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7.08 18:21
수정 : 2007.07.08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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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시 데쓰야/도쿄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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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6월 하순 2주 가량 영국 런던의 버벡대학에 체류했다. 언론의 주요 관심은 토니 블레어 총리의 퇴진과 고든 브라운 새 총리의 취임에 집중됐다.
블레어 전 총리는 팔레스타인 ‘분열’로 점점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중동에 특사로 가기로 했는데, 그의 퇴진은 이라크 전쟁 정책의 실패 탓이었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내가 런던을 떠난 다음날인 29일 시내 중심부의 두 곳에서 폭발물이 발견되고 30일에는 글래스고 공항에 차가 돌진해 불탔다.
이번 런던 체류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브라이언 휴의 싸움 현장을 눈앞에서 본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어떨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일본에서 휴의 활동은 완전히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보도되지 않아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휴는 2001년 6월2일 런던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영국의 이라크 경제제재에 대한 항의 활동을 시작했다. 그 뒤에도 광장에 자리를 잡아놓고 6월 현재 6년 동안 영국의 이라크 정책을 ‘대량 학살’ ‘학살’이라고 비판하고, 블레어 총리를 ‘전쟁범죄인’이라고 고발해 왔다.
빅벤(거대시계탑),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둘러싸인 국회의사당은 런던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은 장소일 뿐아니라, 뭐라고 해도 ‘세계 최고의 의회 정치’국가인 영국 민주주의의 상징적 장소이기도 하다. 영국 정부는 법률까지 만들어 눈엣가시 같은 휴를 쫓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라크 전쟁 반대’의 상징적 존재가 돼, 자신을 지원하는 개인과 단체의 도움을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가 현장에 갔을 때 휴는 지원자로부터 받은 많은 선간판이나 ‘반전 상품’에 둘러싸인 채 모자로 얼굴을 감추고 의자에 누워 있었다. 런던 시민, 관광객이 끊이지 않은 장소에서 6년 동안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변함 없이 그는 이렇게 자신의 몸짓으로 전쟁에 대한 항의의 의사를 표시해 왔던 것이다. 옆의 땅바닥에는 동조하는 여성이 ‘수치’라는 큰 글자를 쓰고 있었다. 휴와 그 동조자들의 호소에는 이라크 민중, 특히 어린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이 영국의 수치라는 취지가 많은 담긴 듯했다.
휴가 반전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장소에서 수백 미터 정도 남쪽으로 내려가면 유명한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이 있다. 지금 이 미술관의 중앙을 가로지른 갤러리에는 현대미술 기수의 한 사람으로 알려진 마크 웰린저가 ‘스테이트 브리튼’이라는 전시를 열고 있다. 이 전시는 놀랍게도 브라이언 휴의 항의 활동에 사용된 간판이나 사진, 펼침막 등의 소재를 재구성한 것이다. 마치 휴의 싸움이 테이트 갤러리의 한가운데를 점거해 버린 듯이 보였다. 테이트 브리튼은 스테이트 브리튼(영국 국가)의 권력에 맨손으로 맞선 휴의 투쟁과 그것을 작품화한 웰린저의 예술 ‘스테이트 브리튼’을 개최함으로써 그들의 활동에 대해 어떤 의미에서 연대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영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으로서 영국이 반전 활동에 대해서도 여전히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는 알리바이 만들기를 떠맡고 나선 것일까?
“거짓이 만연하는 시대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은 혁명적 행위가 된다.”(조지 오웰 <1984년>) 현대 일본에서도 군사화와 치안의 강화가 진행됨에 따라 사상·언론·표현의 자유가 압박받는 듯이 느껴진다. 이달 말 참의원 선거가 있는데, 선거는 유권자가 국가에 대해 각각의 목소리로 ‘진실을 말하는 것’이 기대되는 소중한 기회다. 그 결과에 따라 앞으로 일본의 향방이 크게 좌우되리라.
다카하시 데쓰야/도쿄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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