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 중학교 1학년에 입학해 영어를 처음 배웠다. 기초영문법 책에서 한 단계씩 수준을 올릴 때마다 너무 즐거웠다. 다만 특수학교와 기숙사 어디에서도 영어를 말할 일이 없었다. 교과서에 나온 문장을 외우며 외국인과 대화할 날을 기다렸지만, 아쉽게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점차 영어 공부는 시험점수를 위한 수단에 머물렀다. 그래도 나는 장애가 있는 주변 친구들 가운데서는 제일 사정이 나았다. 대학을 다니기 시작했고 서울에 살게 되자 외국인 학생들을 만나고 교류할 기회도 생겼다. 물론 해외여행을 가거나 강남의 유명한 어학원을 다닐 수는 없었으므로 어학 실력을 키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독학만으로 원어민 같은 외국어를 구사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못 되었다. 부족하지만 그 덕분에, 며칠 전 아일랜드의 한 대학이 개최한 장애인법 여름학교에 다녀왔다. 유럽 여러 나라들과 코스타리카, 미국, 중국, 이란, 우간다, 나이지리아 등 세계 여러 곳의 장애인 인권 활동가와 법률가들이 모였다. 내게는 국제인권법과 각 나라 정책들에 관한 전문가들의 논의보다, 다른 문화와 경제 수준, 사회적 배경을 가진 장애인 참가자들의 경험이 많은 부분 공통된다는 점이 더 흥미로웠다. 나와 동일한 장애를 지닌 아일랜드의 한 여성과 내 어린 시절 경험은 놀랍도록 유사했다. 양쪽 종아리와 허벅지에 모두 수술 자국이 있다는 점도 같았다. 소수자로서의 경험은 하나의 공동체 내부에서 세대 간 공유되기보다, 각기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서 더 풍부하게 공유될 수 있다. 나는 한 세대 위의 한국인 변호사보다 우간다에 사는 장애인과 더 많은 공통 경험을 나눌 수도 있는 것이다. 지리적, 문화적 차이를 횡단하는 지식과 지혜의 교류가 그래서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의 장애인들은 상대적으로 이 지식과 경험의 네트워크에 연결되기가 쉽지 않다. 인터넷 시대이니만큼, 가장 큰 장벽은 언어일 것이다. 한국어는 국제 공용어가 된 유럽어와 다른 어족에 속하며,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리적으로도 고립되어 있어 삶에서 외국어에 노출되기가 어렵다. 게다가 장애인들은 외국어 학습은커녕 의무교육에 참여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다. 외국의 장애인들을 만날 때면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중증 뇌병변 장애인으로 홀로 아이를 기르면서 양육권을 쟁취해낸 나의 중학교 선배, 장애인 대학생들이 주변 상권을 조사해 만든 배리어프리 지도, 한강대교를 기어가고 서울역을 점거하며 마침내 지하철역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게 만든 장애인이동권 운동의 눈부신 장면들을. 이 경험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분투하는 장애인들에게 소중한 자산이며, 상대적으로 나은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도 커다란 통찰을 준다. 실제 이번 아일랜드 연수에서 한국의 ‘장애인법연구회’ 소속 법률가들이 우리나라 장애인이동권 운동과 영화관람권 소송 등을 포스터로 발표했는데, 참가팀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발표로 선정되었다. 한국의 장애인들이 이 지식과 경험의 네트워크에 더 많이 참여해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 입으로 말하고, 많은 이들과 교류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한 여러 조건 가운데 하나는 분명 언어다. 맹학교에서 음악이나 안마교육뿐 아니라, 체계적이고 높은 수준의 외국어 교육이 이뤄진다면 어떨까? 전국의 외국어고등학교와 통번역대학원이 장애인들을 적극적으로 선발하고, 시각·청각 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위한 효과적인 외국어 교육에 투자한다면 어떤가? 곳곳에 설치된 영어마을에서 발달장애 청소년을 위한 캠프를 연다면 어떨까?(유엔 장애인권리위원 로버트 마틴은 뉴질랜드 출신의 발달장애인이다.) ‘글로벌 인재’를 키우는 교육만이 아니라 세계에 흩어진 소외된 사람들을 연결하는 교육을 국제중학교, 외국어고, 대학 교육과 각종 연수 프로그램에서 보고 싶다. 지리적, 문화적, 정치적 경계를 넘어 ‘약한 사람들’이 널리 수평으로 연결될수록, 각종 경계 안에서 대물림되던 주류의 의식과 편견, 폭력에 맞서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칼럼 |
[공감세상] 시각장애인이 외고에 다닌다면 / 김원영 |
