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협력원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 이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재협상하겠다고 공약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조정하고 주한미군 주둔비도 증액시키겠다고 예고했다. 조만간 미국이 이런 문제들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해 올 텐데, 그때도 “기존 외교 합의 이행은 국가신용 문제”라면서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거절할 자신이 있는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재작년 말 위안부 합의와 작년 7월 사드 합의에 대한 파기·재협상 요구 여론이 높아졌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로는 국민 60%가 위안부 합의 파기·재협상을 요구한다. 사드 배치에 대해서도 국민 61%가 반대하거나 차기 정부로 넘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 외교안보 당국은 “외교 합의 이행은 국가신용 문제”라면서 여론에 맞서고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0일 국무회의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라고 지시했다. 반면 이 문제에 대한 야당과 대선 예비후보들의 입장은 ‘존중’에서 ‘무효’ ‘재협상’까지 다양하다. 특히 사드에 대해서는 ‘종북 프레임’ 공포 때문인지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예비후보들도 있다. 민주국가에서 60% 이상의 국민이 요구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는 없다. 실제로 위안부 문제와 사드 문제가 대선 이슈로 될 가능성도 있다. 논란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미리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도대체 외교 합의는 왜 하는 건가, 모든 국가들이 국가신용 때문에 외교 합의를 꼼짝 못하고 원안대로 이행했는가? 두 가지에 대해 이론적으로 따져보고, 선례도 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국가들이 외교 합의는 왜 하는가. 국가 간 이해가 상충하거나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을 때 서로 동의할 수 있는 절충점을 찾기 위해서 협상하고 그 결과를 조약, 협약, 협정, 합의 등 이름으로 발표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름이야 어떻든 내용상 국가 안위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클 때는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게 돼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와 사드 문제에 대해서 밀실·졸속 협상을 해놓고 실무절차 차원의 합의라고 얼버무리면서 국회 비준 동의도 안 받고 밀어붙였다. 국민 자존심과 국가이익 차원에서 이런 잘못된 외교 행위는 뒤늦게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차기 정부가 국회의 비준 동의 절차도 밟고, 부결되면 파기 또는 재협상해야 한다. 둘째, 지금까지 국가 간 외교 합의는 모두 원안대로 이행됐던가? 아니다. 북한과 소련이 체결한 ‘조-소 동맹조약’(1961.7)은 1996년 9월 파기됐다. 재협상 결과 일반적인 우호조약으로 갱신(2000.2)됐다. 국제정세 변화로 러시아의 국가이익이 달라졌기 때문에 조약을 파기하고 재협상한 것이다. 미국이 파기한 것도 있다. 1차 북핵위기 때 클린턴 정부가 북한과 체결한 ‘미-북 제네바 기본합의’(1994.10)는 부시 정부가 파기(2003.1)했다. 정권교체의 결과였다. 2차 북핵위기 해결책으로 미-중-러-일-남-북, 6국이 합의한 ‘9·19 공동성명’(2005.9.19)은 발표 다음날 사실상 파기됐다. 부시 정부 강경파들이 장악한 재무부가 국무부 협상파와는 별개로 대북 경제제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국도 기존 외교 합의를 재협상한 적이 있다. 2007년 노무현 정부는 2012년 4월에 전시작전권을 환수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재협상해서 2015년 말로 미루더니 박근혜 정부는 무기한으로 미뤄 놨다. 이 또한 정권교체의 결과였다. 이렇게 ‘외교 합의’는 국가이익이나 국내 정치 상황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파기하고 재협상할 수 있는 것이다. 국내 정치 지형이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신용’ 운운하면서 “기존 외교 합의를 흔들지 말라”, “언급을 자제하라”는 건 시대착오적 행위다. 지난 20일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 이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재협상하겠다고 공약했다. 미 재정 때문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도 조정하고 주한미군 주둔비도 증액시키겠다고 예고했다. 조만간 미국이 이런 문제들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해 올 텐데, 그때도 외교안보팀은 그동안 국민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기존 외교 합의 이행은 국가신용 문제”라면서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거절할 자신이 있는가? 한·미 에프티에이와 미군 주둔비 재협상 요구를 거절할 수 없을 바에는 대책을 준비해야 할 것 아닌가. 그렇다면 동시에 위안부와 사드 문제 재협상 대책도 마련하는 게 좋다. 이런 문제들이 금년 상반기 중 출범할 차기 정부의 첫 외교안보 과제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권주자들은 이 문제들에 대한 입장을 확립하고 대책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제대로 알아야 참모진을 지휘할 수 있다.
