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8.12 18:12 수정 : 2019.08.13 14:05

김진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다빈 엄마가 드디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한다. 몇주 전부터 육아도우미와의 갈등이 심상치 않았고 아이가 한번 없어질 때부터 예정된 일이기는 했지만, 역시나. 친정어머니에게 울면서 호소하고, 그럼 다시 외할머니가 다빈이를 보아야 되지 않나, 한치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은 대화가 이어진다. 주말 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이야기다. 이 드라마의 첫째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금융기관에서 일하고 있는데, 드라마 초반 그동안 육아를 전담해주던 친정엄마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육아를 그만두게 되면서 시어머니, (너무 좋더니 역시나 금방 그만두는) 육아도우미, 그리고 (문제가 있는) 육아도우미 등 판에 박힌 순서로 문제를 겪다가 마침내 경력단절의 위기까지 이르게 된다.

이제 누가 아이를 보아야 하나? 이 드라마에서 가장 짜증나는 때는 이 문제를 받는 사람이 오롯이 아이 엄마가 되고, 아이 아빠가 아내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은 있는지”를 묻는 순간이다. 드라마 속 육아 문제를 풀어야 하는 주체가 ‘내 딸’인 것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주기적으로 조사하여 발표하는 ‘전국 보육실태조사’의 가구조사 결과에선, 전체 가구 중 자녀 출산과 양육을 위해 여성이 직장을 그만둔 적이 있는 경우가 40.3%로 나타난 반면, 남성이 직장을 퇴직한 적 있다는 응답은 0.3%에 그쳤다. 게다가 여성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과정에서 경력단절을 경험한 비율은 2009년 24.6%, 2012년 25.2%, 2015년 32.3% 등으로 조사 때마다 높아졌다.

드라마, 그것도 자극적일수록 시청률이 높아지는 주말드라마의 공식대로라면, 다빈 엄마가 회사를 그만두어 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작가가 보여준 첫째 딸에 대한 현실성까지 고려하면 그만두지 않은 채 잘 마무리가 되는 것도 배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사실 그것은 가족의 사랑이나 현명한 대안을 찾아서가 아니라 다빈이 엄마가 다니는 직장이 상대적으로 고임금이고 차별이 적은 금융기관이기 때문이다. 경력단절 여부는 결혼이나 출산, 육아와 같은 여성의 생애사건보다 노동시장의 차별, 여성의 열악한 근로조건에 기인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유일하게 남성과의 격차가 30%를 넘는 저임금,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은 훨씬 적은데도 그중 비정규직은 74만여명이 많은 불안정한 일자리. 사장과 동료, 선후배, 고객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이루어지는 성희롱과 괴롭힘. 이 모든 것을 극복하더라도 승진이나 진급이 아예 안 되거나 남성 근로자보다 힘든 일자리. 육아 비용과 여성에게 가중되는 책임이나 부담과 비교할 때 포기해야 할 일자리 수준이 이 모양이기 때문에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단적으로 내 주변 법조인들은 모두 육아로 인한 힘듦을 호소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경력 ‘단절’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여성의 연평균 임금이 1% 증가할 때 경력단절이 완화된다는 연구(양현순, ‘모성벌칙의 영향요인 실증분석: 국가 단위 거시분석과 개인 단위 미시분석’) 결과도 있다. 2017년 실시된 ‘서울시 여성의 경력단절 경로 및 영향요인 분석’(국미애·이화용)에서도 경력단절 요인으로 근로조건을 꼽은 비율이 가장 높고(27.5%) 결혼, 임신, 출산 등 생애사건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13.7%로 절반에 그친다.

다빈 엄마는 직장을 그만두게 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드라마 속 주인공 가족이 얼마나 화목하게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지에 있지 않다. 다빈 엄마의 일자리가, 육아의 어려움을 극복할 만큼 괜찮은 일자리인가에 있다.(그래서 이 드라마에서 부부의 일자리가 같은 금융기관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아니, 어쩌면 중요한 것은 이 질문의 답보다 이 질문을 받아야 하는 상대방이 누구인지에 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딸’인가 ‘아들’인가. 아니면 아들딸을 같이 키워야 마땅할 ‘세상’인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공감세상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