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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15 19:46 수정 : 2016.05.15 19:46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열린 북한 노동당 7차 대회에서 김정은 제1비서가 ‘조선노동당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이로써 김정은 체제가 공식적으로 출범한 셈이다. 그가 3시간 넘게 읽은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는 앞으로 김정은 체제 대내외정책의 토대가 될 것이다. ‘총화보고’는 매년 1월1일 발표되는 신년사보다 훨씬 격이 높은 당과 국가의 운영지침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도 이 문건을 주목해야 한다.

통일문제에 대해서 김정은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수령님들께서 밝혀주신… 조국통일 3대 헌장을 일관하게 틀어쥐고 통일의 앞길을 열어나가야 합니다… 북과 남이 합의하고 온 세상에 선포한 조국통일 3대 원칙과 6·15 공동선언, 10·4 선언은 북남관계 발전과 조국통일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일관하게 틀어쥐고 나가야 할 민족공동의 대강이며… 일방적으로 부정하거나 외면할 권리가 없습니다.” 앞에서는 김일성 시대에 통일전선전략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정한 조국통일 3대 헌장을 기준으로 통일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뒤에서는 남북 합의를 일방적으로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추자는 건지 혼란스럽다.

북한이 말하는 조국통일 3대 헌장은 조국통일 3대 원칙,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 방안,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이다.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 3대 원칙은, 북한이 붙인 이름이기는 하지만, 남북 고위당국자간 합의인 7·4 공동성명의 일부라는 점에서 일방적인 것만은 아니다.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 방안은 6차 당대회(1980년 10월10일) 중앙위원회 총화보고에서 김일성 총비서가 제시한 통일방안이다. 앞에서는 남과 북의 사상과 제도 차이를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원칙에 따라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를 만들자고 했다. 그러나 연설의 끝부분에서는 연방 실현의 전제조건들을 제시했다. 주한미군 철수, 남한의 반공정책 폐기, 남한 내 민주인사 집권 등 전제조건들은 앞의 원칙이나 방법과는 크게 배치되는 것들이었다. 그렇기에 ‘사실상 대상이 없는 제안’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도 김일성 주석의 지침을 최고인민회의(1993년 4월7일)가 채택한 것이다. 시기적으로,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북핵문제 때문에 남북관계를 둘러싼 남남갈등이 막 시작된 시점에 제시됐다는 점에서 ‘남한 국론 분열용’이라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3대 헌장 중 1972년의 조국통일 3대 원칙을 제외한 두 가지는 김일성 주석의 일방적 제안이었고, ‘남조선 혁명역량 강화’ 차원의 통일전선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남북이 공동으로 존중하고 따라야 할 통일원칙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김정은 위원장은 총화보고에서 6·15와 10·4는 언급하면서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합의인 남북기본합의서(1992년 2월)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삐라와 확성기방송 문제를 협의할 남북군사회담을 당장 열자는 제안을 했다. 핵·미사일 문제로 긴장이 극도로 고조된 상황에서 현실감각이 결여된 제안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상을 종합할 때, 이번 7차 당대회를 계기로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 시대 대남정책은 김정일 시대 대남정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김일성 시대 대남정책으로 회귀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정세현 평화협력원 이사장, 전 통일부 장관
이런 상황에서는 북한이 자기 입장을 정리해서 밝혀야 한다. 과거 북한이 일방적으로 내놓은 주장이나 지침을 앞으로 남한도 따르라고 고집할 것인지, 남북기본합의서-6·15공동선언-10·4정상선언 같은 남북 당국간 합의의 연장선상에서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자는 것인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삐라나 확성기방송 문제를 풀기 위해서도 어느 걸 기준으로 삼을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상대가 있는 남북관계에서 헷갈리는 신호를 보내면 안 된다. 이건 현 박근혜 정부를 포함해 남한의 차기 정부를 의식해서라도 북한이 유의해야 할 점이다.

정세현 평화협력원 이사장,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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