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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2.21 18:58 수정 : 2016.02.21 21:11

지난 10일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중단을 선포하자 북한도 바로 개성공단을 군사통제구역으로 선포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민주정부 10년 대북정책 승계를 표방하는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이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에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개성공단을 가동시킨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 고위직에 있던 분들이 “개성공단 중단은 필연적이다. 중단을 비난만 할 수는 없다”, “개성공단은 폐쇄할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자기가 어느 당에 입당했는지, 자기 정체성이 뭔지 모르는 것 같다.

‘개성공단 개발로 휴전선 사실상 북상’. 이건 <신동아> 2004년 1월호 기사(▶바로가기) 제목이다. 기사 요지는 이렇다. “북한의 개성 남단과 휴전선 사이 2000만평에 남북 합작 공단을 개발한다. 6·25 때 남침 루트였던 이곳에 주둔하고 있는 6사단과 64사단, 용산을 겨냥한 장사정포 부대인 62포병여단 등이 개성 북쪽으로 올라간다. 결과적으로 휴전선이 10~15㎞ 사실상 북상하게 됐다.”

보수언론마저 안보 기여를 인정했고, 유엔 대북제재에 위배된다고 지적받지 않았던 개성공단이 지난 10일 갑자기 핵·미사일 자금원이라는 누명을 쓰고 폐쇄됐다. 그 결과 12년 동안 사실상 북상했던 서부전선 휴전선은 다시 10~15㎞ 남하했다.

개성공단은 장기적 안목으로 통일까지 내다본 전략사업이다. 성공 선례도 있고 이론적 근거도 있다. 개성공단은 유럽연합의 단초를 연 ‘독-불 석탄철강공동체’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적대성 높은 국경지대 경제협력으로 독-불 평화는 물론 유럽 평화까지 일구어낸 성공사례를 한반도에 적용한 것이다.

기능주의 통합이론을 빌리면 개성공단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군사지역에 공단을 만들어 남의 자본과 기술, 북의 노동력과 땅이 결합하는 경제협력을 해나가면 우리 기업도 이득을 보지만 개성 주변 지역경제도 좋아질 것이다. 그리되면 그걸 유지하기 위해서 북한의 군사적 긴장 조성 행위도 줄어들 것이다. 경제협력이 긴장완화와 평화협력을 가능케 하고, 그런 현상은 개성에서 다른 접경지역으로 퍼져 나갈 것(spill over)이다. 동서유럽 간 경제교류협력으로 시작해서 미-소 전략무기 감축까지 가능케 한 ‘헬싱키 프로세스’가 그 ‘롤모델’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갑자기 고도화된 건 개성공단 때문이 아니라 2008년 이후 6자회담이 한 번도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6자회담이 열리는 동안 북한은 핵·미사일 활동을 중지하거나 최소화했다. 그러나 회담이 열리지 않은 지난 8년 동안 북한은 핵실험을 세 번이나 더 했고, 미사일도 이젠 미국 동부까지 도달할 수 있는 사거리를 확보했다. 그런데 그 책임을 난데없이 개성공단에다 씌운 건 정책결정의 핵심인 인과관계 분석이 잘못된 일이다. 이건 북한 돈의 흐름에 대한 정보를 우리보다 훨씬 많이 가지고 있는 미국도 안 하던 일이다.

개성공단이 가동되는 동안 휴전선은 사실상 북상했고, 군사긴장은 현저하게 완화됐었다.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공격은 개성공단 때문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 대북 적대정책의 결과다. 큰 틀에서 볼 때 개성공단은 한반도 ‘평화의 끌개’ 노릇을 했고, 남북 사회·문화적 동질성도 제법 키웠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있다. 개성공단이 3~4년만 더 지속됐더라면 적어도 개성과 황해도 정도는 사회·문화적으로 많이 변했을 것이다. 그게 ‘경제통일’, ‘사실상의 통일’의 시작이다. 그런데 전기포트의 물이 끓기 직전에 코드를 뽑아버리듯이 ‘폐쇄의 용단’을 내려 버렸으니….

정세현 평화협력원 이사장·한반도평화포럼 상임대표
공단 폐쇄 후 국민들은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에 불안해한다. 앞으로 개성공단 인건비보다 훨씬 많은 돈이 안보비용으로 나갈 것이다. 그러니 정부는 휴전선을 다시 북상시킬 계책을 세우라. 그걸 위해서 통일부 장관은, 지부상소(持斧上疏)는 못할망정, 자기 목소리를 내서 부하 직원들의 자존심이라도 세워주기 바란다. 그게 학자로서 명예라도 지키는 길이다.

정세현 평화협력원 이사장·한반도평화포럼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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