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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5 17:16 수정 : 2019.12.26 14:54

손아람 ㅣ 작가

고양이가 죽어 나가던 작은 마을에서 연쇄살인이 일어난다. 두 사건의 범인은 동일인이다. ‘까불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연쇄살인범이 자신의 아들임을 알게 된 아버지는 묻는다. “네가 처음 고양이를 죽였을 때, 그때로 돌아가면 달라질 수 있을까?”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한 장면이다.

이 질문은 역사적인 논쟁을 뒤따르고 있다. 동물 학대와 폭력 범죄 사이의 상관관계 자체는 잘 알려진 편이다. 유영철, 강호순, 이영학 모두 과거 동물을 학대했다. 외국 연구에 따르면 연쇄살인범의 36퍼센트가 유년기 이전에 동물을 학대했고, 46퍼센트는 청소년기에 동물을 학대했다. 또 강간범의 대략 절반, 소아성범죄자의 4분의 1이 동물 학대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11명의 학교 총기난사범 가운데 다섯명이 동물 학대 전력을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시카고 경찰의 범죄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동물 학대 범죄를 저질렀던 사람의 86퍼센트가 다른 폭력 범죄로 체포되었다. 이 상관관계는 보편적 공감능력의 결여 때문에 나타난다고 여겨져 왔다. 인간을 해친 사람은 동물도 해칠 수 있다는 가정에 입각한 추측이다. 하지만 가정과 결론을 거꾸로 뒤집어 볼 수도 있다. 동물을 해친 사람이 인간을 해치게 되는 것이라면? 혹시 어떤 식으로든 동물 학대를 경험해본 사람이 조금씩 폭력의 수위를 높여가는 건 아닐까?

최근에 부상한 연결성 이론은 “졸업생 가설”이라고도 불린다. 사이코패스로 태어난 범죄자가 동물을 학대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입문하기 쉬운 동물을 상대로 한 폭력을 “졸업”하고 나면 누구나 인간을 향해 시선을 돌리게 된다는 뜻이다. 기존 연구들은 범죄자만을 대상으로 했기에 연결성의 인과적 선후를 규명할 수 없었다. 만약 졸업생 가설이 옳다면, 명백하게 불법적인 동물 학대뿐만 아니라 법이 허용하는 제도적인 동물 학대 역시 폭력 범죄와 연결성을 보여야 한다. 최근의 연구 결과는 이렇다. 미국에서는 야생동물 사냥이 합법인 주가 그렇지 않은 주보다 범죄율이 더 높다. 2009년에는 다른 산업 시설에 비해 대형 도축 시설이 소재한 지역의 범죄율이 더 높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나왔다. 도축장의 고용 인원이 1만큼 증가할 때마다 범죄율이 0.013씩 증가할 정도로 상관관계는 뚜렷했다.

동물 학대가 더 큰 범죄의 전조라는 연구 결과를 받아들인 미 연방수사국(FBI)은 2016년부터 살인, 방화, 폭행 등과 함께 반사회적 범죄로 분류하고 별도의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하고 있다. 해당 범주의 사건이 발생하면 용의자의 동물 학대 전과를 추적한다. 2017년 유럽에서는 동물 대상 범죄와 인간 대상 범죄의 연결성 연구 결과를 반영한 법 개정을 요구하는 ‘유럽 연결성 연합’이라는 시민단체가 결성됐다. 이 단체는 동물, 아동, 여성, 신체적 약자를 향한 폭력이 똑같은 병리적 경로의 점진적인 단계이며, 폭력의 고리를 끊기 위해 동물 보호 법률이 지금보다 대폭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역사상 첫 동물보호법 위반 실형 판결이 나왔다. 그동안 한국은 사실상 동물권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였다. 인간만이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고, 동물은 인간의 소유물로 간주하는 게 전통적인 법의 관점이었다. 동물살해자의 관점도 같다. 주인 없는 동물은 죽여도 된다. 무주물의 처분 권한은 발견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주인 역시 동물을 죽여도 된다. 소유물의 처분 권한은 주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법은 가진 권리가 클수록 보호 가치 역시 크다고 판단하는 반면, 현실의 폭력 피해자는 언제나 권리가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 괴롭히기 쉬운 동물, 그다음은 아동과 노인, 뒤를 따라 장애인과 여성, 더 나아가 외국인과 경제적 약자가 희생양이 된다. 아직은 거쳐야 할 논쟁이 수두룩하게 남아 있지만 최소한 까불이의 아버지를 괴롭혔던 질문 정도는 함께 나누기로 하자. “그들이 처음 동물을 죽였을 때, 합당한 처벌을 받았다면 뭔가 달라질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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