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2.31 18:27
수정 : 2006.12.3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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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그 해리슨 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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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창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후신인 연방보안부(FSB) 전직 대령의 이상한 방사능 물질 중독은 세상의 시선을 끄는 단순한 미스터리가 아니다. 이것은 중요한 지정학적 사건이다. 러시아와 미국 사이의 불신은 그동안 커져 왔고, 이번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사건은 핵확산 금지 및 핵무기 축소, 중동 및 걸프 지역 평화문제에 이르기까지 주요 국제문제에 대한 러시아와 미국 간의 협력을 그 어느 때보다 어렵게 만들었다.
딕 체니 부통령은 5월 라트비아에서 “오늘날 러시아에서, 개혁의 반대자들은 지난 수년간의 성과를 뒤엎으려 하고 있다”고 말해,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환멸을 내보였다. 러시아인들은 우크라이나·그루지야·몰도바에서 민주주의를 향상시키라는 미국의 요구를 과거 러시아의 통제 아래 있던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인식한다.
그루지야를 둘러싼 긴장은 커지고 있다. 2003년 미국이 지원한 ‘장미 혁명’ 이후로, 그루지야 친미 정부는 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 가입을 추진했고, 미국과 경제·군사 지원 및 무역협정을 체결하고자 협상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는 그루지야와 미국의 유대 강화를 반러시아 정책으로 간주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08년에 물러나게 되지만, 과연 그렇게 할까? 그가 부총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나 국방장관 세르게이 이바노프처럼 똑같은 성향의 후계자를 심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대부분이다. 러시아 의회에서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친푸틴 정당은 통합러시아당이다. 크레믈(크렘린) 부비서실장은 얼추 ‘우리는 우리식으로 하겠다’로 번역될 수 있는 “자주적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통합러시아당이 “최소한 향후 15년간 제1당으로 유지돼야 한다”고 비밀 연설을 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다극화한 세계에서, 러시아가 미국의 힘에 맞서는 데 최우선 목표를 둔 중심 세력으로 스스로를 보고 있다는 점이 분명하다”고 전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드미트리 트레닌은 미국이 과거 친서방적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에 가졌던 모든 희망은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러시아는 서방의 궤도를 떠났고, 자유비행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시베리아를 거쳐 중국, 북한, 한국, 일본으로 가는 가스·석유 파이프라인 건설 계획은 아시아에서 경제적 영향력 확대를 바라는 러시아의 야심을 반영하고 있다.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위기를 다루는 데서도 러시아와 미국 간의 협력 조짐은 없다. 인류를 위해 가장 중요한 러시아-미국 간의 협력 분야는 핵무기 통제다. 핵무기 확산은 핵무기 보유국들이 먼저 핵무기를 줄이기 전에는 중단될 수 없다는 게 갈수록 더 분명해지고 있다. 현 핵무기 보유국들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향후 전쟁에서 사용할 것을 공개적으로 말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6조에 명시된 핵무기의 단계적 철수 목표에 대한 립서비스조차 더는 하지 않는 상황에서, 왜 다른 나라들이 핵무기를 선택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해야 하는가?
최근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가 지적한 대로, 미국은 “깡패 국가”뿐 아니라, 다른 핵무기 보유국에 대해서도 난공불락의 핵무기 지배력을 추구하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핵무기 경쟁을 부추기고, 핵확산금지조약에서 기대한 핵무기 감축 전망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러시아 정부 대변인이 수차례 되풀이했듯이, 러시아는 미국과의 군비경쟁을 감당할 수 없고, 미국이 준비만 된다면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Ⅰ, Ⅱ)으로 시작된 핵무기 감축 협상을 하기를 갈망하고 있다.
셀리그 해리슨 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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