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3.20 22:33
수정 : 2016.03.20 22:33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탄급 로켓 발사에 대한 제재 결의안이 3월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과했다. 그런데 김정은은 바로 그다음 날부터 핵탄두와 장거리 로켓 첨단부분 사진까지 공개하면서 연일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과시했다. “실전배치한 핵탄두들을 임의의 순간에 쏴버릴 수 있게 항시적으로 준비해야 한다(4일). 핵탄을 경량화해 탄도로켓에 맞게 표준화, 규격화를 실현했다(9일). 새로 제작한 핵탄두의 위력 판정을 위한 핵폭발 시험과 핵공격 능력을 높이기 위한 시험들을 계속해야 한다(11일). 핵공격 능력의 믿음성을 높이기 위해 빠른 시일 안에 핵탄두 폭발시험과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탄도로켓 시험발사를 단행할 것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도 확보했다(15일).”
조만간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를 또 할 기세다. 실제로 발언 이후 중·단거리 미사일 3~4기를 동해상으로 발사도 했다. 북한이 이렇게 핵·미사일 능력을 과시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대외적으로 대북 제재와 한·미연합훈련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대내적으로 36년 만의 당대회를 앞두고 핵강국의 위상을 부각시켜 김정은 지지도를 높이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7~8년 전에 비해 현저하게 증강된 것이 확인됐다는 점이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까지 개발했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스커드나 노동 등 중·단거리 미사일에 핵탄두가 장착되어 실전배치됐을 가능성은 있다. 핵실험을 거듭하면 탄두가 소형화·경량화되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장거리 미사일이 문제지만 우리한테는 핵탄두가 장착된 중·단거리 미사일이 문제다.
그러면 일이 이렇게까지 된 까닭은 무엇인가? 북핵 문제의 역사를 보면, 북한은 대화를 통해서 관리를 할 때만 사고를 안 치거나 덜 쳤다. 그런 점에서 1차적 책임은 ‘비핵·개방·3000’ 정책을 추진한 이명박 정부에 있다. 회담을 통해 끌어내야 할 북한의 비핵화를 남북관계의 전제조건으로 내걸면서 6자회담 개최도 반대했기 때문이다. 6자회담은 이명박 정부 1년차인 2008년 12월 이후 한 번도 열리지 못했고, 그동안 북한은 맘 놓고 핵능력을 강화시켰다. 박근혜 정부도 대결적 대북정책으로 남북관계를 틀어막았고, 오바마 정부가 2010년부터 추진해온 ‘전략적 인내’라는 해괴한 북핵정책에 편승하여 ‘이루어질 수 없는 꿈’ 같은 북한의 선핵포기만 요구했다.
이런 연유로 6자회담이 7~8년 이상 열리지 않는 동안 북한은 세 차례에 걸쳐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세트로 묶어 실시했다.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BDA 계좌 동결)에 대한 반격 차원에서 1차 핵실험(2006. 10.9)을 한 뒤 북한은 이명박 정부에서 두 번(2009. 5.25, 2013. 2.12), 박근혜 정부에서 한 번(2016. 1.6) 핵실험을 했다. 3차례의 북핵실험이 모두 6자회담이 열리지 않은 시기에 이뤄졌다는 점에 비춰볼 때, 대북 제재만 계속되고 6자회담 재개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으면 북한은 조만간 5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를 할 것 같다. 박근혜 정부로서는 기필코 막아야 할 일 아닌가?
작년 말 미·북이 비핵화와 평화협정 문제를 비공개로 협의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과거에도 미국은 별도로 북한과 만나 협상의 틀을 짠 선례가 있다. 미국이 대북제재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비핵화와 평화협정 일괄협상’을 제안한 중국과 입을 맞췄다는 건 알려진 비밀이다. 따라서 제재가 한고비를 넘기면 미국도 5차 6차 북핵실험을 사전에 막기 위해 중국과 손잡고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어낼 가능성이 있다. 그 시간은 북한의 당대회 때문에 의외로 빨리 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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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평화협력원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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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면 박 대통령은 효과도 없는 대북 강경발언을 줄이는 대신 6자회담 재개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미·중이 북한과 물밑 조율을 통해 평화협정 논의가 기정사실화되는 것까지 내다보고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래야 임기 중에 5차 6차 북핵실험을 목도하는 수치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정세현 평화협력원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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