칼럼 |
[정세현 칼럼] 외교 합의, 얼마든지 재협상할 수 있다 |
평화협력원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 이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재협상하겠다고 공약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조정하고 주한미군 주둔비도 증액시키겠다고 예고했다. 조만간 미국이 이런 문제들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해 올 텐데, 그때도 “기존 외교 합의 이행은 국가신용 문제”라면서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거절할 자신이 있는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재작년 말 위안부 합의와 작년 7월 사드 합의에 대한 파기·재협상 요구 여론이 높아졌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로는 국민 60%가 위안부 합의 파기·재협상을 요구한다. 사드 배치에 대해서도 국민 61%가 반대하거나 차기 정부로 넘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 외교안보 당국은 “외교 합의 이행은 국가신용 문제”라면서 여론에 맞서고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0일 국무회의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라고 지시했다. 반면 이 문제에 대한 야당과 대선 예비후보들의 입장은 ‘존중’에서 ‘무효’ ‘재협상’까지 다양하다. 특히 사드에 대해서는 ‘종북 프레임’ 공포 때문인지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예비후보들도 있다. 민주국가에서 60% 이상의 국민이 요구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는 없다. 실제로 위안부 문제와 사드 문제가 대선 이슈로 될 가능성도 있다. 논란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미리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도대체 외교 합의는 왜 하는 건가, 모든 국가들이 국가신용 때문에 외교 합의를 꼼짝 못하고 원안대로 이행했는가? 두 가지에 대해 이론적으로 따져보고, 선례도 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국가들이 외교 합의는 왜 하는가. 국가 간 이해가 상충하거나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을 때 서로 동의할 수 있는 절충점을 찾기 위해서 협상하고 그 결과를 조약, 협약, 협정, 합의 등 이름으로 발표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름이야 어떻든 내용상 국가 안위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클 때는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게 돼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와 사드 문제에 대해서 밀실·졸속 협상을 해놓고 실무절차 차원의 합의라고 얼버무리면서 국회 비준 동의도 안 받고 밀어붙였다. 국민 자존심과 국가이익 차원에서 이런 잘못된 외교 행위는 뒤늦게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차기 정부가 국회의 비준 동의 절차도 밟고, 부결되면 파기 또는 재협상해야 한다. 둘째, 지금까지 국가 간 외교 합의는 모두 원안대로 이행됐던가? 아니다. 북한과 소련이 체결한 ‘조-소 동맹조약’(1961.7)은 1996년 9월 파기됐다. 재협상 결과 일반적인 우호조약으로 갱신(2000.2)됐다. 국제정세 변화로 러시아의 국가이익이 달라졌기 때문에 조약을 파기하고 재협상한 것이다. 미국이 파기한 것도 있다. 1차 북핵위기 때 클린턴 정부가 북한과 체결한 ‘미-북 제네바 기본합의’(1994.10)는 부시 정부가 파기(2003.1)했다. 정권교체의 결과였다. 2차 북핵위기 해결책으로 미-중-러-일-남-북, 6국이 합의한 ‘9·19 공동성명’(2005.9.19)은 발표 다음날 사실상 파기됐다. 부시 정부 강경파들이 장악한 재무부가 국무부 협상파와는 별개로 대북 경제제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국도 기존 외교 합의를 재협상한 적이 있다. 2007년 노무현 정부는 2012년 4월에 전시작전권을 환수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재협상해서 2015년 말로 미루더니 박근혜 정부는 무기한으로 미뤄 놨다. 이 또한 정권교체의 결과였다. 이렇게 ‘외교 합의’는 국가이익이나 국내 정치 상황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파기하고 재협상할 수 있는 것이다. 국내 정치 지형이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신용’ 운운하면서 “기존 외교 합의를 흔들지 말라”, “언급을 자제하라”는 건 시대착오적 행위다. 지난 20일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 이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재협상하겠다고 공약했다. 미 재정 때문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도 조정하고 주한미군 주둔비도 증액시키겠다고 예고했다. 조만간 미국이 이런 문제들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해 올 텐데, 그때도 외교안보팀은 그동안 국민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기존 외교 합의 이행은 국가신용 문제”라면서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거절할 자신이 있는가? 한·미 에프티에이와 미군 주둔비 재협상 요구를 거절할 수 없을 바에는 대책을 준비해야 할 것 아닌가. 그렇다면 동시에 위안부와 사드 문제 재협상 대책도 마련하는 게 좋다. 이런 문제들이 금년 상반기 중 출범할 차기 정부의 첫 외교안보 과제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권주자들은 이 문제들에 대한 입장을 확립하고 대책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제대로 알아야 참모진을 지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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