 더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주차장 관리원도 돈을 받고 영수증을 떼주지 않는 세상 아닌가?

백성들은 부패한 관리가 가족이고 친구라면 미워하지 않는다. 그가 감옥에 갇힐 부모를 구해주거나, 친구에게 승진 기회를 먼저 주거나, 고속도로를 문 앞까지 닦아줄 텐데 왜 미워하겠는가? 그가 유일하게 손가락질을 받을 때는 부패로 거둔 성과를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나눠주지 않을 때이다.

이러니 청렴한 관리가 오히려 가족이나 친구들한테서 욕을 먹는 해괴한 일이 생긴다. 그들의 눈에 청렴한 관리는 무능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국장의 손자가 중점학교에서 공부하지 않고, 안전검사국장이 탄광의 주식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으며, 부동산관리국장이 집을 서너채 갖고 있지 않다면 무능한 게 아니고 무엇인가?

관리들이 부패의 구덩이에 빠지는 것은 부패로 인해 징계를 받을 확률이 아주 작기 때문이다. 부패는 정상이고 청렴은 비정상이다. 관리들이 부패 혐의로 징계를 받는 것은 복권에 당첨되는 것보다도 어렵다. 만약 그들이 징계를 받는다면 그야말로 재수가 없어서다. 이러니 탐관들은 감옥에 들어가도 면회객들이 줄을 잇는다. 누명을 쓰고 들어간 관리들만이 외롭게 살아간다.


백성들이 광의의 부패를 증오하면서도, 협의의 부패는 인정하는 탓에 관리들의 부패는 도덕적 속박을 잃게 됐다. 부패가 오히려 도덕적으로 비치는 경우도 생겨났다. 이는 현재 중국의 반부패 투쟁이 효과를 보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나 백성들이 모두 염치를 모르고 청렴에 대한 존경심을 잃은 것은 아니다. 부패가 풍속화한 것은 백성들이 타락해서가 아니라 잠시 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퇴근 길에 몸을 비틀어가며 지하철과 버스에 올라탈 때, 우리는 내심 질서있게 줄을 서기를 갈망한다. 질서있는 줄에 서게 되면 마음속에서 기쁨이 샘솟는다. 백성들의 반부패 갈망은 여전히 진심이고 강렬하다. 이것이야말로 중국 반부패 투쟁의 힘이다.

저우창이 중국월간<당대>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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