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협력원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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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협력원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유럽에서는 러시아가, 동북아에서는 중국이 미국의 힘을 빼려 할 것이다. 그리고 중·러가 손을 잡을 것이다. 문제는 동북아에서 미·일과 중·러가 힘겨루기를 할 때 그 주 무대는 한반도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미국의 동북아 패권을 잠식하기 위해 중·러가 우리에게 다방면으로 압력을 가하고 선택을 강요할 때 우리의 대처가 쉽지 않을 것이다. 7월8일 ‘사드’의 한국 배치가 전격 결정됐다. 그동안 미국 쪽이 치고 빠지는 식으로 사드 배치 군불을 땔 때마다 우리 정부는 “요청도 없었고, 협의도 안 하고, 결정된 것도 없다”고 설명해왔다. 그러더니 금년 2월 셋째 주부터 한·미 실무단이 협의를 시작했다. 그 후 4개월여 만에 청와대가 국방부를 제치고 직접 사드 배치 방침을 결정했다. 그동안 한국 내 사드 배치 계획에 대해서 중국과 러시아는 강력 반대해왔다. 한·미가 북핵·미사일 핑계를 대지만 미국이 괌보다 가까운 곳에서 자국을 감시하고 위협하기 위해서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려 한다는 것이 반대 이유였다. 그랬던 만큼 앞으로 중·러는 사드 배치 관련해서 견제성 또는 보복성 조치를 취할 것이다. 특히 중국이 우리에게 가할 경제적 불이익은 적지 않을 것이다. 한-중 교역량은 한-미·한-일 교역량을 합친 것보다 클 뿐 아니라 우리가 무역흑자를 누릴 수 있는 건 대중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중국의 한국 투자 액수도 만만치 않다. 사드 배치 얘기가 나온 초기부터 전경련이 강력 반대하고 나선 것은 그것이 몰고 올 경제적 불이익 때문이다. 러시아는 극동지역 미사일로 사드 기지를 공격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중국에서도 비슷한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실제 그렇게까지 하기는 쉽지 않지만, 중·러가 한·미·일과 힘겨루기를 하려 들면 한반도 군사긴장은 높아지고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우리 국민경제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북한도 군사 위협을 계속할 것이다. 사드 배치 결정 발표 다음날 북한은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발사 시험을 했다. 사드 레이더의 사각지대에서 미국의 뒤통수를 공격할 수 있다는 시위를 한 것이다. 북한은 앞으로도 이런 종류의 위협을 계속할 것이다. 중국의 경제보복, 중·러·북의 군사행동으로 한반도 긴장은 계속 높아질 것이다. 그러면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걸 모르고 사드 배치를 결정했을까? ‘선거의 여왕’다운 셈법으로 사드 배치를 결정하지 않았나 싶다. 지금 결정하면 시간적으로 내년 말 사드 배치가 끝나서 운용될 거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시점에 치러지는 대선에서 야권이 안보 이슈를 제기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보수 성향 대선 후보에게 유리한 판을 미리 짜주는 계산된 행위였다고 본다. 따라서 야당으로서는 사드 배치가 몰고 올 악영향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면서 ‘사드 배치 반대 국회결의안’이라도 통과시키고, 국민 편에서 국가적 불행을 사전에 예방해 줘야 한다. 그런데 사드 못지않게 우리 외교·안보를 어렵게 만들 일이 또 하나 있다. 6·23 영국 국민투표에서 결정된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그 파급효과는 우선 경제 부문에서 일어나겠지만, 머지않아 유럽의 외교·안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리고 그 파급효과는 한반도에도 밀려올 것이다. 유럽연합은 북대서양조약기구와 함께 탈냉전 후 유럽에서 미국의 패권이 흔들림 없이 유지되도록 버텨주는 구실을 했다. 그리고 그 중심축은 영국이었다. 미국이 유럽 이외의 타 지역에서 국제정치적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도와준 나라가 영국이었기 때문에 브렉시트는 유럽에서 미국의 주도권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대외정책 최우선 순위인 유럽에서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현재 추진 중인 ‘아시아 재균형’전략(실은 중국견제 전략)의 비중을 낮춰가면서 거기서 생기는 여유분의 힘을 다시 유럽으로 돌리려 할 것이다. 이럴 경우 유럽에서는 러시아가, 동북아에서는 중국이 미국의 힘을 빼려 할 것이다. 그리고 중·러가 손을 잡을 것이다. 문제는 동북아에서 미·일과 중·러가 힘겨루기를 할 때 그 주 무대는 한반도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미국의 동북아 패권을 잠식하기 위해 중·러가 우리에게 다방면으로 압력을 가하고 선택을 강요할 때 우리의 대처가 쉽지 않을 것이다. 금년 말 미국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차기 미국 정부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증액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브렉시트 때문에 유럽 쪽으로 힘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동북아 패권 유지의 최대 협조자인 일본에 한·미·일 동맹의 준(準)맹주 역할을 맡기려 할 가능성마저 있다. 그때 우리 외교에는, 국가이익 아닌 국민정서 때문에, 색다른 어려움이 제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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