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1.20 17:57
수정 : 2006.11.20 17:57
|
다카하시 데쓰야/도쿄대 교수·철학
|
세계의창
지금 일본에선 교육기본법 개정 문제가 중대한 현안이 돼 있다. 개정안은 중의원을 통과했다. 현행 교육기본법은 패전 뒤 “나라의 위기 때는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쳐라”고 가르친 천황제 국가주의 교육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교육의 자유와 자율을 확보하고, 아이들 개개인의 인간적 성장을 교육의 목적으로 정했다. 민주주의와 평화주의의 가치관에 입각했다.
정부 개정안은 교육을 ‘통치의 도구’로 삼으려 한다. 위정자의 정치적 의사가 교육을 지배하는 것이다. 이미 진행 중인 시장원리 도입과 히노마루·기미가요 강제 등 애국심 교육을 완전히 정당화하고, 한층 더 본격적으로 추진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이전부터 스스로 내건 ‘전후 체제로부터 탈피’의 기둥으로, 헌법과 교육기본법의 개정을 주장해왔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인정 등 군사력 사용의 해금에 의욕을 나타내는 총리가 ‘전쟁이 가능한 나라’ 일본의 받침대가 되는 교육을 만들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연구자 3명과 함께 3년 동안 교육기본법 ‘개악’ 저지를 위한 시민운동을 호소해, 대규모 집회를 일곱 차례 열었다. 일본교직원조합과 일본변호사연합회 등도 개악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 이 글에선 교육기본법 문제를 생각하는 가운데 부닥친 어떤 논점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교육기본법 제정에 큰 몫을 한 사람으로 도쿄대 총장이었던 정치철학자 난바라 시게루가 있다. 그는 태평양전쟁 때 학생들이 전장에 끌려가는 것을 막지 못한 데 대한 통한의 마음에서 일본의 민주화와 평화국가 전환의 의의를 국민에게 강하게 호소했다. 쇼와(히로히토) 천황이 전쟁의 도의적 책임을 지고 퇴위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특히 유명하다.
난바라는 국가주의 교육에서 인간주의 교육으로 전환시킨 교육기본법의 산파로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어떠한 반동의 폭풍우가 몰아치는 시대가 와도, 교육기본법의 정신을 근본적으로 고쳐쓸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리이며,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역사의 흐름을 가로막는 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난바라가 패전 뒤 다음과 같은 말도 했던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지금까지 천황에 귀속됐던 많은 것이 사라져도 일본 국가 권위의 최고의 표현,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천황제는 영구히 유지될 것이며, 유지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군민일체라는 일본 민족공동체 그 자체의 불변의 본질이다. 외지 이종족이 떨어져나가 순수 일본으로 돌아온 지금, 이것도 잃는다면 일본 민족의 역사적 개성과 정신의 독립은 소멸될 것이다.”
민주주의와 평화주의를 열렬히 지지한 난바라는 강고한 상징천황제 지지자였다. 이것이 모순은 아니다. 모순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헌법 그 자체에 내재하는 모순이다. 상징천황제는 “일본 국민의 총의에 바탕한다”고 평화헌법 제1조에 정해져 있으니까. 그가 상징천황제를 “외지 이종족이 떨어져나간 순수 일본”에 연결시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다. 조선·대만 등 식민지 사람들이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사건을, 난바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떨어져나갔다”고 표현했다. 재일 조선인들, 미군 통치가 계속된 오키나와의 사람들을 의식한 흔적도 없다. 식민지 지배와 해방의 여러 문제, 특히 일본의 책임에 관한 문제가 여기에는 빠져 있다.
전후 일본의 민주주의자들은 이런 난바라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런데 지금 일본은 난바라의 단계로부터도 후퇴하는 것은 아닌가. 확실히 ‘반동의 폭풍우가 몰아치는 시대’다.
다카하시 데쓰야/도쿄대 교수·철학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