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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03 20:15 수정 : 2006.06.09 16:25

Selig S. Harrison

세계의창

논리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미국은 아시아의 떠오르는 두 강대국 중국과 인도와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논리와 합리성이 국제문제를 규율하는 일은 드물다. 워싱턴과 베이징 사이에 커져가는 불신의 저류는 2주전 말썽많아던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백악관 방문 동안 극적으로 부각됐다. 이에 반해 부시 행정부는 미국 의회에 계류중인 민간핵협력 동의안을 시작으로, 뉴델리와의 새로운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거론하고 있다.

외교 의전상으로, 백악관 잔디에서 부시 대통령과 함께 있는 후진타오의 모습은 재앙이었다. 그 첫번째는 언론인 행세를 하며 한 파룬궁 활동가가 몇발자국 거리에서 후 주석의 면전에 고함치며 퍼부은 모욕이었다. 또 한 백악관 관리는 중국 국가를 소개할때 중화인민공화국을 중화민국(대만)으로 잘못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마지 못해 파룬궁 사건에 대해 사과했지만 백악관의 관료들은 뭐가 잘못됐는지조차 알려고 하지 않는다. 후진타오가 워싱턴을 떠난 뒤 4월22일 성난 중국 대사관 대표단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쪽과 만났다. 중국쪽은 베이징 정권에 반대하는 불법단체의 활동가가 후 주석에 접근하도록 허용된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려고 했다.

프레드릭 존스 국가안전보장회의 대변인이 불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파룬궁 신문인 <대기원시보>(The Epoch Times)는 그 기자들이 백악관 행사에 참여해왔고 직업윤리에 맞게 처신해온 합법적인 뉴스 단체”라고 설명했다. 존스는 “그들의 입장을 불허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백악관의 행사에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던 여의사 왕원이가 갑자기 후 주석에 대한 취재를 한다고 하루동안의 출입을 신청한 것은 의심을 살 여지가 충분하다.

중국 관리들은 후 주석의 방문 전에 항의사태 가능성이 있다고 백악관에 경고했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보안조처도 취해지지 않았다. 5년전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말타를 방문했을 때 왕원이가 회담장에서 소란을 피웠다는 사실을 백악관은 몰랐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단지 무능력과 관료주의적 태만이 이런 의전적 재앙을 불러일으켰을까? 그렇다면 중국에게는 자국의 지도자 방문이 푸대접받은 모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우연이 아니라는 몇 가지 의구심이 든다.

백악관 참모 중에는 중국을 미국의 불가피한 위협이라고 여기는 강경파 고위직 인사들이 있다. 국가안보회의의 부국장 잭 크라우치가 그 중 한명이며, 존 루드 비확산 담당국장, 데이비드 애딩턴 부통령 비서실장이 나머지 두 명이다. ‘악의 축’이라는 유명한 견해를 감안하면, 부적적함과 게으름 이상의 것이 개입되어 있다고 중국 쪽이 의심한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뉴욕타임스> 컬럼니스트인 모린 다우드는 후진타오이 떠난 날 자신이 컬럼을 백악관 잔디에서 일어난 일을 고소한듯 바라보는 체니와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가상 대화로 썼다. 다우드의 그 풍자에서 럼스펠드는 “그 빨갱이들은 자신들에게 뭔 일이 일어났는지 알 것”이라며 “그 빨갱이(후진타오)는 여기에 와서, 우리가 이류국가이며 수천억달러나 되는 우리 국가부채때문에 우리를 언제라도 호출해 자기 앞에 머리를 조아릴 것 처럼 거들먹거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미국이 중국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은 중국과 미국 양쪽이 경제적으로 연계돼, 이란, 북한, 위안화 재평가 등 정치적 논쟁꺼리들로 정면대결하는 것을 회피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자국의 재무부 채권을 국가 채권을 계속 사주길 원하고, 중국 역시 미국 시장과 기술에 계속 접근하고자 한다.

그러나 불신의 저류들은 점점 명백해지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후 주석의 방문을 국빈 방문으로 접대하지 않았고, 1997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장쩌민 전 주석에게 베풀었던 백악관 공식만찬 대신에 실무오찬으로 대체해, 가뜩이나 밝지않았던 후 주석의 방문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뉴욕타임스> 백악관 출입기자 데이비드 생거는 이번 방문은 명백한 긴장과 거친 몸짓으로 범벅된 엉망진창이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대중관계 미래를 둘러싼 불확실한 분위기는 미국-인도 관계의 고무되는 분위기와 명백히 대조된다. 논란이 되는 민간핵협력 협정의 통과 전망이 여전히 불확실하나, 의회가 그 조약을 거부하거나 비준을 연기한다고 해도 미국의 대인도관계는 계속 증진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종국적으로는 중국이 우위에 설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하며, 베이징을 미국 영향력에 대한 위협이라고 본다. 이와 대조적으로, 남아시아에서 인도와 미국은 지정학적인 갈등이 없다. 미국은 인도 해군을 중국 해군의 팽창에 대한 잠재적 상쇄력이자, 걸프 지역의 오일수송선 해로를 방위하는 미 해군의 동반자로 본다. 워싱턴과 뉴델리 모두 걸프만,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에서의 급진 이슬람세력에 반대하고 있다. 양쪽 모두 민주주의적 가치를 공유하며, 시장경제 형태로 경제적 일치성을 가지고 있을뿐만 아니라 영어를 통해 언어적으로도 폭넓은 친화성을 가지고 있다.


전임자와는 달리 부시 행정부는 처음부터 인도의 사실상 핵무기 지위를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부시가 당선되기 전인 2000년 1월 <포린어페어스>에 미국은 인도를 파키스탄과 연관해 보기보다는 중국과 연관해 봐야 한다며, 아시아 지역의 힘의 균형에서 인도의 핵무기가 중국 핵무기에 대한 균형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명백히 시사했다. 이러한 접근이 논란이 많았던 민간핵협력협정 협상 결정에 뒤에 놓여있다. 이 협정은 공식적으로는 인도의 민간 핵시설과 군사 핵시설을 분리해, 사실상 핵무기국가로 인도를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인도는 핵확산금지조약이 발효된지 6년 뒤인 1974년에 첫번째 핵실험을 실시해, 이 조약상으로는 핵무기 국가로 지정되지 않았다. 중국은 1964년에 실험을 했고 간신히 핵클럽에 들어갔다.

인도는 10억이 넘는 인구 증가에 따라 배가하는 전력 수요에 맞추려고 에너지 프로그램에서 핵 부분의 확대를 필사적으로 필요로 한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이 협정이 핵확산금지조약 체결을 거부하고 핵무기 개발을 계속한 ‘나쁜 행동’에 대한 인도에 대한 보상책이라고 불평한다. 옹호자들은 핵확산금지조약이 미국같은 적법한 핵무기 국가가 핵확산금지조약 비체결국가들에게 민간핵기술을 팔아도 되는지 애매하다는 점을 든다. 1978년에 제정된 한 미국법은 이같은 판매를 금지하는 핵확산금지조약을 어겨, 현재 의회는 이 법을 개정하려 한다. 핵확산금지조약이 애매모호해,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도 영국, 프랑스, 러시아 정부처럼 미-인 민간핵협력협정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의회에서 그 협정의 운명은 불확실한채로 남아있다.

셀리그 해리슨 /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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