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06 19:24
수정 : 2014.07.06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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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원광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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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한국전쟁 때문에 북한은 우리에게 상당 기간 무서운 존재였고 배척 대상이었다. 한편 1960~70년대 경제성장 과정에서 빈부격차가 심화되다 보니 사회주의 북한을 대안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중에 북한을 찬양하는 언동 때문에 법적 처벌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다. 90년대 초 사회주의권 붕괴와 탈냉전 후에는 국가보안법 사건 자체가 많이 줄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꼭 친북 언행이 아닐지라도 진보 성향의 행동만 해도 법적 조치와는 무관하게 여론재판이 드세게 진행된다. 일단 종북-좌빨이라는 딱지부터 붙는다.
해방 후 60년대 초까지는 북한이 남한보다 군사적,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남북 체제경쟁은 70년대 중반에 남한의 절대적 우위로 끝났다. 남한은 이제 G-15 경제대국이 되었고 국제적 위상도 매우 높아졌다. 반면 90년대 중반에 시작된 탈북행렬이 아직도 이어질 정도로 북한은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핵·미사일 문제 때문에 여러해 국제적 제재를 받고 있다. 국가 이미지도 나쁜 편이다. 이렇게 남한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는 북한을 추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지금 이 시기에도 남한에 있다는 것인가? 종북 논쟁은 참으로 시대착오적이고 비현실적인 정치공세다.
좌익 빨갱이도 실체가 없는 공격용 용어다. 6·25를 전후하여 북한 체제가 좋다고 자진 월북한 사람들이 제법 된다. 그들은 스스로도 좌익임을 자처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사람이 남한에는 없다고 본다. 다만, 정부 정책에 대해서 비판적인 사람이 없을 수 없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그러나 그들도 북한을 기준으로 삼지는 않는다. 자본주의의 폐단을 지적하더라도 북한이 아니라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수준의 복지나 분배를 요구한다. 이 정도면 좌익이라 할 수도 없고 빨갱이는 더더욱 아니다.
김영삼 정부 때까지는 통일 문제가 담론 차원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남남갈등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들어 햇볕정책이 추진되자 우리 사회 내부에 이념갈등이 일기 시작했다. 이전과는 패러다임이 완전히 다른 대북정책으로 남북 교류협력이 일상화되면서 담론 차원에 머물러 있던 통일 문제가 현실 차원의 문제로 다가왔다. 그러자 분단체제하에서 누리던 기득권이 위협받게 될 것을 우려한 보수층의 저항이 시작됐다. 대북지원은 ‘퍼주기’, 대북협상은 ‘끌려다니기’로 매도됐다. 남북갈등과 차별화하기 위해 남남갈등이라는 표현이 쓰이기 시작했다. 보수층에서는 햇볕정책이 기본적으로 친북적이기 때문에 안보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한-미 동맹을 훼손할 수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동맹이 외교수단이 아니라 국가목표처럼 되어 버렸다.
남북관계 개선 노력 대(對) 분단체제하에서 구축된 기득권 유지 욕망 간의 충돌, 그것이 남남갈등의 출발점이고 친북-종북-좌빨 논쟁의 뿌리다. 노무현 정부 때까지만 해도 친북-반북 논쟁에 그쳤던 남남갈등은 이명박 정부 들어 종북-좌빨 논쟁으로 판이 커졌다. 정부가 아무것도 안 하는 상황에서 민간 차원의 대북지원 노력이나 대북정책 비판까지도 종북-좌빨로 매도됐다. 박근혜 정부 들어 그 정도가 좀더 심해지는 것 같다.
종북-좌빨 논쟁이 우리 사회를 풍미하는 한, 남북 대화와 교류는 할 수 없다. 화해와 협력은 더더욱 어렵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원리상, 이런 과정과 절차를 밟지 않으면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종북 논쟁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 한 박근혜 정부는 임기 내내 통일 관련해서 아무런 업적도 남길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종북 논쟁은 실로 무서운 반통일·분단 이데올로기이고, 남북관계에는 북핵 문제보다 더 강력한 족쇄다. 한반도신뢰프로세스를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진심으로 제기했다면, 박 대통령은 자기 대북정책의 족쇄인 종북 논쟁부터 끝장내주어야 한다. 통일대박론을 제기할 때처럼 직접 나서야 한다.
정세현 원광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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