변호사·<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 중학교 1학년에 입학해 영어를 처음 배웠다. 기초영문법 책에서 한 단계씩 수준을 올릴 때마다 너무 즐거웠다. 다만 특수학교와 기숙사 어디에서도 영어를 말할 일이 없었다. 교과서에 나온 문장을 외우며 외국인과 대화할 날을 기다렸지만, 아쉽게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점차 영어 공부는 시험점수를 위한 수단에 머물렀다. 그래도 나는 장애가 있는 주변 친구들 가운데서는 제일 사정이 나았다. 대학을 다니기 시작했고 서울에 살게 되자 외국인 학생들을 만나고 교류할 기회도 생겼다. 물론 해외여행을 가거나 강남의 유명한 어학원을 다닐 수는 없었으므로 어학 실력을 키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독학만으로 원어민 같은 외국어를 구사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못 되었다. 부족하지만 그 덕분에, 며칠 전 아일랜드의 한 대학이 개최한 장애인법 여름학교에 다녀왔다. 유럽 여러 나라들과 코스타리카, 미국, 중국, 이란, 우간다, 나이지리아 등 세계 여러 곳의 장애인 인권 활동가와 법률가들이 모였다. 내게는 국제인권법과 각 나라 정책들에 관한 전문가들의 논의보다, 다른 문화와 경제 수준, 사회적 배경을 가진 장애인 참가자들의 경험이 많은 부분 공통된다는 점이 더 흥미로웠다. 나와 동일한 장애를 지닌 아일랜드의 한 여성과 내 어린 시절 경험은 놀랍도록 유사했다. 양쪽 종아리와 허벅지에 모두 수술 자국이 있다는 점도 같았다. 소수자로서의 경험은 하나의 공동체 내부에서 세대 간 공유되기보다, 각기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서 더 풍부하게 공유될 수 있다. 나는 한 세대 위의 한국인 변호사보다 우간다에 사는 장애인과 더 많은 공통 경험을 나눌 수도 있는 것이다. 지리적, 문화적 차이를 횡단하는 지식과 지혜의 교류가 그래서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의 장애인들은 상대적으로 이 지식과 경험의 네트워크에 연결되기가 쉽지 않다. 인터넷 시대이니만큼, 가장 큰 장벽은 언어일 것이다. 한국어는 국제 공용어가 된 유럽어와 다른 어족에 속하며,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리적으로도 고립되어 있어 삶에서 외국어에 노출되기가 어렵다. 게다가 장애인들은 외국어 학습은커녕 의무교육에 참여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다. 외국의 장애인들을 만날 때면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중증 뇌병변 장애인으로 홀로 아이를 기르면서 양육권을 쟁취해낸 나의 중학교 선배, 장애인 대학생들이 주변 상권을 조사해 만든 배리어프리 지도, 한강대교를 기어가고 서울역을 점거하며 마침내 지하철역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게 만든 장애인이동권 운동의 눈부신 장면들을. 이 경험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분투하는 장애인들에게 소중한 자산이며, 상대적으로 나은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도 커다란 통찰을 준다. 실제 이번 아일랜드 연수에서 한국의 ‘장애인법연구회’ 소속 법률가들이 우리나라 장애인이동권 운동과 영화관람권 소송 등을 포스터로 발표했는데, 참가팀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발표로 선정되었다. 한국의 장애인들이 이 지식과 경험의 네트워크에 더 많이 참여해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 입으로 말하고, 많은 이들과 교류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한 여러 조건 가운데 하나는 분명 언어다. 맹학교에서 음악이나 안마교육뿐 아니라, 체계적이고 높은 수준의 외국어 교육이 이뤄진다면 어떨까? 전국의 외국어고등학교와 통번역대학원이 장애인들을 적극적으로 선발하고, 시각·청각 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위한 효과적인 외국어 교육에 투자한다면 어떤가? 곳곳에 설치된 영어마을에서 발달장애 청소년을 위한 캠프를 연다면 어떨까?(유엔 장애인권리위원 로버트 마틴은 뉴질랜드 출신의 발달장애인이다.) ‘글로벌 인재’를 키우는 교육만이 아니라 세계에 흩어진 소외된 사람들을 연결하는 교육을 국제중학교, 외국어고, 대학 교육과 각종 연수 프로그램에서 보고 싶다. 지리적, 문화적, 정치적 경계를 넘어 ‘약한 사람들’이 널리 수평으로 연결될수록, 각종 경계 안에서 대물림되던 주류의 의식과 편견, 폭력에 맞서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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