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20 18:14
수정 : 2007.05.2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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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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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옛 일본군 ‘위안소’ 제도의 피해 여성들이 미국 의회에서 증언하고, 일본 정부에 사죄 등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미국 의회에서 심의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강제성은 없었다”는 자신의 발언에 비난이 쏟아지자 태도를 바꿔 ‘사과’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옛 일본군의 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아베의 오랜 지론으로, 그가 이것을 바꾸었다고는 생각할 수는 없다.
지난 3월 말 문부과학성은 2008년도부터 쓸 고교 교과서의 검정 결과를 발표했다. 역사교과서 대부분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기술했지만, 이번엔 문부과학성의 검정의견이 붙지 않았다. 그 이유는 어떤 교과서도 일본군의 관여 사실을 전혀 다루지 않기 때문이었다. 교과서 회사 쪽이 검정에서 문제화되는 것을 우려해서 기술을 자제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군의 책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아베 총리 등의 뜻에 따른 모양새가 됐다.
이번 검정에서 더 큰 문제는 오키나와 전투의 ‘집단 자결’에 관한 수정이었다. 일본군은 태평양전쟁 말기 오키나와를 ‘본토방위’를 위해 ‘버리는 돌’로 여겼고, 이 과정에서 자국민인 오키나와 주민이 간첩으로 의심받아 학살당하는 등 많은 피해를 봤다. (강요된) 집단자살도 그 하나다. 오키나와 주민이 포로가 되면 기밀사항이 누설될 것을 우려한 일본군은 미군에 대한 공포심을 주민에게 세뇌시킨 뒤 수류탄을 나눠줘 (극한상황에) 내몰리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부모 자식, 형제 등 육친끼리 서로 살해하고 집단으로 자살하는 비참한 사건이 오키나와 각 지역에서 일어났다.
이번 검정에 합격한 교과서의 집단자결에 관한 기술과 위안부에 관한 기술의 공통점은 일본군의 관여 사실이 삭제됐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 두 가지 비극의 주범이 일본군이라는 사실을 고등학생에게 가르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리라. 일본군의 강요를 언급하지 않은 채 집단 자결로만 가르치면, ‘자결’이라는 말의 어감 때문에 주민이 국가를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순국미담이 성립된다. 일본군이 죽음으로 내몬 오키나와 주민이 오히려 ‘야스쿠니의 정신’을 발휘해 일왕과 일본 국가를 위해 목숨을 버리고 끝까지 충성한 것으로 되어버리는 것이다.
1990년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기술을 교과서에서 삭제하려는 운동을 전개한 것은 자유주의사관연구회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사람들이었다. 집단 자결에 관한 검정의 배후에도 같은 사람들의 존재가 엿보인다. 자유주의사관연구회는 기관지 〈역사와 교육〉 2005년 4월호부터 6월호에 걸쳐 일본인을 ‘자학사관’에서 탈피시키는 운동의 일환으로 ‘오키나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자고 호소했다. 이에 따라 ‘집단 자결’이 군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는 기록은 당시 일본군 수비대장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소송까지 냈다. 문부과학성의 교과서 검정이라는 정부의 행위가 자유주의사관연구회의 움직임과 연결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금 일본의 내각총리는 그들과 같은 역사관을 갖고 있는 정치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그들은 일본군 위안부와 오키나와 집단 자결에서 군의 관여 사실을 지우려 할까? 일본 헌법 제9조를 개정해 자위대를 자위군이라는 이름의 일본군으로 바꿔, 미국과 일체화해서 무력행사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과거 일본군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는 모양새가 좋지 않다. 오키나와 전투에서처럼 자국민에게도 죽음을 강요했다고 해서는 더욱 모양새가 나쁘다. 군의 범죄를 역사에서 삭제하려고 하는 교과서 검정의 동향은 헌법개악의 움직임과 한몸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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