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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7.12 18:39 수정 : 2015.07.12 18:39

8·15 열흘 전 이희호 여사가 3박4일 일정으로 방북한다. 8·15를 한달 앞두고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가 열린다. 우리 쪽 전통문 접수조차 거부하던 북한이 회담에 나오겠다고 해서 1년여 만에 열리는 것이다. 그러자 7월10일,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의 대화 의지가 보인다”고 평가했다. 분단 만 70년이 되는 올해 8·15를 앞두고 느낌이 좋다.

그러나 느낌이 좋다고 결과도 다 좋은 건 아니다.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떠내려 보내지 않기 위해서 남북이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좋은 느낌은 일장춘몽이 되고 만다. 그런 점에서 우선 오는 16일 열리는 개성공단 공동위원회에서 북한이 합리적으로 나와야 한다. 남한 보수진영에서 “개꼬리 삼년 묻어도 황모 안 된다”고 비아냥거리게 만들면 박 대통령 맘은 다시 싸늘하게 식어 버릴 것이다. 그러면 광복 70주년 8·15도 여느 8·15처럼 그냥 지나갈 것이다.

북한만 잘해야 되는 건 아니다. 사실은 우리가 넉넉한 자세로 먼저 다가가야 한다. 나이 어린 형제가 다투면 부모는 으레 동생보다 형을 나무라지 않는가. 남북 간에도 마찬가지다. 남북의 국력 격차는 매우 크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로 2014년 말 남한의 국민총생산은 1조4500억달러, 세계 13위를 기록했다. 반면 북한은 400억달러 조금 넘는 수준에 머물렀다. 경제력이 36 대 1 이상 차이가 난다. 국제적 위상 차이는 더 크지만, 북한이 갖가지 이유로 핵·미사일 개발을 계속하기 때문에 안보상황은 불안하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라도 북한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우리가 북한을 상대해야 한다. 우리가 중장기적 안목과 전략을 가지고 북한을 상대하지 않으면 통일은 고사하고 안보상황 관리도 제대로 못하게 된다.

이번 8·15가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로 나가는 원년 원일(元日)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박 대통령이 이 여사에게 의미 있는 대북 메시지를 들려 보내야 한다. 이 여사가 왜 삼복더위에 93세의 노구를 이끌고 방북하겠는가. 남북 화해협력 재개의 작은 물꼬라도 터보겠다는 일념에서다. 한편 북한은 왜 8·15 열흘 전 평양 도착 일정을 제시했을까. 아마도 북한은 이번에 박 대통령이 좋은 메시지만 좀 보내주면 금년 8·15부터는 남북이 앞으로 서로 잘 해보자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지 싶다.

그런 점에서 이 여사 방북은 박 대통령 임기 후반 남북관계 개선의 골든타임이다. 박 대통령이 이 여사에게 특사 자격까지 부여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 달라는 비공개 부탁은 할 수 있다. 아니 박 대통령은 그렇게 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내밀한 메시지가 맘에 들면 북한도 진정성 있는 자세로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그런 역할을 부탁하면, 이 여사가 김 제1위원장에게 북이 억류 중인 우리 국민 4명의 송환을 요청하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이다. 그동안 미국인들이 북한에 억류되면 클린턴, 카터 같은 전임 대통령들이 북한에 들어가서 최고 권력자를 만나지 못하고도 그들을 데리고 나왔다. 하물며 자기가 초청하여 방북한 이 여사, 연배로 볼 때 할머니 같은 분이 요청하는데 김 제1위원장이 그걸 거절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김 제1위원장의 지시로 이 여사가 돌아오는 비행기에 그들이 함께 타고 오게 되면, 그 공로는 이 여사보다 박 대통령 것으로 평가될 것이다.

정세현 평화협력원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이 여사 방북이라는 기회를 잘 활용하면 박 대통령은 임기 후반 주도적으로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면서 한반도 안보상황도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분단 70년 만에 새로운 민족사를 쓰기 시작한 출발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여사 방북에 도움이 안 되는 대북 자극적 보도나 돌출 행동은 정부가 앞장서 막아야 한다. 그러나 이 좋은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면 세월호 사건 때처럼 골든타임을 또 놓쳤다는 비난을 두고두고 받을 수 있다.

정세현 평화협력원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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