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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22 18:47 수정 : 2015.02.22 18:47

화(禍)를 자초하는 어리석음을 비웃을 때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간다’고 말한다. 나라가 그 꼴이 될까 걱정스러운 일이 생겼다. 한국 내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배치 문제다. 일부 언론은 사드 배치를 촉구하면서 중국 눈치는 보지 말라는 주장까지 한다. 그러나 그건 무책임하고, 국가경영에 있어 경제가 안보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말이다.

사드는 한 세트에 11조원, 2015년 국방예산 37.5조원의 30% 가까운 액수다. 노무현 정부 때 미국이 사드 배치 문제를 처음 제기했는데, 그때 노 정부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사드가 한-중 관계를 해칠 수 있고, 돈이 많이 들고, 성능도 아직 확실치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에 따르면, 2008년 1월 국방부를 방문한 이명박 당선인에게 김장수 국방부 장관이 같은 취지의 보고를 했다. 그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인수위에 사드 지지파가 많았지만 이명박 정부 임기 중 사드 논란은 없었던 걸로 기억된다.

박근혜 정부로 넘어오자 미국이 사드 문제를 다시 꺼냈다. 이유는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 미·중 군사력 격차는 5~6년 전에 비해 점점 좁혀지는 반면 미국 국방예산은 계속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미국으로서는 북한 핵과 미사일을 구실 삼아 한국 돈으로 사드를 개발·배치하고, 그걸로 대중 군사우위를 유지하려는 것 아닌가 싶다. 둘째, 전시작전통제권과 한·미·일 군사정보 공유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박근혜 정부의 대미 안보의존성이 강하다고 보고, 그런 여건을 활용하여 사드 배치를 매듭지으려는 것 아닌가 싶다.

지난 4~13일 사이에 일어난 일은 최근 사드 문제가 상당히 깊숙하게 논의되어 왔음을 시사한다. 2월4일 창완취안 중국 국방부장이 한-중 국방장관 회담에서 사드 배치에 ‘우려’를 표명했다. 존 커비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한국과 지속적 협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이 즉각 “그런 일 없다”고 부인하자 13일에 커비는 “공식적 협의나 논의를 하고 있지 않다”고 말을 바꿨다. “지속적 협의가 있었다”가 “공식적 협의나 논의는 안 했다”로 바뀌었지만, 그건 오히려 “비공식적 협의는 지속적으로 해왔다”는 것을 실토한 셈이다. 그즈음에 나온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사드 문제에 대해서는 모호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발언은 궁금증과 함께 불안감을 더해준다.

도대체 누구를 상대로, 그리고 왜 모호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인가? 대미 협상에서 우리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미국이 밀어붙이면 결국 어쩔 수 없는데 그때까지라도 국민들 맘 편히 살라고? 아니면 한-중 관계에서 사드 문제를 카드로 쓰기 위해서? 모호성 유지가 미국을 상대로 하는 거라면 그만두는 게 좋다. 미국이 누군가? 외교의 백전노장이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이미 작년 7월3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사드 배치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는 사실이 최근 알려졌다. 작년 11월 26일 추궈훙 주한 중국대사는 국회 간담회에서 사거리가 2000㎞나 되는 사드는 결국 대중국용이라고 지적했고, 창완취안 중국 국방부장이 금년 2월4일 사드 배치에 대해 다시 우려를 표명한 것은 유념해야 할 점이다. 외교정책 결정 과정은 ‘상대방의 본심을 읽어내는 일(perception)’로부터 시작된다. 한국 내 사드 배치에 중국 지도자들이 작년부터 수차 우려를 표명한 건 중국이 이미 박근혜 정부의 본심을 읽었고 차후 대응계획까지 세워놨다는 뜻이다.

정세현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그런데도 일부에서는 사드를 대북 방어용이라고 설명하면 중국이 납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천진난만한 소리다. 우리가 사드로 중국의 안보이익을 위협하면 중국은 우리의 경제이익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되면 대중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당장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은 사드 문제에 대해서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 모호성을 유지한답시고 섶을 지고 불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결국 불로 떨어지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정세현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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