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3.22 18:51
수정 : 2015.03.22 18:51
개성공단이 2년 만에 다시 어려움에 처했다. 2년 전엔 한-미 연합훈련 때문이었는데 이번엔 일단 임금과 토지사용료 때문이다.
2004년 개성공단 가동을 앞두고 남북은 공단운영에 관한 사안은 쌍방이 합의한 내용을 북한 법령으로 제정해 적용하기로 했다. 법령의 시효는 10년으로 하고 시효 만료 전에 개정 내용을 협의하기로 했다. 남북은 초기 3년은 임금 인상을 안 하고 4년차부터 매년 5%씩 인상해주기로 했다. 토지사용료는 10년 후부터 내기로 했다. 그런데 최근 북한이 10년 시효가 지난 시점에 남북 협의 없이 법령을 개정하면서 임금을 기본 5%보다 0.18% 더 올리고 토지사용료는 평당 5~10달러씩 내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2013년 한-미 연합훈련 때문에 공단을 4개월 폐쇄했다가 8월에 재가동하면서 남북은 ‘개성공단 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공단운영 문제를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10년 시효 만료를 앞둔 조처였다. 그런데 그런 약속을 한 지 1년여 만에 북한이 개성공단 노동규정 등 13개 관련 법령을 개정하면서 임금과 토지사용료 액수를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4월부터는 그걸 내라고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개성공단 공동위원회를 열자는 정부의 통지문도, 기업들의 건의문도 접수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왜 이러는가? 돈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의 다른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도록 만들려는 ‘돌려차기’인 것 같다. 군사훈련 중지, 대북전단 살포 중지, 통일준비위원회 해체 등 여러 가지 요구가 있지만, 북한 정치문화를 고려하면 자기네 ‘최고존엄’을 건드리는 대북전단 살포 중지가 최우선 요구일 것 같다. 북한이 이번 조처를 취한 시점에서 북한의 그런 속내가 읽힌다.
지난해 10월 초 북한 고위층의 전격 방남을 계기로 남북 고위 당국자 간 대화가 있었다. 그 결과 2차 남북 차관급 대화가 성사될 뻔했으나 무산됐다. 대북전단 살포를 막아달라는 북한의 요구를 우리 정부가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11월은 당연히 남북관계가 경색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러한 시점, 10년 시효는 지났고 남북 협의는 불가능한 시점에 124개나 되는 기업들 때문에 남한 정부가 자기네 요구를 들어주면서 대화에 나올 수밖에 없도록 만들자는 계산을 했다고 본다. 돈 때문이었다면 임금을 0.18%만 더 올리진 않았을 것이다. 토지사용료도 평당 5~10달러라고 여유를 두지 않았을 것이다. 돈 문제는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암시로 보인다.
북한이 10년 전의 악속, 1년 전의 약속을 깨고 일방적 결정을 밀어붙이려고 한다고 우리 정부가 이번에도 ‘원칙’이니 ‘진정성’이니 하면서 문제해결을 미루면 안 된다. 남북 당국 사이에 낀 공단 기업들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새 통일부 장관은 이 문제를 풀면 ‘아무나’가 아니라 ‘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개성공단 문제를 풀려면 남북회담부터 성사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북전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대북전단 살포를 중지시키기 위해서는 그걸 ‘표현의 자유’로 보는 대통령부터 설득해야 한다. 신임이 두터운 비서관 출신 장관이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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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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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당국도 무리수를 두면 안 된다. 이번에 개성공단 문제를 잘못 처리하면 2013년 11월부터 야심차게 시작한 18개 경제개발구 사업 추진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990년대 초 북한은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에 외국투자를 유치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투자 희망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고압적 태도와 까다로운 제도 때문이었다. 그런 경험이 있는 북한이 이번에 또 개성공단에서 ‘갑질’을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외국 기업들이 그걸 보고도 외국투자가 절대 필요한 18개 경제개발구에 투자하겠다고 선뜻 나서겠는가? 북한 당국은 무엇이 김정은 시대 경제치적 쌓기에 장애를 조성하는 일인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정세현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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