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3.18 18:04
수정 : 2007.03.1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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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그 해리슨/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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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2002년 11월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북한이 1년에 둘 이상의 무기급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건설 중이며, 이르면 2005년에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는 내용의 정보평가 보고서를 의회에 냈다. 그러나 지난해 조지 부시 행정부는 피터 고스 전 중앙정보국 국장의 말처럼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추구하고 있다”는 선으로 한발 물러났다.
2·13 비핵화 합의 이행을 추진하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정보부서들이 실제 그런 시설의 존재를 확신하지 못한다는 점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그는 최근 북한이 우라늄 농축 장비들을 수입한 증거가 있지만, 무기급 우라늄 농축에 필요한 수천개의 원심분리기를 만들려면 “실제 구입했다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이 (장비가) 필요하다”고 털어놨다.
존 볼턴 전 국무부 차관은 요즘 2002년의 중앙정보국 보고서를 되살리면서 2·13 합의를 망치려 하고 있다. 북한이 보고서 내용에 맞는 시설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볼턴 등은 비핵화 협상 중지를 주장할 것이다. 힐 차관보는 2002년 보고서에 의문을 달아 이런 전략에 맞설 필요가 있었다. 그는 나와 점심 자리에서 “볼턴의 몸은 국무부 밖에 있지만, 그의 손은 여전히 안에 있다”고 말했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최근 회고록에서, 칸 박사가 북한에 넘긴 원심분리기가 저준위 농축에도 불충분한 20여개라고 밝혔다. 설계도와 원심분리기 원형이 넘어갔지만, 북한은 충분한 원심분리기 제조에 필요한 복잡한 장비들을 추가로 구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무샤라프는 그 원본에는 발전된 형태의 원심분리기(P-2형)가 포함됐다고 확인했다. 따라서 2002년 북한이 이 원심분리기에 꼭 맞는 알루미늄관을 구매하려 한다는 증거가 나왔을 때 미국 중앙정보국이 화들짝 놀란 것이다. 그러나 힐 차관보가 강조한 대로, 확실한 것은 북한이 독일에서 알루미늄관 구입을 ‘시도’했다는 것과, 다른 곳에서 알루미늄관를 구했다는 ‘일부 징후’가 있다는 정도다.
일본은 원심분리기에 필요한 소량의 전기변류기를 구입하려는 북한의 기도를 수차례 막았다. 국제전략연구소(IISS)는 무기급 농축 우라늄 시설에는 변류기 ‘수백 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노력이 그처럼 실패한 것은 핵심부품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2002년 11월 중앙정보국 보고서의 근거는 분명치 않다. 어쨌든 제네바 합의를 폐기할 핑계를 찾던 볼턴 등 강경파들은 보고서를 이용해, 협상을 추구하려던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 같은 이들을 꼼짝못하게 만들고 북한의 정권교체를 추구했다. 정보의 실패일 뿐 아니라 이라크 경우처럼 정치적 목적으로 정보를 왜곡하고 과장한 것이다. 결과는 재앙적이었다. 지난해 핵실험을 가능하게 한 플루토늄의 축적을 북한이 재개한 것은 핵동결 파기 이후다. 최근 내가 당시 상황을 “애를 목욕물 밖으로 내던진 격”이라고 했더니, 1994년 제네바 합의 협상대표 로버트 갈루치는 “애를 목욕물 속에 빠뜨렸다”고 표현했다.
이제 북한이 장비 수입 의혹을 해명하기를 거부하면 2·13 합의는 깨질 수 있다. 북한 관리들이 말한 것처럼 장비를 민수용 저준위 농축 연구에 사용했다면 이를 사찰에 넘겨야 한다. 북한이 우라늄 개발 프로그램을 인정하더라도, 볼턴은 사찰을 받는 조건에서도 이를 허용하면 안 된다고 할 게 틀림없다. 그러나 핵확산금지조약에서는 민수용 저농축 우라늄 연료 제조는 허용된다. 북한은 이런 권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또 경수로가 끝내 제공되지 않으면 완전한 비핵화로 가지 않을 것 같다.
셀리그 해리슨/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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